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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을 사랑함으로
아침부터 무척 바쁩니다. 겨우내 중단했던 아침 산책을 다시 시작했거든요.
천진암 벗님들에게 봄소식을 전해드리기 위해서 산책을 거를 수 없지요. ‘니가 무슨 충성심이 하늘로 뻗혀서, 지 똥배 나오는 걸, 아니 아니 중부전선이 불룩 솟아오를까봐 조깅하는 거겠지’ 하시면 섭섭하구요.
제 숙소 담장에서 추위에 오돌 오돌 떨던 개나리가 3월에 들어서면서 연갈색 회초리 같은 가지가 심상 찮아 보이더군요. 분명 제 눈엔 연두색으로 보이기 시작했더랬습니다. 제 눈이 착시현상을 일으켰나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봄을 기다리는 제 마음이 간절하여 아직도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봄이 오는 꿈틀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나 봅니다.
깊은 침묵 속에 겨울을 견디어온 대지 저 깊은 곳에서 물을 빨아들이면서 개나리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나 봅니다.
저는 브뤼셀에서 돌연 로마로 갔다가 다시 브뤼셀로 돌아와 바뇌의 성모님을 뵈러 브뤼셀, 비오는 호텔 주차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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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사람들이 버버리라고 하는 트랜치코트를 즐겨 입는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습니다.
호텔을 나서니 제법 비다운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열흘 가까운 순례길이었지만 아직 한 번도 우산을 쓰지 않았는데 오늘은 출발부터 을씨년스럽게 뼈속까지 파고드는 겨울비의 음산함이 우리를 곤혹스레합니다.
그렇지만 어쩌랴 짐을 풀어 우산을 꺼내기보다 비를 좀 맞은들 ...
일행 중 제 혼자만 트랜치코트를 입고 왔으니 금방이라도 거리에 나서면 브뤼셀 사람이 다 된 듯 썩 어울릴 거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브뤼셀에서 동쪽으로, 독일 쾰른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2시간 반 쯔음 달리면 독일 국경에 인접한 "바 뇌"입니다.
한 시간이나 달렸을까? 어느새 비는 그치고 창밖으로 보이는 벨지움의 한적한 농촌 풍경은 가끔씩 고개를 내미는 햇살에 더욱 싱싱하게 살아나고 마주 오는 차량들은 한결 같이 예쁜 소형차 일색입니다.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벨지움을 깔끔하고 예의바른 나라라고 봤다면 그리 잘못 본 것은 아니겠지요. 아무리 처음 보는 풍경이래도 겨울이지만 비옥해 보이는 농장과 목장 풍경만 이어지다가 보니 살풋 잠이 들었나 봅니다. 버스가 서고 모두 내리는 틈에 끼어 황황히 내립니다. 주차장에는 우리가 타고 온 버스 외에는 소형차 두어 대가 있었고 약간 떨어진 성지는 조그마한 벨지움, 전형적인 시골마을이 가만히 우리를 지켜 볼뿐 고요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바뇌(Banneux Notre-Dame)"는 루베네 지역의 작은 마을로 해발 325M의 고원지대에 자리하고 있으며 주위는 아르덴느 지방의 여러 골짜기에 둘러싸여 있고 마을은 교회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소규모의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지가 있을 뿐인 가난한 마을입니다.
성모님이 발현하신 베코(Beco)가족의 집은 교회로 부터 1km떨어진 진창, 뻘빹이라네요. 진창길을 한참 걸어서 홀로 서 있는 집이니만큼 한적하고 가난한 집이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겠지요.
이곳에 상주하고 계신 우리나라 수녀님이 우리를 안내하여 베코집안의 맏이였던 마리에뜨(Mariette)가 성모님을 뵈옵던 곳으로 갑니다.
아주 조그마한 2층 집, 촘촘하게 쌓은 돌과 시멘트로 지어진 집 주위로는 조그만 야채밭이 딸려있을 뿐 아담합니다.
마리에뜨 방의 창문에서 예닐곱 걸음 되는 곳에 세상에서 제일 작은 성당이 예쁜 새 색시처럼 수줍게 서 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작은 교회라니요? 아버지 베코씨와 어머니 루이즈, 그리고 일곱 명의 형제들로 이루어진 가족은 집에 십자가조차 없는 신앙에 무관심할 정도로 가난에 찌들었다 하지요.
(바뇌의 성모발현 멧세지 -수녀님한테 받은 성모성지에 관한 한글 안내서입니다.)
