七世 백죽당공(栢竹堂公)
휘는 상지(裵尙志), 호는 백죽당(栢竹堂)이며, 字는 전하지 않는다. 흥해군의 三男으로, 고려 충정왕(忠定王) 3년(1351) 신묘(辛卯)년에 태어나셨다. 공민왕 때 음사(蔭仕)로 벼슬에 나아가 통훈대부(通訓大夫)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에 올랐으나, 정국(政局)이 문란(紊亂)하므로 벼슬을 버리고 조정에서 물러나셨다.
태조 이성계가 혁명(革命)을 일으켜 새 왕조를 세우니, 아우인 전서공(典書公)과 함께 영남으로 오셨다. 이후 백죽당께서는 안동 서부 금계촌(金溪村)에 정착하시고 아우인 전서공은 풍천면 하회(河回)에 정착하셨는데, 아마도 외가인 손정평공(孫靖平公)께서 일직(一直)에 사셨기에 안동으로 오신 듯하다.
백죽당은 집 주변에 잣나무와 대나무를 심어 ‘새 왕조에 불복(不服)하고 불사이군(不事二君)의 뜻’을 나타내시면서, 호를 ‘백죽당(栢竹堂)’이라 하셨다. 금오산(金烏山) 아래에 은거(隱居)하시던 길재 야은(吉再 冶隱) 선생과 서산지조(西山之操)를 가다듬으며 도의(道義)로 서로 믿고 시율(詩律)로 창화(唱和)하며 굳은 지조를 보이니, 당시 사람들은 칭송하였고, 후세 사람들은 전조절의지신(前朝節義之臣)이라고 우러르며 공경하고 찬양하였다. 1413년(태종13) 7월 27일에 향년 63세로 돌아가시니, 안동부 북쪽 가수천(嘉水川) 자좌원(子坐原)에 장사지냈다.
배(配)는 영가군부인권씨(永嘉郡夫人權氏)이니, 증영의정희정(贈領議政希正)의 따님이고, 좌우위보승별장용일(左右衛保勝別將用一)의 손녀요, 태종(太宗) 때의 우의정(右議政)을 역임한 진공(軫公)과 남매(男妹)간이시다.
四男一女를 키우셨으니, 長男 권(權)은 음사(蔭仕)로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지내셨고, 二男환(桓)은 문과에 급제하여 충청·전라·황해(忠淸·全羅·黃海)의 관찰사(觀察使)를 지내셨고, 三男 남(楠)은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지내셨고, 四男 강(杠)은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정랑(吏曹正郎)을 지내셨다. 一女는 대사헌 월성이승직(大司憲 月城李繩直)이시다.
백죽당의 평소 돈독한 사행(事行)과 거관이력(居官履歷)이 자세히 전하지 않는다. 자제 4형제분이 모두 백죽당의 사행에 대해 한 말씀도 없으시고, 詩集 약간 권(若干 卷)도 전해지지 않고 있어 후손들의 유한(遺恨)이 되고 있다.
백죽당의 사적이 전해지지 않는 배경에 대해, 경옥재 이보(景玉齋 李簠)는 망국유신(亡國遺臣)의 원한(寃恨) 때문에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한 백죽당의 유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선생 묘 앞의 옛 비석에는 ‘通訓大夫判司僕寺事興海裵公諱尙志之墓 一男伊川監務權 二男兵曹佐郎桓 三男成均學諭楠 四男成均館幼學杠 一女大司憲李繩直 有明永樂二十年甲午正月二十二日丁酉 立碣(통훈대부판사복시사를 지낸 흥해배공 휘 상지의 묘이다. 일남은 이천감무 권이며, 이남은 병조좌랑 환이며, 삼남은 성균학유 남이며, 사남은 성균관유학 강이며, 딸은 대사헌 이승직이다. 영락20년 갑오 정월 22일 정유에 비석을 세웠다.)’이라 쓰여 있다.
백죽당의 자세한 사적은 전해지지 않았으나, 후인들의 칭송은 그치지 않았다. 사가 서거정(四佳 徐居正)은 백죽당의 절의(節義)를 칭송하여 다음의 시를 지었다.
분명출처매전현(分明出處邁前賢) 천수시편세기전(千首詩篇世幾傳)
백죽이고운물로(柏竹已枯雲物老) 풍류고치상삼연(風流高致尙森然)
또 서애 류성룡(西厓 柳成龍)은 백죽당을 일컬어 ‘상청옥결 고도시위(霜淸玉潔 高蹈時危)’라고 칭송하였다.
효종(孝宗) 1년(1650)에 사림(士林)들이 백죽당의 절의를 앙모(仰慕)하여 안동 금계동에 경광정사(鏡光精舍)를 짓고 사당을 세워 제향하였고, 숙종 16년(1690)에 또 소청(疏請)하여 병조판서(兵曹判書)의 증직(贈職)을 받으셨다.
『야은집(冶隱集)』에는 야은 길재(冶隱 吉再)에게 보낸 다음과 같은 백죽당의 시가 실려 있다.
山林隱君子(산림은군자) 산림 속에 숨어사는 군자요
天地一書生(천지일서생) 천지 사이의 한 서생이지만
孝是曾參孝(효시증삼효) 효성은 증삼과 같은 효성이요
名爲嚴子名(명위엄자명) 이름은 엄광과 같은 이름이네
才同鳥岳秀(재동조악수) 재능은 금오산처럼 빼어나고
心與鳳溪淸(심여봉계청) 마음은 봉계처럼 맑다네
欲往趨函丈(욕왕추함장) 찾아가서 스승으로 모시고 싶은데도
慚余托世情(참여탁세정) 나를 세정으로 대해주는 것이 부끄럽네
- 서산지조(西山之操) 서산은 수양산을 말함. 따라서 서산지조는 백이숙제의 지조를 뜻함.
첫댓글 세적에는 인조(仁祖) 경인년(1650)이라 되어있는데, 효종(孝宗) 1년(1650)의 오기(誤記)로 생각되어 고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