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도 높은 중국의 국뽕 영화 “장진호”
개봉한 지 1년이 좀 넘은 중국 전쟁 영화 “장진호”를 봤다.
개봉 후 하도 중국 애국심 고취 영화, 프로파간다 영화 등등
부정적 이미지가 내 머리 속에 가득해서 그냥 킬링 타임용으로
봤는데……
전쟁 영화광인 필자는 머리 속에 담긴, 앞서 말한 선입견을 조금씩
조금씩 털어내며 영화를 봐야 했다. 우선 대규모 물량 공세로 완성도 높은
전쟁씬을 연출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 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감독을 찾아 보니…… 역시 첸카이거 감독이더라.
“현 위의 인생”과 “패왕별희”를 연출한 중국의 실력파 감독.
영화는 그의 명성에 맞게 전쟁영웅 주인공이 부모님을 찾아 가는,
고전적 도입 방식으로 관객을 빨아 들인다. 애국심 고취 영화지만
과거의 유치 찬란하고 오글거리는 방식으로 오성홍기를 흔들어대지 않는다.
그저 담담히 이야기를 나열하면서 어마어마한 물량공세를 퍼부어
만든 전쟁씬으로 3시간 런닝타임을 압살해 버린다.
오글거리지 않기로 작정한 듯 하다. 물론 마지막 미군 장군이 얼어
죽은 중공군 병사들을 보며 경례를 하는 장면에서 등줄기가 오싹
오그라들었지만 그 정도 오글은 봐줄 만 하다.
여기서 한 가지 우리 머리 속을 정리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장진호
전투는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고 결코 우리가 장진호 전투에서 객관적
시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면 영화에 나온 중공군은 당시 미군과
우리의 적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라는 장르 자체는 관객의 시각을 해당영화의
“Point of view” 그대로 튜닝 시키는 마법이 있다.
몰입과 침잠이란 기술로 관객을 영화 속으로 끌어 당겨 영화와 시각과
견해를 같게 만든다.
그러니 일시적으로 우리의 혈맹인 미군이 적국이 되어도 잠시나마
우리 평소 시각을 마비 시켜 중공군의 시각에서 영화를 보며
국가 보안법 고무 찬양죄에 눈을 감아 보자.
그렇게 잠시 당사자의 이해관계에서 빠져 나와 영화를 보면 이
영화가 소문과 다르게 완성도 높은, 잘 만들어진 전쟁 영화란
걸 알 수 있다.
국뽕 영화라고 욕 하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는다. 라일구도 잘
만들어진 국뽕 영화 아닌가? 라일구에서는 미국 국기를 직접
휘날리며 페이드 아웃 된다. 우리나라도 수없이 국뽕 영화를
만들었고 일정부분 필요하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첸 카이거가 국뽕 영화를 만들었다고 우선 까
대는 것은 교전 규칙에 어긋나는 짓이다. 다만, 아무리 능력 있는
감독의 기술로 리노베이션 한 국뽕이지만, 국뽕은 국뽕이다.
이처럼 낡고 오래된 국가관이 중국 젊은이들에게 통한다
는 것이 좀 신기할 뿐이다.
국가는 나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국가라는 개념은 전체의
합이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시너지 효과로 만들어 진 것이지
국가가 개인에 군림해서 남의 나라 영토분쟁에 끼어 죽으라고
강요 할 수 없다.
내 가족, 우리 땅이 공격 받고 유린되는 정도의 극도로 협소한
조건 하에서 전쟁이라는 최후의 국가적 폭력을 행사 해야 하는
것이다.
서방진영과 국경을 맞대는 게 싫은 이유로 북한을 원조해서
5만 명의 전사상자를 갈아 넣었다는 것은 애초에 국뽕 소재
로써는 탈락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 신경 쓰고 만든 영화가 아니기에
필자도 영화적 시점에서만 보고 판단하였다.
미군 퍼싱 전차의 주포가 덜렁거리는 옥의 티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그리스건의 독특한 총성도 묘사했고 여러모로 굉장히
고증에 신경 썼다는 것이 작품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영화 “장진호”는 그냥 킬링타임용 빨리감기용 영화라고 생각하고
보았다가 퀄리티에 놀라 정신 바짝 차리고 본 완성도 높은 전쟁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