첫 번째 발현 1933년 1월 15일 주일,
흰눈과 얼음이 바뇌의 습지를 뒤덮고 있었으며, 차고 건조한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 저녁 7시에 마리에뜨는 큰길과 전나무 숲이 내다보이는 부엌 창틀에 턱을 괸 채 밖을 내다 보고 있었다. 갓난아기인 막내 동생이 요람에서 잠자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던 마리에뜨는 몇 미터 되지 않는 뜨락의 한 지점에 광채를 발하며 고개를 약간 왼쪽으로 기울인 채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한 부인을 발견 한다.
겨우 열세 살짜리 소녀 마리에뜨는
"엄마, 정원에 어떤 아름다운 부인이 있어요! 저분은 성모님이야. 나를 보고 미소를 지으셔. 저분은 대단히 아름다워!" 하고 말하면서 마리에뜨는 전에 길에서 주운 묵주를 꺼내 황홀한 발현을 바라보면서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다.
그 부인은 마리에뜨에게 다가오라는 손짓을 했다. 마리에뜨가 알아듣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엄마는 귀신의 장난으로 생각하고 나가지 못하도록 문을 잠궈버린다. 그래서 마리에뜨는 창문가로 되돌아와 밖을 내다보았으나 아름다운 부인은 사라져 버린 듯 아무도 없었다.
두 번째 발현은 3일 후인 1월18일 수요일 저녁 7시경,
마리에뜨는 평소에 어둠을 무서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집을 나왔다. 소녀는 집 문간과 정원 울타리를 잇는 길에서 무릎을 꿇고 지난 일요일 저녁 광채를 띠며 그 부인이 나타났던 곳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기도했다. 갑자기 마리에뜨는 두 팔을 펼쳐 올리면서 바라보았다.
아주 작은 모습으로 하늘 저 멀리로부터 성모님께서 나타나신 것이다. 성모님의 모습은 점점 커지면서 커다란 두 전나무 꼭대기 사이를 지나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성모님은 마리에뜨에게서 몇 발자국 떨어진 지점의 허공에 회색 구름과 같은 것 위에 떠 계셨다.
마리에뜨는 두 손에 묵주를 쥐고 위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기도했다.
소녀는, 마치 기도를 하시는 듯 약간씩 입술을 움직이며 미소 짓고 계시는 부인을 바라보았다. 이 조용한 기도는 약 20분간 계속 되었다.
다음에 그 부인은 마리에뜨에게 따라오라고 손짓을 하며 뒷걸음쳐 멀어져 갔다. 마리에뜨는 울타리를 넘어 부인을 따라갔다. 그리고 갑자기 멈춰 서더니 무릎을 꿇고 성모송을 여러 번 바치고 그 자세로 얼마 동안 있다가 다시 일어나 계속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더 걷다가 또 다시 무릎을 꿇었다. 마리에뜨는 다시 또 미끄러지듯 움직이기 시작한 성모님의 손짓에 응하여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돌연히 방향을 오른쪽으로 바꾸어 길가 경사지 밑쪽에 있는, 물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는 샘터로 갔다. 마리에뜨는 도랑가에서 무릎을 꿇었으며 성모님은 경사지의 꼭대기까지 가서 멈추어섰다.
성모님께서는 마리에뜨에게 말씀하셨다.
"손을 물에 담그렴". 마리에뜨는 머뭇거리지 않고 이에 따랐다. 두 손을 조심스럽게 물에 담그자 묵주가 손에서 미끄러져 내려왔다.
성모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이 샘물은 나를 위하여 마련된 것이란다."
그리고 성모님은 작별인사를 하셨다.
"안녕, 다시 또 보자."
성모님은 마리에뜨에게 향한 눈길을 떼지 않은 채 근처 전나무 꼭대기 위로 올라갔다. 멀어질수록 성 모님의 형체는 점점 작아졌다.
세 번째 발현 1월 19일 저녁 7시경,
마리에뜨는 매섭게 찬 날씨 때문에 낡은 외투를 머리에 두르고 아버지와 함께 정원으로 나갔다. 그리고 집에서 몇 발자국 가지 않아서 눈덮힌 땅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낮은 목소리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곧 이어 그녀는 두 팔을 벌리더니 이렇게 외쳤다.
"아! 그분이 오셨다."
얼마간의 침묵 후 마리에뜨는 물었다.
"나의 아름다운 부인,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 부인은 응답하였다.
"나는 가난한 자들의 동정녀란다."
