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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글을 쓰다가 특정 표현이나 단어의 정확한 뜻을 확인하고자 사전을 활용하곤 한다. 해당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알고자 하는 목적도 있지만, 어떤 환경에서 그 말이 사용되는지에 대해 궁금증을 해소할 필요를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도 요즘은 인터넷 환경의 포털 사이트에서 사전 기능이 제공되고 있기에, 곧바로 검색을 통해서 단어의 의미를 확인할 수가 있다. 하지만 사전을 검색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고 느껴질 때도 적지 않다. 해당 단어의 어감이나 앞뒤 문맥을 따져야 할 때에는 사전의 검색 기능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어떤 단어의 어원을 찾고자 할 때, 사전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어원을 탐색하는 일은 언어학을 전공하는 이들에게도 만만치 않은 노력을 필요로 하고, 그럼에도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인 저자가 우리말들 가운데 토박이말을 선정해서, 그 의미와 어감은 물론 어원이나 어떤 환경에서 활용되는지에 대해 소개하는 내용이다. 이 책에서 선정한 단어들에 대해 저자는 ‘사랑의 말’이라는 범주를 설정해서 풀이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하겠다. 이전에 이미 이 책의 부제를 제목으로 삼아 저서를 출간한 바 있지만, 그 책의 ‘자매서 이되, 온전한 독립서’로서의 성격을 지녔음을 강조하고 있다. 나로서는 전작을 읽지 못했기에, 이 책을 통해 저자의 작업이 지니는 의미를 따져볼 수밖에 없다. 독자들에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한 저자의 문장은 그래서 나에게는 술술 읽히면서도, 전체적인 글의 내용을 파악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저자는 이러한 성격의 저서를 기획하면서, ‘표제어를 토박이말에서만 고른다는 원칙’을 정했다고 한다. 그 이유를 ‘사랑은 가장 원초적인 감정이고, 고유어는 그 원초적 감정들의 우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하여 표제어를 풀이하면서 어원은 물론 영어나 프랑스어 등의 단어들과의 비교도 적시하고 있는데, 이는 세계 각국의 언어에 능숙한 저자의 언어 능력이 전제되어 있기에 가능했다고 여겨진다. 때로는 영화와 시나 소설 등의 문학 작품의 내용이나 구체적인 구절들을 인용하면서, 저자가 지향하는 ‘사랑’이라는 범주에 맞추어 표제어에 대한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춘향전> 등의 고소설과 현대시 작품의 일부분이 그대로 전재되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이들의 문장을 그대로 가져와 활용하기도 한다. 그러한 인용이 해당 단어를 '사랑의 말'로 풀이하기 위해서임은 물론이다.
모두 40개의 표제어를 제시하여, 해당 단어가 지닌 의미를 ‘사랑의 말’이라는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저자가 내세운 표제어에는 해당 단어에 대한 부제가 덧붙여 있는데, 예컨대 ‘입술’은 ‘사랑의 기슭 또는 봉우리’로 ‘감추다’라는 단어에는 ‘품거나 감추거나 가두거나’ 등으로 제시되어 있다. 이밖에도 ‘메아리’와 ‘미끈하다’, ‘혀놀림’과 ‘가냘프다’, ‘발가락’과 ‘손톱’ 등 다양한 표제어들이 저자의 관점에서 ‘사랑’이라는 범주에 맞추어 설명되고 있다. 때로는 농도가 짙은 ‘성적(性的)’인 내용이 서술이 보이는가 하면, 애틋한 감정이나 일반적 서술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 아울러 저자 자신의 경험을 토로하면서, 애써 해당 단어를 ‘사랑의 말’과 연결시켜 서술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표제어를 서술하는 방식이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고 하겠다.
저자에게는 이러한 표제어들이 ‘사랑의 말’이라는 이유로 선정했을 터이지만, 글쓰기를 자주 하는 나에게 이 책은 오히려 어원이나 뉘앙스를 이해하는 용도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졌다. 특히 단어의 어원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는 경우가 많기에, 그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점이 발견되기도 한다. 평소 낯선 단어를 보면 정확한 의미와 어원을 궁금해 하는 성격인지라, 그에 대해 다양한 경로로 탐색하곤 한다. 특정 단어에 대해 누군가 확신에 찬 설명을 제시하고 있는 경우에도, 그것이 다양한 학설이나 이론 중의 하나일 뿐인 경우가 적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 제시된 설명이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다른 부분은 아마도 이런 경우에 해당하리라고 이해된다. 저자가 내세우고자 했던 ‘사랑’이라는 주제도 흥미로웠지만, 적어도 이 책이 나에게는 표제어에 대한 어원이나 어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유익했다고 하겠다. 또한 표제어를 설명하는 방식의 글쓰기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하는 기회가 되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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