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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칠불
위의 연등불을 포함해, 석가모니 이전 시대에 존재한 부처 6명을 말한다. 다만 석가모니가 현재 열반에 들었기에 석가모니까지 합해서 7명이다.
과거겁[2] 시기의 비바시불(毘婆尸佛) · 시기불(尸棄佛) · 비사부불(毘舍浮佛) 3명과, 현재겁 시기에 나타난 구류손불(拘留孫佛) · 구나함모니불(拘那含牟尼佛) · 가섭불(迦葉佛) ·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4명을 합쳐 총 7명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이 7명의 과거칠불이 설법한 곳이 신라 경주 땅에 있다고 기록한다. 이를 신라 칠처가람이라 하는데, 흥륜사, 영흥사, 영묘사, 황룡사, 분황사, 사천왕사, 담암사를 말한다.[3] 이 중 황룡사는 가섭불이 좌선했던 곳으로 일연은 말하고 있으며, 황룡사의 석가모니불삼존상은 인도의 아쇼카 왕이 가섭불을 기리기 위해 바친 금과 동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는 역사적인 신빙성은 부족하지만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이 단군신화 같은 신화적 기록도 되도록 싣도록 노력했기 때문에 남은 기록이다. 한국 불교가 정착하면서 나타난 불국토 사상을 보여주는 설화라고 할 수 있다.
본초불(本初佛)
천지가 창조된 초기에 스스로 태어나 우주를 창조하였다. 이름 그대로 최초의 부처. 산스크리트어로 아디붓다(Adi-Buddha), 음역으로는 아제불타.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제일 첫번째 원인이 되는 존재가 이 본초불이 된다고 한다. 따라서 스스로 태어나신 분(Svayambju)이라고 하고 본초주(Adi-Natha), 본초각자, 제일각자라고 불린다[4]. 우주의 근원에 해당되는 부처(佛)이며, 우주의 근원적인 원리를 불격화한 존재이다.[5] 이후 이 정신으로 관세음보살이 태어났다고 한다. 다른 이론에 따르면 이 본초불에서 다섯 부처(선정불)가 태어났는데, 이 다섯 부처는 비로자나불, 아촉불, 보생불, 불공성취불, 아미타불이라고 한다.
비로자나불
두루 빛을 비추는 존재로서 하느님이라는 뜻의 부처로 대적광불이라고도 불린다. 산스크리트어 마하와이로짜나(Mahāvairocana)는 태양을 의미. 이를 음역하여 비로자나(毘盧遮那)라고 한다. 노사나(盧舍那), 대일여래(大日如來)도 마찬가지. 진리는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빛으로 형상화한 것이 바로 비로자나불이며, 법신불을 뜻한다. 또한 태양빛은 사방을 비추어 모두를 따뜻하게 만들기 때문에, 온 세상에 부처의 법도가 그물처럼 이어졌다는 화엄사상과도 연관이 있다. 비로자나불은 모든 인간의 불성이 합쳐진 부처라고도 하며 비로자나불이 내뿜는 불빛은 사실 무수한 부처의 아바타들이고 그 빛은 매우 밝지만 인간들이 봐도 전혀 눈부시지 않다고 한다. 비로자나불의 무드라(수인)는 한 손으로 다른쪽 손의 검지를 잡고 있는 형태이다.
약사여래(藥師如來, Bhaisajya-guru)
동방유리색(동방유리광)정토의 부처다. 병으로 고통을 받는 중생을 치료해주는 공덕이 있다. 주로 오른쪽 손에 약함을 든 모습으로 묘사된다.
아미타불(阿彌陀佛, Amitabha), 무량수불(無量壽佛, Amitayus Buddha), 무량광불(無量光佛, Amitabha Buddha)
서방극락세계의 부처. 극락세계에 태어나길 발원한 중생을 서방극락세계에 왕생시키는 공덕이 있다. 아미타불의 전생, 법장비구의 48대원이 실현된 정토에서 지금도 늘 설법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불교에서 가장 흔한 염불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의 아미타불이 바로 이 부처다. 아미타불은 부처임에도 열반에 들지 않았으며 우주상의 모든 생물체들이 열반에 들면 가장 마지막으로 열반에 들 것이라고 한다. 이렇듯 사실상 무한한 시간을 버텨야 하기 때문에 아미타불은 생명력과 활력이 무한해야 하므로 아미타불을 무량수불이라고도 부른다.
미륵불
석가모니 열반 후 56억 7천만 년 뒤에 나타난다는 미래의 부처다. 그때까지는 수미산 위 도솔천에서 기다린다고 한다.[6] 혼란스런 세상을 구해줄 구세주로 묘사되었기에 신라 후기 혼란기에 너도나도 스스로를 미륵이라 외치며 세상을 바꾸겠다 말하였는데 이는 메시아 사상과 비슷하며 한국사에선 이 미륵불 사상을 이용해 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연등불(燃燈佛, Dipaṃkara)
석가모니가 '현재의 부처'로 다보불, 제화갈라불이라고도 한다. 미륵이 '미래의 부처'라면 연등불은 '석가 이전의 부처'. 즉, 까마득히 먼 과거의 과거불인데, 석가모니의 전생과 만나자 다음 세상의 부처가 되리라 수기를 내렸다고 한다. 불국사의 다보탑이 연등불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탑이다.