성모님은 소녀를 샘터로 인도하셨다. 마리에뜨는 침착하게 발을 떼어 걷다가 전날 멈추어 섰던 두 곳 에서 발을 멈추었다. 소녀는 샘에 이르러 무릎을 꿇고 성모님께서 서 계신 곳을 바라보았다.
마리에뜨는 다시 물었다.
"아름다운 부인, 당신은 어제 '이 샘은 나를 위해 마련된 것'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나를 위하여' 라고 하셨습니까?"
성모님은 더욱 환히 미소를 지으시며 대답하셨다.
"이 샘물은 모든 나라들과 병든 이들을 위하여 마련된 것이란다."
마리에뜨는 분명하고 똑똑한 목소리로 되풀이 하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성모님은 또 덧붙여 부드럽게 말씀하셨다
"너를 위해 기도하겠다. 다시 또 보자꾸나."
성모님은 전날처럼 전나무 위로 점점 작아지며 사라졌다.
네 번째 발현 1월 20일, 금요일.
마리에뜨는 몹시 아팠음에도 불구하고 저녁 7시경에 또 밖으로 나가 정원에서 무릎을 꿇고 로사리오 기도를 드렸다. 2분 후 그녀는 외쳤다.
"저기 계신다." 얼마 후 소녀는 똑똑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름다운 부인, 당신은 무엇을 원하십니까?"
성모님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작은 성당 하나를 원한단다."
성모님은 두 손을 가슴에서 떼지 않은 채 수평으로 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소녀에게 십자성호를 그어 축복하신 후 사라지셨다. 순간, 그녀는 의식을 잃었다. 아버지는 주위에 있던 이웃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마리에뜨를 집으로 옮겼다. 소녀는 곧 의식을 되찾았고 평온히 잠들었다.
다음 발현이 있기까지 1월21일 부터 2월 11일까지 마리에뜨는 매일 저녁7시에 정원에 나가 로사리오 기도를 바쳤다. 날씨는 아주 매섭게 쌀쌀했지만 마리에뜨는 매일 끈질기게 기도하였다. 아주 추운 날에도 그녀는 홀로 가 난한 이들의 동정녀를 진심으로 믿으며 또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였다.
다섯 번째 발현 2월11일, 토요일.
마리에뜨는 또 다시 정원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소녀와 함께 있었다. 두 번째 로사리오 기도 후에 마리에뜨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정원의 울타리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샘으로 걸어가며 예전대로 두 곳에서 정지하여 무릎을 꿇었다. 샘터에 다다르자 그녀는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혀 물 속에서 손을 담그고 묵주의 십자가로 성호를 그었다.
성모님께서 마리에뜨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고통을 덜어주려 왔단다. 다시 또 보자꾸나."
그리고 예전과 같이 사라졌다.
여섯 번째 발현 성모님은 2월 15일 수요일 전에는 발현하시지 않았다.
수요일 저녁, 성모님은 기쁨에 넘쳐 있는 마리에뜨 앞에 다시 나타나셨다.
소녀는 "성모님, 본당 신부님께서 당신께 표징을 보여 달라고 저에게 부탁하셨습니다." 하고 청하였다.
성모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응답하셨다.
"나를 믿거라, 나는 너희를 믿겠다."
그리고 성모님은 소녀에게 비밀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사라지면서 다시 덧붙이셨다.
"기도 많이 하거라. 또 보자꾸나."
일곱 번째 발현 월요일이었던 2월20일에는 눈이 많이 내리고 몹시 추웠다.
두번째 로사리오 기도가 끝나갈 때 마리에뜨는 갑자기 두 팔을 벌리고 더욱 빠른 속도로 기도하였다. 아름다운 부인이 다시 내려오셔서 소녀를 샘터로 인도하셨다. 마리에뜨는 같은 장소에서 무릎을 꿇고 매번 기도하였다. 샘에 이르자 성모님은 예전과 같이 미소를 띠시며 말씀하셨다.
"나의 사랑스런 딸아, 기도 많이 하거라."
그러고 나서 성모님은 미소를 그치고 떠나기 전에 좀더 엄한 목소리로 덧붙이셨다.
"다시 또 보자꾸나"
여덟 번째 발현 3월2일 목요일엔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세 번째 로사리오 기도를 시작할 때 갑자기 비가 그치고 하늘이 개이더니 별들이 빛났다. 소녀는 갑자기 입을 다물고 팔을 벌렸다. 성모님께서 마지막으로 발현하시는 것이었다. 성모님은 엄숙한 얼굴을 하고 계셨으며, 미소는 사라져 있었다.
