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을 언어로 투시하는 힘
“우리는 언어로 만들어졌다.”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니 에르노(Annie Ernaux)의 말이다. 굳이 이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간의 감정이나 사고, 철학, 문화, 예술 등 모든 것이 언어에 의해 결정된다. 인간의 언어는 개인의 삶이 어 떻게 형성되는가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에르노는 기억 속에 남은 사건들, 사물들, 이미지들을 글로 풀어낸다.
그런 의미에서 2023년 새로운 문을 여는 《시조미학》 봄호 신인작 품상으로 김효신의 「태백, 겨울 탄광촌」 외 2편과 이선민의 「종이 새」 외 2편을 뽑아 들었다. 두 분의 작품 모두 경험에 근거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김효신의 「태백, 겨울 탄광촌」은 안정된 호흡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유년기의 탄광촌에서 탄을 캐던 아버지 와 허름했던 고장의 기억을 새로운 서정으로 담아낸다. 시인의 탯줄 묻은 곳에서 바람이 된 아버지와 마주서는 비유적 표현에 점수를 보탠다. 소재와 발상이 새롭지는 않지만 에르노처럼 본인의 경험이 한 편의 시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함께 보내온 「출근길」은 어머니 에 대한 시인의 절절한 마음이 잘 나타나 있고, 「까치집 단상」은 까치집을 통해 현실문제를 자연스럽게 이끌고 오는 내적 운율에 점수 를 부여했다.
이선민의 「종이새」 는 내면에 가득 찬 마음을 종이새로 접어 세상에 날려 보낸다. 허공 짚은 종이새는 시인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이선민의 작품에서는 내면을 언어로 투시하는 힘, 나아가 그것을 시적 문장으로 조직하는 감각과 내공이 읽혀진다. 사실의 서술보다는 자신 안에 내재된 마음의 언어를 섬세한 리듬으로 탄주하고 있다. 동봉한 「안락의자」와 「복숭아」에서는 사물을 관찰하는 구체성에서 시적 감각과 시적 확장성이 돋보였다. 소재에 대한 진실하고 세밀한 심미적 긴장이 장점으로 채색되었다.
시는 보이지 않는 관념 속에 견지된 심미적 긴장이다. 특히 신인에게 기대하는 것은 독특함으로 내장한 언어의 에너지다. 시조라는 이름의 관행적 방식이 아니라 언어를 재구성하는 힘, 갇힌 시가 아니라 그만의 열린시를 기대하게 된다. 그것이야말로 오늘날의 시조단의 문학적 대안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에르노는 “직접 체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다.”라는 집필 철학으로 매우 유명하다. 그녀는 개인의 경험을 예리한 감각으로 관찰하 여, 칼로 도려내고 파헤치고 해부하듯 “칼 같은 글쓰기”를 지향해 왔 다. 에르노의 이와 같은 글쓰기 방식을 시조에 대입하면 어떨까. 자신의 경험을 군더더기 없는 “칼 같은 시조 쓰기”로 성공하고 있는가를 자문해 볼 일이다.
천 년을 이어온 시조는 진행형이며, 미래형이다. 문학이 존재하는 한 “사적 기억의 근원과 소외”, “구속의 덮개를 벗길 용기와 예리함” 은 시조에서도 필요하다. 시인들의 다양한 경험은 작품으로 생산될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향유할 것이다. 때문에 신인의 배출은 미래형의 시조문학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임을 상기한다. 따라서 새로운 시인에게 우리의 시조의 미래를 걸어보고자 한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박수와 함께 쉼없는 정진을 당부드린다. 이번에 아쉽게 탈락한 분들은 머지않아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얼굴을 마주하리라 확신하며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