아촉불
아촉불은 동방묘희정토의 법주(法主)로써 보살이었을 때는 일체 중생을 대하여 화를 내지 않겠다는 무진에(無瞋恚)의 대원을 세운 것으로 유명하다. 아촉불은 일체 중생들을 일체 고통으로부터 구제하기 위해 다라니를 설파했는데 발제고난다라니경, 아촉여래염송공양법의 2경에 아촉불의 다라니가 나온다. 다만 약간씩 차이가 있다.
독각(獨覺)
산스크리트어 pratyeka-buddha 팔리어 pacceka-buddha 홀로 깨달은 자라는 뜻. 석가모니 붓다와 같이 스승 없이 홀로 수행하여 깨달았지만 종교를 만들지 않은 부처.[7] 연각(緣覺)·벽지불(辟支佛)이라고도 함. 한국불교에서는 '독성, 나반존자'라고도 불리며, 흰 눈썹과 수염을 길게 기른 노승의 모습으로써 묘사되며, 삼성각이라는 전각에 단독으로 모셔지기도 한다.
힌두교에서는 붓다를 비슈누의 9번째 화신으로 여기는데, 9번째 화신으로서 불교의 개조(開祖) 붓다(부처)를 드는 것은 불교와 힌두교의 융합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앞에서 본 대로 힌두교의 특징 하나이다. 그의 역할은 '비슈누가 부다가 되어 이 세상에 출현하여 악마나 악인이 올바른 수행을 하지 못하도록 그릇된 가르침으로 인도해 악마와 악인을 방해하고 파멸시키는 역할'이다. 힌두교에서 불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 이에 대한 푸라나의 설명은 모두 힌두교의 입장에 따른 것이다. 이는 불교의 사상적인 면과는 관계가 없다. 또한 악마들이 '올바른 수행'을 하는 것을 방해하고 '잘못된 가르침'으로 이끌어서 그들의 힘을 빼앗아 파멸시켰다는 주장은 인도 힌두교 측에서 보는 불교관으로 생각된다. 붓다가 비슈누신의 9번째 화신으로 흡수된 것은 힌두교 속에 투영된 불교의 영향으로도 볼 수 있다. 한편, 붓다가 비슈누의 화신으로 간주되고 만 것은 불교가 힌두 세계에서 더 이상 특색 있는 종교로서의 근거를 상실하는 계기가 된다. 현재 힌두교도들은 붓다를 비슈누 신의 9번째 화신이라 믿고 있어, 그들에게 있어 붓다는 힌두교의 주신(主神) 비슈누 그 자체다.[8]
이런 모습은 불교 쪽에서도 마찬가지라 부처의 가르침에 귀의한 힌두교의 신들을 찾아볼 수 있다. 천룡팔부가 대표적이며, 힌두교의 최고위 3신인 브라흐마, 비슈누, 시바는 불교에서는 범천, 나라연천, 대자재천으로 여겨지며, 어쨌든 브라흐마와 시바는 불교에서도 창조신과 파괴신으로 여겨졌으나 비슈누의 경우에는 호법신인 인왕, 즉 두 금강역사의 한 사람으로 취급돼서 격이 엄청나게 떨어졌다.
'화를 낼 줄 모르고 자비심이 두터운 사람' 또는 "매우 마음이 어질고 자애로운 사람"과 같이 인성적으로 뛰어난 사람을 가리키는 의미로 쓰기도 하고, "욕망을 초월한 존재"의 의미로 쉽게 동요하지 않는 무념무상인 상태의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로 쓰기도 한다. 비유적으로 살아 있는 부처라는 뜻으로 생불이라는 단어가 있다.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는 부처가 음흉하거나 요사스러운 마음이 전혀 없어 그의 한가운데 토막 역시 어떤 상황에서도 흥분(?)하지 않으리라는 가정에서 나온 말이다. 다소 지나칠 정도로 마음이 어질고 순한 사람에 대해 쓴다.
일본에서는 '부처님 얼굴도 3번까지'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어질고 부드러운 사람이라도 3번이나 심기를 건드리면 화를 낼 수 있다는 뜻이며, 주로 관용구로 쓰인다.
서유기의 이야기에서 언급된 내용으로 "네가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라는 비유적 표현이 있다. 뜻은 "네가 아무리 잘났어도 더 잘난 놈이 있다"라는 식의 표현으로 쓰인다. 절대자 앞에서 피조물은 겸손해야 한다는 교훈을 가지고 있다.
실존인물로는 대표적으로 난징의 살아 있는 부처라 불리는 욘 라베가 있다.
대표적인 부처님 캐릭터는 안선생님, 혹은 고씨 가문의 자애로운 소드마스터를 꼽을 수 있다. 본인이 직접 등판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의 모 야구단의 팬들은 종종 부처로 일컬어진다. 한창 연패를 하고 답이 없는 경기력을 선보여도 행복송을 부른다거나, 어떤 팬들은 목탁과 염주를 들고 오거나 아예 금색 부처 탈을 쓰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