垓字(垓子, 해자, moat)
1. 의의
垓字(垓子, 해자)는 두 가지의 의미로 쓰인다. ① 능원(陵園)이나 묘(墓)의 경계 ② 성(城) 밖으로 둘러 판 못. 여기에서는 두 번째 의미의 해자를 다룬다. 垓字(垓子, 해자)는 濠隍(壕隍, 호황), 周隍(주황), 구지(溝池), 外濠(外壕, 외호), 護城河(호성하), 城池(성지), 塹壕(塹濠, 참호), 城壕(城濠, 성호), 城隍(성황), 城洫(城淢, 성혁), 隍塹(황참)이라고도 한다. 무덤의 주위의 도랑은 일반적으로 주구(周溝)라고 부르는데 삼국시대 대형 고분을 감싼 도랑을 해자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특히 영산강유역과 일본열도 각지에 분포하는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의 경우 분구(墳丘)를 감싼 도랑을 해자 혹은 주황, 주호(周壕)라고 부른다.
2.유래와 역사
가. 垓字(해자)의 발전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에 목책(木柵)과 환호(環濠)로 만들어 외부 침입이나 동물의 침입을 대비하였는데 성곽 주위에 땅을 파서 적이나 동물의 접근을 어렵게 하는 해자의 연원은 이러한 청동기 시대의 부락을 에워싸고 있는 환호(環濠)로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다. 환호(環濠) 또는 환구(環溝)란 한편 환호(環濠)는 環(두를 환), 濠(해자 호) 및 溝(도랑구, 해자구)에서 알 수 있듯이 마을이나 거주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마을이나 거주지역에 있는 인공 및 자연의 도랑으로 마을이나 왕궁의 주위를 둘러싸고 타원형이나 장방형, 사각형등으로 조성되었으며 이것이 나중에 성곽(城郭)이 생기면서 해자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환호(環濠)는 청동기시대 이후 그 수와 규모는 크게 늘고 본격적인 성곽(城郭)과 해자(垓字)로 발전하게 된다. 성곽에는 성곽이 만들어 지는 위치에 따라 산성(山城), 평지성(平地城) 및 평산성(平山城)으로 나누어 지는데 평지성(平地城)은 대개 큰 강의 본류나 지류에 접해서 만들어지는데 그 이유는 강이 자연적인 해자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나. 각국의 해자
⑴ 중국
중국에서는 신석기시대 이후 취락 주변에 환호(環濠)를 둘러 방어적인 성격을 분명히 하는 방어취락(防禦聚落)이 등장한다. 중국의 평지성은 강물을 인공적으로 돌려 성의 사방을 감싸서 해자로 삼는 경우가 많은데 성을 보호하는 강이란 의미로 호성하(護城河)라고 부른다. 해자가 있는 대표적인 중국의 건물로는 자금성(紫禁城)을 들 수 있다.
⑵ 유럽, 서아시아 및 중앙아시아
유럽이나 서아시아, 중앙아시아지역도 선사시대(先史時代)부터 취락을 보호하는 환호가 나타나고 성곽의 등장 이후에는 본격적인 해자를 설치하여 방어력을 높였다. 서양의 해자는 주로 중세시대에 발전하였다.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영주의 거처인 성을 방어하기 위해, 주위에 해자를 파고 물을 채워넣었다.
⑶ 한국
① 청동기시대
한국에서 환호가 등장한 시점은 청동기시대이고 이후 초기철기시대를 거쳐 원삼국시대까지 이어진다. 고조선에서는 성을 쌓고, 해자를 팠으며, 농토를 정리하여 세금을 매겼다.(시경(詩經) 한혁(韓奕)편). 위만조선(衛滿朝鮮)의 왕성인 왕검성(王儉城) 역시 해자를 갖추었을 가능성이 있다. 확실한 해자는 삼국시대 유적에서 찾아야 한다.
② 고구려
고구려 최초의 왕성으로 추정되는 중국 요령성 지안 환인(桓仁)시 하고성자(下古城子, 흘승골(紇升骨))는 압록강(鴨綠江)의 지류(小水)인 혼강(渾江, 비류수(沸流水)을 자연적인 해자로 삼고 있으며 두 번째 왕성인 길림성 집안(集安)시 국내성(國內城)은 압록강과 그 지류인 통구하(通構河)를 해자로 삼고 있다.
