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지기들의 오늘의 둘레길 코스는 정릉 서경대 뒷길에서 북한산의 칼바위능선 방향으로 향합니다.북한산(北漢山 836m)이라면 한반도 남쪽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명산(名山) 중의 명산(名山)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리라고 생각됩니다. 문화재청에서 지정한 명승(名勝) 제10호에 해당하는 산으로 일명 삼각산이라고도 불리웁니다. 삼각산(三角山)은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국망봉)등 세개의 봉우리가 뿔처럼 우뚝 솟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2억2,500만년 전(前) 중생대(中生代)에 관입암상(貫入巖床)으로 탄생한 봉우리들입니다. 수 많은 세월 동안 암반을 뚫고 마그마가 치솟아 올라서 기기묘묘(奇奇妙妙)한 형태의 기암절벽(奇巖絶壁)을 만들어 냈습니다. 게속 진행되는 침하(沈下) 침식(浸蝕)작용의 진행으로 수 많은 봉우리와 계곡들이 명작품을 이루고 있습니다. 북한산국립공원은 북한산과 인근의 도봉산(道峰山 739.5m)과 사패산(賜牌山 552m)을 아우르는 명칭입니다. 2011년도에 북한산 둘레길 21개구간이 완성되었으며 총 거리가 71.8Km에 달하고 있습니다. 사람과 자연이 하나로 동화되어 자연의 향기와 아름다움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산책로입니다. 산자락의 저지대 길과 샛길들을 연결하여 산책과 산행의 즐거움도 맛볼 수가 있습니다. 구간마다의 명칭에서 보듯이 그 둘레길만에서 느낄 수 있는 역사와 문화 생태 체험을 할 수도 있습니다. 제1구간인 소나무숲길과 순례길 흰 구름길 솔샘길 명상길 평창 마을길 얫성길 구름 정원길 마실길 내시묘역길 효자길 충의길 송추 마을길 산너머길 안골길 보루길 다락원길 도봉 옛길 방학동길 왕실 묘역길 마지막 21구간의 우이령길로 나뉘어 부릅니다. 21개 둘레길 구간에서도 21번의 우이령길은 길이로는 6.8 Km에 불과합니다. 천천히 걸어도 2시간이면 우이동 버스종점에서 경기도 양주시 교현삼거리에 닿을 수가 있습니다. 우이동 방면에서 교현리로 넘어가노라면 오른쪽에는 화강암의 걸작품인 오봉(五峰)이 환한 햇살을 받으며 나란히 군대 열병식(閱兵式)을 받고 있는 모습입니다. 왼쪽에는 장수(將帥)의 기상이 느껴진다는 상장봉(上將峰 534m)이 산객들을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상장봉 산신당(山神堂)에서는 매년 음력 9월 초에 마을의 안녕과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산신제를 마을 공동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서울과 경기도 양주를 이어주는 고갯길(嶺)이었습니다. 병자호란 때에는 청나라에게 공물(供物)을 바치는 치욕의 산길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으로 스님들이 몰래 서울을 드나드는 비밀통로 역할을 합니다. 1968년 1월 21일 김일성의 명(命)으로 북한 공작원 31명이 휴전선을 넘어 우이령을 통과하여 수도권으로 침투를 시도합니다. 세검정 창의문을 통과하려다 북악산(北岳山)근처에서 국군에게 29명이 사살됩니다. 한명은 도주하여 북으로 다시 돌아가고 김신조는 자수 형식으로 남한의 품에 안깁니다. 2000년 2007년도에 방한을 하여 송이버섯을 선물한 조선인민군 대장이 바로 도주했던 그 당시의 한명입니다.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남북관계의 측면에서 생각을 해도 그런 전력(前歷)의 소유자를 대화의 대표로 받아드리는 것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도저히 납득키 어렵습니다. 송이버섯을 선물이라고 버젓이 들고 온 공작원 출신이나 그것을 받고서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을 당사자들의 모습이 지금도 역겨울 뿐입니다. 역사는 예측이 불가(不可)한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일이라지만 아이러니라고 하기에는 쓴 웃음만을 자아내게 합니다. 우이령길을 김신조길이라고도 부르는 이유입니다. 41년 동안이나 출입이 통제 되었다가 2009년에야 시민들에게 개방이 됩니다. 오랜 세월 통제한 덕분에 자연 생태계가 그대로 보존된 도심속에 비무장지대( DMZ)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최근까지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가 점철된 파란만장(波瀾萬杖)의 길이기도 합니다. 이같은 둘레길을 단 한두번에 걷기에는 무리이며 둘레길을 조성한 목적에도 어긋나는 노릇입니다. 백년지기 노객들은 몇 개월 전에 이미 북한산둘레길 21개 코스 모두를 밟았습니다. 요즘은 둘레길에서 조금은 벗어나 산행도 함께 아우르는 코스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칼바위능선 중간 지점에서 빨래골 쪽으로 하산을 합니다. 가파른 계곡에는 눈이 그대로 얼어버린 빙판길을 조심스레 밧줄을 잡으며 거북이 걸음을 걸어야 합니다. 모처럼 합류한 시마니와 화주려 그리고 조단서 위짜추 씨모우 또파파 서류바 패노우 까토나등 아홉명입니다. 미끄러운 산길에서 서너명은 아이젠을 나누어 착용하며 안도감과 볼멘소리가 섞여서 터져나옵니다. 한편으로는 쾌청한 파아란 하늘 아래에 바람도 한점 불지 않는 날씨가 노객들의 발걸음을 가볍게도 합니다. 삼각산 삼성사를 거쳐서 화계사에서 도봉산역 방향의 둘레길을 포기하고 쌍문역까지 내려옵니다. 몇몇은 힘들다고 마을버스로 수유역에서 종로3가역으로 먼저 출발했습니다. 낙원동에 있는 낙원 마산아구 해물찜 맛집에서 치빠흐와 대바기를 합류합니다. 모두 열한명으로 쫄기하고 감칠맛으로 유명한 맛집입니다. 빙판길을 하산하느라 얼었던 몸과 마음이 쐬주와 곁들인 아구찜 한점과 권주가의 합창으로 씻은듯 날아갑니다. 백년지기인 우리들 연세(年歲)에는 체력에 맞는 산행으로 건강에 보약이 되도록 배려함이 좋으리라는 의견들이 거개의 일치를 보입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지나치면 오히려 모자람만도 못하다는 단어가 생각납니다. 노객들의 각자의 생각과 취향에 따라서 지나침과 모자람은 자신만의 기준(基準)이 될 뿐이라는 것을 되짚어 봐야 할 문제는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서류바의 애부애처(愛婦愛妻)이며 주방장이자 사장님이신 사모(師母)께서 오늘은 특별한 서비스와 푸짐한 과일까지 보태여집니다. 나 잘났노라고 떠들고 있는 불통(不通)과 아집(我執) 뿐으로 쭈그러진 노구(老軀)들에게 빳빳하면서도 부드러운 정기(情氣)를 불어 넣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