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이 지났다 행장 꾸려 남녘으로 떠나라고 채근했다 일어선 길은 미소로 화답하고 톡톡 터지는 향기에 온몸으로 물들어 가니 널린 잠들에 걸려 철없이 내린 눈을 이고 섰다 꽃의 벽장 속 그 어디에도 나는 태어난 적이 없다 이 봄 만발하는 소리 떠다니고 나는 꽃잎을 입에 담고 불순한 날에도 말라비틀어진 고목 등걸에 매달린 보석을 탐하고 싶었으나 맨 처음 봄을 본 꽃송이 솟아오른 가지에 빈 새장이 목을 매달았다 뼈에 사무쳐 추위에 얻은 매향이 나비 발목을 만졌다 발바닥에 묻은 꽃가루에 눈을 다치고 발이 푹푹 빠졌다 기어이 피워낸 몇 낯 봉오리 쓰다듬을 때마다 피득피득 입이 지워졌고 굵은 다리로 매화의 신음을 본 후 눈 안의 수분을 덜어냈다 동면한 깡마른 줄기에서 꽃이 붐빈다 주름진 내 안에 하나둘 묻혀 머무는 얼굴 너는 이슬 같은 눈물을 훔친다 빛바랜 단청 아래 스스로 터져 봄이 되는 몸 옹이가 많아서 오래도록 앓던 상처 마침내 은하수에 뛰어들어 스스로 익사하고 별 많은 밤 울음도 많았다 아직은 눈바람 속 여린 실핏줄마다 뾰쪽한 겨울에서 나온 열꽃 속살이 봉우리로 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