③ 백제
한성기 백제 왕성으로 추정되는 서울 풍납토성(風納土城)은 한강 본류와 지류를 이용하여 해자로 삼았으며, 인근의 몽촌토성(夢村土城) 역시 한강의 지류를 이용하여 해자를 돌렸다. 웅진기의 왕성인 공산성(公山城)은 산성에 해당되지만 금강을 자연적인 해자로 삼고 있다. 사비기의 부여 나성(羅城)은 백마강이 크게 굽이치는 지점에 위치하여 북편과 서편으로 강을 자연적인 해자로 삼고 있다.
④ 신라
신라의 왕성인 경주 월성(月城)의 경우 월성의 남쪽을 흐르는 남천이 남쪽의 자연 해자 역할을 하고 북편과 동편, 서편은 불규칙한 웅덩이를 파서 해자를 만들었다. 통일 이후에는 사면에 돌을 깔아서 호안석축(虎眼石築)을 마련하고 연못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 이때부터는 해자의 고유한 기능인 방어 이외에 관상의 기능이 추가된 것으로 볼 수 있다.
⑤ 고려 및 조선
이후 고려와 조선을 거쳐 평지에 만들어지는 읍성(邑城)은 대부분 해자를 갖추게 된다. 청주읍성, 낙안읍성, 해미읍성, 고창읍성, 동래읍성, 김해읍성, 웅천읍성, 광양읍성 등 조선시대의 읍성에는 대부분 해자가 남아 있다.
⑷ 일본
일본은 야요이시대(彌生時代, BC 300~AD 300) 취락을 보호하던 환호는 고훈시대(古墳時代, 3C중~7C말)에 접어들어 수장의 거관을 보호하는 해자로 변화하며 중세 시대의 성곽은 대부분 해자를 갖추게 된다.
니조 성(二條城)의 해자
3.해자의 기능
가. 방어적 기능
성곽 주위에 해자를 만든 이유는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성곽이나 생활공간을 방어하기 위한 용도가 주목적이다. 물론 처음에는 짐승을 막기 위해서였지만 차츰 외적이나 다른 집단 낸지 종족으로부터 자신의 삶의 터전을 방어하고 수호하기 위해 해자를 만들었다. 1592년 4월 15일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은 백성들과 죽기로 싸웠으나 순사했다. 당시 해자를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부산의 동래읍성 해자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칼에 머리를 맞아 살해당한 인간 등 많은 사람의 인골이 갑옷(甲衣), 창, 활 등의 무기와 함께 발굴되어 당시 전쟁의 양상을 생생히 보여주었다. 삼국시대 성곽의 해자는 청동기시대에 등장한 환호가 계승, 발전된 것으로 평가되며 주된 기능은 외적으로부터의 침략에 대비하여 방어력 증강시키기 위한 것이지만 이밖에도 다양한 기능을 담당하였다. 해자가 고려, 조선시대로 이어지면서 전투의 장으로 이용된 것은 임진왜란 당시 전투의 참상을 생생히 보여준 동래읍성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원래 해자(垓字, 垓子)는 동물이나 외부인, 특히 적으로부터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고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성(城)의 주위를 파 경계로 삼은 구덩이인데 방어를 하는 과정에서 해자가 실제의 싸움터로서도 이용되기도 하였다.
나. 영역 경계 및 보호의 기능
능・원・묘(陵園墓)의 경계무덤의 주위에 해자를 둘러 안과 밖을 구분하는 관념은 청동기시대부터 있어 왔다. 원삼국시대에 유행한 주구움무덤(周溝土壙墓)과 분구묘(墳丘墓) 역시 묘역(墓域)을 도랑으로 표현한 점에서 동일한 원리라고 할 수 있다. 고분을 둘레의 해자는 무덤을 외부로부터 보호하고 묘역을 확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 식수 확보 및 오물 배출기능
해자의 다른 기능은 식수의 확보, 성 안의 물과 오물을 바깥으로 배출하기도 하였다.
라. 접안 및 물류 기능
선박을 이용하여 물자를 효과적으로 운반하고 접안하는 기능을 하였고 특히 자연 하천을 해자로 삼은 경우, 해자는 물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중국 육조시대의 도성인 건강성(현 중국 江蘇省 南京市)은 양자강의 지류인 진회하(秦淮河)를 서편의 해자로 삼았는데 이곳에 교통과 물류를 담당한 접안시설, 교량, 창고 등 다양한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풍납토성의 경우도 자연, 혹은 인공해자를 이용한 접안시설과 성 안팎을 연결하는 도로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마. 관상기능
통일신라시대에는 사면에 돌을 깔아서 호안석축(虎眼石築)을 마련하고 연못의 형태를 갖추게 되는데 해자의 고유한 방어 기능에 이외에 관상의 기능이 추가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해자는 연못, 원지와 같은 관상 기능을 겸하는 경우도 있다. 애초 방어용 목적으로 만들어진 해자에 석축을 하여 연못으로 개조한 경주 월성이 대표적인 예이다.
