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를 길에서 읽다 김 태 희 (역사연구자)
지난 8월 중순, 드디어 《열하일기(熱河日記)》의 길을 다녀왔다. 다산연구소 주관으로 약 40명이 함께한 여행이었다. 비행기와 기차로 다롄을 거쳐 단둥으로 갔다. 연암 박지원이 한양에서 의주까지의 여정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너무 범상해서 그랬을 텐데, 그 길은 지금 아예 막혔다.
단둥에서 호산장성(虎山長城)으로 이동해 압록강과 남쪽 땅을 바라보았다. 의주에서 도강을 앞둔 연암의 시선과 정반대였다. 연암은 압록강을 건너면서 마치 여행의 서론처럼 경계(境界) 사상을 설파했다. “도(道)라는 것은 다른 데서 구할 게 아니다. 바로 그 ‘제(際)’에 있다.” 진리란 ‘제’, 즉 이쪽도 저쪽도 아닌 맞닿은 경계, 그 사이에 있다는 것일 텐데, 이번 여행에서 이를 음미해 볼 수 있을까? 당장 경계(警戒)와 단절의 기운이 농후한 압록강에서는 여의치 않았다.
책문을 지나 봉황산성에서, 연암은 평양이 여러 곳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후세 선비들이 평양(平壤)과 패수(浿水)의 비정을 잘못함으로써 고대의 강역을 스스로 좁혀버렸다고 개탄했다. 지명 이동설은 상당히 설득력 있다. 그러나 섣불리 단정할 것은 아니다. 이곳은 고조선과 고구려의 무대였고 거란·여진 등이 오가던 역동적인 땅이었으며, 오랜 세월 여러 삶의 터전이었다. 지금은 동북공정의 현장이기도 하다. 경계에서 경계를 허물다 4일째 되던 날, 거류하교를 앞두고 일행은 버스에서 내렸다. 요동과 요서를 가르는 요하(遼河)를 걸어서 건넌 것이다. 다시 버스로 달리는데, 평원 멀리 병풍같이 펼쳐진 산이 나타났다. 바로 ‘의무려산(醫巫閭山)’이었다. 산신에 제사 지내는 북진묘(北鎭廟)를 먼저 둘러본 후, 의무려산 암봉 위의 망해사(望海寺)에 올랐다. 눈앞에 요동 벌판이 펼쳐지고 멀리 바다(발해)가 보이는 듯했다. 의무려산에 오른 것은 나에게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다.
연암은 의무려산이 중화와 오랑캐의 경계라고 소개했는데, 연암의 선배격인 담헌 홍대용은 이 경계를 배경으로 중화와 오랑캐의 경계를 허무는 《의산문답(醫山問答)》을 썼다. 담헌은 인물균(人物均)·화이일야(華夷一也)로 인간 중심과 중국 중심을 비판하고, 문명과 야만을 자의적으로 구분하는 독선적 사고를 논파했다. 지구 중심의 편견까지 깨뜨렸다.
중화주의에 맞선 조선중화주의가 중화주의를 벗어날 수 없듯, 동북공정에 맞선 아류 동북공정은 길이 아니다. 고토 회복을 추구하는 논설은 전쟁의 씨앗이 되고, 강자를 추구하는 논리는 결국 강자 지배의 논리에 복속된다. 이천시물(以天視物), 어느 한쪽의 관점이 아니라 하늘의 관점, 즉 공평한 관점이 필요하다.
5일째 되던 날, ‘영원성(寧遠城)’에 들어갔다. 늠름한 성곽에 ‘영원(寧遠)’이란 붉은 깃발이 나부끼고, 중심 도로의 양쪽에 연암이 묘사한 두 조가패루가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영원성은 연전연승하던 누르하치 대군이 원숭환(袁崇煥)에게 격퇴당한 곳이다. 이때 서양 오랑캐[紅夷]의 대포인 ‘홍이포’가 위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원숭환은 숭정제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이를 두고 연암은 명이 스스로 장성을 허물어버린 꼴이라고 했다.
영원성에서 산해관(山海關)으로 이동했다. 연암은 「산해관기」에서 산해관의 웅장한 모습을 소개했지만, 글의 끝은 대략 이랬다. 진의 장수 몽염이 장성을 쌓아 오랑캐[胡]를 막았지만 정작 진을 망하게 한 호(胡, ‘호해’를 뜻함)는 집안에서 자랐으며, 명이 산해관을 설치해 오랑캐에 대비했지만 오삼계가 문을 열어 그들을 맞았다. 그러니 산해관에 대해 더 이상 할 말이 뭐 있겠는가. 성이 안에서 무너지다 산해관 근처에는 장성 축성에 징발된 남편을 찾아 나선 맹강녀(孟姜女)의 사당이 있다. 위용을 자랑하는 성은 민초의 피와 땀으로 쌓아 올린 것이다. 그런 성이 아무리 견고해도 지키려는 마음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아니, 성의 안팎 사람이 서로 마음이 통하면 성은 아예 필요 없을 터이다. 지키고 막아야 할 경계가 사라지고, 만나고 통하는 경계가 되기 때문이다. 한편, 물리적인 성보다 더 무서운 것이 관념이 만든 경계와 성이다. 그러기에 담헌 사상은 평화와 공존의 사상으로 오늘날 다시 읽어야 한다. 어느 한쪽에 서지 않는다는 점에서 담헌 사상이야말로 도는 경계에 있다는 제(際) 사상에 충실한 것이 아닐까.
책으로 읽던 《열하일기》를 길에서 읽는 여행이었다. 이번엔 열하(熱河)가 빠진 열하(熱夏) 기행이었다. 베이징에서 열하(지금의 청더)까지는 내년 봄 2차 여행으로 이어질 계획이다. 《열하일기》는 읽고 또 읽을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