성모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구세주의 어머니, 하느님의 어머니이니라."
얼굴에는 슬픈 빛을 띠신 채 성모님께서는 마지막 조언을 하셨다.
"기도 많이 하거라, 잘 있거라."
그리고 마리에뜨의 머리에 십자성호를 그어 축복하셨다.
발현에 대한 결론
성모님께서 바뇌에 발현하신 사실과 성모님의 메세지는 성경과 오늘의 교회 현실과 정확히 일치한다. -.
- 아주 가난한 가정의 소녀와 이름 없는 "바뇌"라는 작은 마을의 선택, 성모님 스스로 붙이신 (나는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다)란 호칭은 성경에 나와 있듯이 성모님의 가난함과 소박함을 밝혀준다. -.
- 기도에 대해 여러번 권고하신 것 (세 번씩이나 '기도 많이 하거라' 하고 일러주심은 성경의 루카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권장하시는 것과 일치한다. 오늘날 교회는 기도를 많이 하도록 강조하고 있다.
"나는 작은 성당을 원한단다." 성모님의 이 겸허한 부탁은 열렬하고 꾸준한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
- "이 샘은 모든 나라를 위한 것이다." 바뇌의 메시지는 전 세계에 알려야 하는 구원의 기쁜 소식임을 증명해 준다. -. "이 샘은 모든 나라들, 그리고 병든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 "나는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왔다." 성경에서도 병자와 고통 받는 이들은 예수님의 선교의 대상이었다. 교회는 이들을 돕기 위해 여러 자선 봉사 기관들을 만들어 왔다. -.
- "나를 믿어라, 나는 너희를 믿겠노라."는 말씀은 신약성서의 한 구절과 유사하다. (나에게 머물러라, 나는 너희 안에 머물겠다.) 요한15,4
- 성모님께서는 마리에뜨에게 네 번이나 말씀하셨다. "물에 손을 담그렴, 이 샘은 나를 위해 마련된 것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상징인 (영원히 넘쳐흐르는 샘)과 유사하다.(내가 주는 물은 영원한 삶을 주리라.)
교황 바오로 6세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잉태하신 은혜의 샘이신 성모님은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전교의 임무와 세상의 구원을 위한 새로운 힘을 교회에 불어 넣어 주셨다. 1964년 11월 21 일.
- 성모님께서는 엄숙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구세주의 어머니, 하느님의 어머니이다."
이것은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의 핵심이 되는 메시지일 것이다. (케르그 홉스 주교) -.
- 부드럽고 사랑스런 목소리로 소녀에게 말씀하신 성모님의 말씀을 잊지 못할 것이다.
"너를 위해 기도하마...안녕...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안녕히."
- 성모님께서는 그녀에게 비밀도 말씀해 주신다.
-. 그리고 성모님은 두 번에 걸쳐 다르게 소녀에게 축복을 내리신다. 우리는 성모님의 이러한 행동 안에서
"가서 모든 이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말해 준 것들을 알리라"고 파견하시는 듯한 모습을 느낄 수 있다.
(바뇌의 성모 발현 성지 한국어판 안내서를 그대로 베껴 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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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바뇌의 성모님 발현 성지를 일별해 봅니다.
성당이며 베꼬가 살던 집과 정원, 또 다른 몇 개의 작은 성당과 성모님상까지 모든 것들이 걸리버 여행기의 소인국 편인가? 모두가 조그마하고 아담해서 외려 친근감이 더 들었습니다.
루르드에서 올라온 후여서 자주 루르드와 비교를 해보게 되네요, 우선 규모에 있어서 비교가 되지 않 았습니다.
유럽 특유의 음울한 날씨에 전나무 숲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이 불면 산은 깊은 울음을 길고 괴이하게 토하는 외지고 한적한 산촌입니다. 바로 이 곳, 벨지움의 아주 한적한 산골 마을에서 성모님과 마주했던 마리에뜨 베꼬의 순진무구한 영혼과 만나려 귀를 기울여 봅니다. 가만히 가만히...
모두들 성모님께서 네 번째 발현 때 원하셨던 "작은 성당"으로 갔지요.
"세상에나!"
