눈이 온다는 예보는 미리 있었다. 뭐 틀리기도 하니까 신경 안썼다. 아니, 날씨에 신경쓸게 있는 것도 아니다. 명절이라고, 연휴라고 갈때도 없고, 꼭 와야하는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데,,, 명절 자체를 이미 접어버렸는데, 그러고서도 뭔가 아쉬움이라도 남아있나. 이른 아침부터 뭔가 소리에 잠을 깼다. 눈이 온다고 했는데 빗소린가 싶으면서도 잠을 자긴 했는데, 역시 비였다. 비가 내리는 소리였다. 눈이 온다더니 비내. 그리고나서 다시 현관문을 열어보니 이번에는 눈이 펄펄 내리고 있다. 눈과 비가 섞여있어서 쌓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예보에는 눈비가 그친다고 했다. 지금 눈이 내리는데,,, 한박자가 늦나. 하긴 한박자 뿐이랴. 모든게 늦거나 빠르거나 무슨 상관이 있는것도 아니다. 갈곳도 기다리는 사람도 없다. 참 처량하다. 나만 그런가. 아침마당은 아니고, 아침 뭐라는 tv프로였는데, 명절 증후군이며 며늘과의 갈등 문제가 나오고 있었다. 종손며느리 얘긴데, 제사가 일년이면 12번이 넘는단다. 거기 명절이 있고, 생일이 있겠고, 대소가 친척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겠지.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아주 예전에는 종갓집 며늘의 위세는 당당했다. 감히 넘볼수도 없을만 했다. 요즈음엔, 기세등등한 며늘의 파워에 눌려 종갓집도 맏며늘도 없다. 오히려 시어머니들이 눈둘곳이 없게 되었지 않나 싶다. 나처럼 미리 알아서 기는 시어머니들도 있으니 말이다. 명절에 시끌버끌하며 음식을 나누어 먹는게 로망인 분들도 분명 있을게다. ㅎㅎㅎ. 꿈은 사라지고 자존심은 무너진지 오랜가 싶다. 아니, 아무것도 안하니까 좋다. 빈둥대고 또 빈둥댄다. 여유가 되는 사람들은 여행을 가기도 하고, 외식으로 빈 마음을 달래기도 하겠지만, 그냥 집구석에서 빈둥대는 것 말고는 달리 할줄아는 것도 없는 사람도 분명있다. 그렇다고 상심하진 말자. 좋다. 편해서 좋다. 옛날에 이런말도 있었던 것 같은데,,, 몸이 편하면 입도 편하다나. 나를 위해서 장을 좀 볼 필요는 있다. 전을 좋아한다면 간단하게 조금만 붙이거나 사거나 하고, 뭐 나를 위로해야 하지 않겠나. 떡국이나 무국이나 재료가 없다면 사둬야 하지 않을까. 잘 놀아보자. 빈둥대는 것도 참 좋아해서 다행이다. 일 없이 노는게 너무 힘들다는 사람들이 존경스럽다. 그런분들은 평생 힘들게 일만 해온분들이다. 할일이 없으면 당장 어떻게 될까봐 불안하고 초조한 분들, 주님, 그런 분들에게도 휴식을 즐길수 있는 마음의 평안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누군들 놀기를 싫어해서가 아닐테니까요. 하루를 놀면 가족들이 어떻게 되기라도 할까봐 늘 조바심내며 살아왔던 기억에서 벗어날수가 없었던 지난날들을 너무도 잘 이해합니다. 꿈속에서도 전봇대에 붙여놓은 구직 포스터를 들여다보곤 합니다. 아직도 여전히, 밥값을 해야하지 안느냐고 초조해하는 내안의 나를 보곤 합니다. 살아있는 동안은, 어쩌면 벗어버릴수 없는 멍애 같은 것일수도 있습니다. 비가 오던 눈이 오던 상관없는 일상이 옳은것은 아니라는 생각은 듭니다. 그런들, 이런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나의 하루가, 어제와의 반복이던 아니던 뭐가 다른가요? 생명의 가치를 알지못합니다. 하루가 얼마나 귀중한지도 모릅니다. 보물이나 명품도 알지못합니다. 어쩌면 하루하루가 무한 가치있는 것일수도 있겟지만 그걸 효률적으로 누리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보물을 한아름 안고 있다고 칩시다.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게 자갈과 다를게 뭐가 있나요? 차라리 먹을수 있는 과일하나 떡 한조각보다 못한게 아닐까요? 밭에 감춰놓은 보화가 예수님이라고 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 가치를 충분히 알지못한 사람에게는 무슨 소용이 있겠는지요. 길 가는 다른 불황당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눈으로 보이는게 다는 아니라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게 다는 아니라는 말도 합니다. 어쩌면 실상 아는게 없다는 말일수도 있습니다. 입을 다물고 되어지는 대로 살아가렵니다. 불평 불만이나 없길 원합니다. 아니, 감사하며 지내려고 노력은 하겠습니다. 불쌍히 여겨주시고, 갈곳도 오는 사람도 없는 이 명절이 그래도 즐거웠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