바. 성토 및 공사 재료 확보 기능
해지 본래의 이외에 거대한 분구를 성토하기 위한 토량을 확보하기 위해 주변 지면을 굴착하기도 하였다. 일본 오사카의 전인덕천황릉(傳仁德天皇陵)은 5세기대 전방후원분으로서 전체 길이가 486m인데 삼중의 해자로 이루어진 묘역은 길이 800m를 넘는다. 해자의 굴착에서 나온 흙은 대부분 분구의 성토에 이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거대한 토성을 축조하기 위해서는 주변에서 다량의 흙을 채취하여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성 내외에 거대한 웅덩이가 만들어진다. 이 웅덩이를 의도적으로 활용하면서 방어력을 강화시킨 것이 해자의 또다른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4.해자의 분류
가. 자연해자와 인공해자
우리 나라에서는 토성(土城)이나 석성(石城) 모두에서 해자가 발견된다. 자연해자는 성곽 주변의 강이나 자연 하천을 이용하여 만든 해자를 말한다. 인공해자는 원래 강이나 하천이 없는데 인공적으로 만드는 해자를 말한다. 고대에는 하천을 활용한 자연적인 해자를 사용했고 삼국 시대 이후부터는 인공적으로 판 해자를 사용했다. 삼국시대 성곽, 특히 도성은 대부분 해자를 갖추고 있다. 고구려의 두번째 도읍지 길림성 집안시의 국내성은 북에서 남으로 흘러 압록강 본류에 합류하는 통구하(通構河)와 압록강(鴨綠江)을 이용하여 해자로 삼고 있다. 한성 백제 왕성인 몽촌토성(夢村土城)과 풍납토성(風納土城)은 모두 한강(漢江)으로 흘러들어가는 지류 성내천(城內천)을 이용하여 해자를 만들었다. 부여의 사비성(泗沘城)은 백마강(白馬江)이 크게 만곡(彎曲)하는 지점에 만들어짐으로써 백마강을 도성 서편과 남편을 방어하는 자연적인 해자로 삼았다. 신라 왕성인 월성 역시 남천(南川)이란 자연 하천을 이용하여 해자를 만들었는데 초기에는 방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지만 삼국통일 이후에는 석축 호안을 만들어서 관상적인 기능을 추가하기도 하였다. 수원 화성, 공주 공산성, 경주 월성 등에 해자가 있다.
나. 물이 있는 해자와 물이 없는 해자
해자(垓字)를 호황(濠隍. 壕隍)이라고 호(濠, 隍)가 물이 있는 해자이고 황(隍. 湟)은 물이 업슨 해자이다. 일반적으로 해자하면 물이 있기 일본에서는 물이 있는 해자를 미주보리(水堀, 찬 해자)라하고 물이 없는 해자를 채우지 않은 해자인 가라보리(空堀, 빈 해자)라고 한다.
물없는 해자는 모양에 따라 산의 능선을 가르는 것을 호리키리(堀切), 가로로 만든 것을 요코보리(横堀)라고 부른다. 경사면을 따라 만든 것을 다테보리(竪堀), 여러 개의 다테보리가 연결된 것을 연속 다테보리(連続竪堀)라고 한다. 물없는 앞에 구덩이를 파는 등의 형태로 설치한 장애물을 쇼지(障子, しょうじ, 장자)라고 하는데 쇼지가 있는 해자를 쇼지보리(障子堀)라고 부른다. 일정 간격으로 연속된 쇼지가 있는 해자를 우네보리(畝堀)라고도 한다.
다. 바깥해자와 안해자
해자의 위치에 따라 평지성 빡에 있는 외호(소토보리, 外堀, 바깥 해자), 성 안쪽에 있는 내호(내호, 우치보리, 내堀, 안쪽 해자), 성 가운데 있는 중간해자(나카보리, , 해자)하가도 한다.
이밖에 일본에서는 성하 마을을 방어하기 위해 소가마에(総構え)를 둔 성곽일 경우 소가마에 해자를 소보리(総堀, 惣堀)라고 한다.
해자를 의미하는 한자
垓(해), 隍(湟, 황), 塹(참), 濠(壕, 호), 溝(구), 池(지), 洫(淢, 혁), 성(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