가이드 말따나 세상에서 제일 작은 성당이라네요. 대여섯 명이 서 있어도 꽉 차버리는 성당, 성모님이 발현하셨던 베꼬네 집 정원과 전나무 숲 그 위로 반짝이는 별이 쏟아지는 모습이 그려진 스테인 글라스와 왼쪽으로 약간 고개를 숙인 모습의 성모님, 그래서 더욱 예쁜 성모님이 우리를 반겨주었고 이 성당을 짓는데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이름이 쓰여진 이름표가 벽을 가득 채우고도 넘쳤습니다.
성당 바깥에는 미쳐 성당 안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나무로 만든 장의자가 가지런히 놓여 있고요. 마리에뜨가 성모님을 따라 걸어 가다가 무릎을 꿇었던 곳으로 우리도 베꼬처럼 걸어갑니다. 사 오십여 미터 걸어갔을까? 성모님이 인자하게 두 손으로 안수하려는 모습, 두 손을 가슴께 모은 자세로 우리를 반겨 주시네요.
거기는 바로 발현성지의 가장 중심지 한 가운 데, 우리 가슴께 정도의 높이의 받침대(?)에 계셨지요. 아마 두 번째 발현 때 회색 구름 같은 것 위에 서 계셨다는 모습을 재현한 듯 했습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어 약 십여 미터 거리에는 야트막한 언덕이 있고 언덕 경사 위에는 성모님이 계셨다. 고개를 왼쪽으로 갸우뚱한 것 외에는 흰 옷에 푸 른 띠를 두르신 모습은 흡사 루르드의 성모님과 달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 바로 이곳 이었구나! 세 번째 발현 때 말씀하셨던 모든 나라들과 병든 이들을 위한 샘물이 아닌가. 내 욕심이 앞서서 물통에 샘물을 가득 받으며 깊숙이 들여마십니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면서 정신이 번쩍 날 정도로 차가운 샘물은 내 밥통, 위장으로 들어가며 내 일상의 권태와 더러움을 깨끗이 씻어주는 게 아니겠습니까...
"밥통 같은 녀석" 누군가 나를 힐난하는 소리가 들려서 주위를 돌아보지만 고즈넉한 성지는 전나무 숲을 훑고 지나는 하릴없는 바람소리만 이따금 들려올 뿐 고요, 고요 자체였습니다.
정말이지, 멀리서 애써 찾아온 이 밥통 같은 녀석이 성모님께서 마련하신 이 샘물을 마시다니. 번쩍 정신이 날 정도로 차가운 샘물로 제발이지 흐리멍텅했던 나 자신이 새로이 태어날 수만 있다면 이 순례가 내게는 얼마나 고마울까요! 아니지, 이곳으로 불러주신 ‘그분’의 놀라우신 은혜에 몸과 마음을 맡기면서 우리 내외는 무척 행복했 습니다.
우리가 숨을 내쉴 때마다 마리에뜨의 맑디맑은 영혼의 떨림이 함께 하는 듯 청량한 초겨울의 바뇌는 우리에게 "봐! 잘 왔지 얼마나 좋아... 이제 넌 나와 함께 걸어가야지" 성모님이 속삭여 주셔서 또 기뻤습니다.
한참이나 머물렀지만 우리에겐 너무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몇 군데의 경당 중에서 "거룩한곳 (sacrament)"경당에서 미사를 드렸지요. 정말이지 이 성당은 우리나라 안동 교구의 어느 시골 성당과 다를 것 하나 없이 평범했습니다. 규모와 내부 장식도 그지없이 평범해서 순간적으로 레지오 피정 온 줄 알았다니까요. 이 순례의 마지막 미사여서 퍽이나 아쉬워했지만 더욱 집중을 할 수 밖에. 모두들 못 잊어 뒤돌아보면서 성지를 나서는 모습이 다 제 마음 같은가 봅니다.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바뇌가 또 보고 싶으면 어쩌지요? 첫 사랑의 애달픔처럼 아무래도 집에 돌아가면 또 여행가방 챙겨서 길 나설 것 같았습니다.
성지 바깥의 기념품 가게는 모두 철시했나 싶더니 다행히 베꼬 집안의 누이라는 할머니가 아직 마리에뜨 언니가 살아 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묵주를 골라 주었지만 성지에는 순례자가 우리뿐인지라 기념품 가게조차 쓸쓸해서 겨우 몇 개만 집어 들고 나옵니다. 사람은 역시 어울리고 시끌벅적해야 신이 나고 사는 맛이 나나 봅니다.
그러나 근사한 레스또랑에서 우아한 점심을 들었다는 얘기는 꼭 해야 직성이 풀리겠습니다.
어쩜 이번 순례 중에 가장 유럽풍의 분위기가 물씬 나는 바뇌의 예쁜 레스또랑이 어쩐지 잊혀지지 않네요. 주근깨투성이 주인 딸이 이웃 아이들과 소꿉놀이를 하는 한적한 식당에는 희끗 희끗한 콧수염이 어울리는 동네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이 다정스레 이야기를 나누며 나이프 질하는 고요한 레스 토랑이었습니다. 벽에는 사자 문양이 들어간 어느 귀족 가문 문장이 밑으로 드리워 있고 뿔이 아름다운 숫 사슴의 어글어글한 두 눈이 슬프게도 먼 산을 꿈꾸고 있는 박제가 흰 회벽과 아주 어울립니다. 사슴의 어글어글한 눈이 저와 흡사하게 닮았다고 누가 그러대요.
토마토가 들어간 걸까요, 붉은 스프에 빵을 적셔 먹으며 꽃무늬가 예쁜 하얀 접시에 놓여진 고기를 포크와 나이프를 정성껏 사용하여 우아하기 그지없는 벨지움의 성찬을 격조 있게 먹었습니다.
누가 그랬나요? 유럽의 풀코스 성찬을 즐기는 게 바로 예술이라고.
"모두 성인 되셨습니까?"
미소를 띠고 다짐하시는 송 요셉 신부님, 봉헌초가 타오르며 내는 소리와 전나무숲을 지나가는 바람 소리, 고즈넉한 바뇌의 일상. 소꿉놀이가 심드렁해서인가 우리 내외한테 주근깨 가득한 소녀가 말을 건네는 바뇌의 레스또랑, 모두가 우리를 불러주신 ‘그분’의 아늑한 품인양 일정도 관두고 마냥 머물러 있고 싶었더랬습니다.
바뇌에서... 간절한 목마름으로 길 나선 순례자가 그리워하던 ‘그분’을 만나고 돌아서는 마음 가득히, 한 줄기 햇살이 보석처럼 빛났습니다. .....
바뇌를 떠나며 멀리 있는 우리아이 리오바, 프란치스코와 교리공부하시겠다고 어려운 결심을 하신 어머니한테 마음 벅찬 기쁜 인사를 드립니다.
"기도 하거라, 기도 많이 하거라..."고 세 번이나 거듭 당부하신 성모님 말씀을 우린 늘 기억하고 실천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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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순례를 다녀오고 나서 제일 먼저 본당의 신자들한테 미안했습니다.
아무리 순례 상품이 걸렸기로 성당 돈으로 떠난 순례가 아닙니까? 뭔가 보답은 해얄텐데 궁리를 했지만 막막했습니다.
다녀와서 막 배우기 시작한 워드로 제일 먼저 손을 댄 게 바로 순례기였습니다.
이렇게 말이 많아졌지만 그땐 딱 하나, 바뇌의 성모님 발현지를 다녀온 소감을 쓰려고 했지요. 이상하게 뇌리에 떠나지 않을 정도로 제 마음이 끌렸던 게 바로 바뇌였습니다. 한참을 써나가는데 돌연 쓴 게 홀랑 날아가 버리는 게 아니겠어요. 익숙치 못해서 큰 실수를 저지른 게지요. 속이 상해 컴퓨터를 꽝하고 차보았지만 별 수 있간디요.
또 며칠이 지났는가, 불현듯 본격적으로 쓰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큰 대작(?)을 올려버리는 사고를 치게 된 게지요. 누구는 픽 웃어버리겠지만 제게는 너무 대단한 작업이었답니다.
순례 때 가지고 간 거라고는 겨우 매일미사하고 성가책 뿐이었거든요. 볼펜도 없어서 빌렸던 거로 생각납니다. 매일미사를 잘 아시겠지만 메모할 여백이 있던가요?
그런대도 이렇게 구절구절 풀어내는 솜씨를 누구는 ‘한 솜씨’라는데 천만에요. 제 머리로 어떻게 그걸 다 기억했을까요? 본당에 보답하고 잡은 제 마음을 ‘그분’께서 갸륵하게 보신 게지요. 이렇게 사고를 치고 나서도 저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그분’께서 불러주신 모든 게 고마울 뿐이었습니다.
제가 말이 많았나보네요. 바뇌는 가보면 별 거 없는 한가한 산골 마을이었지만 우리를 잡아당기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벗님들에게 강추하지요.
바뇌를 떠나면 쾰른입니다. 저랑 독일로 넘어가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