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 화백의 그림은 우리 같은 문외한에게도 친숙하다.
연유는 알 수 없으나 넷 서핑을 하다 보면 그분의 그림이 여기저기 보여
아무렇지도 않게 퍼와도 되는 것 같았다.
독특한 화풍이 누구라도 한눈에 천경자 화백의 그림임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천경자 화백은 그림을 잘 팔지 않았다고 한다.
그림 한 점, 한 점이 마치 애지중지하는 자식과 같아서
청에 못 이겨 팔았다가도 도로 찾아올 때가 많아
화상들이 싫어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진정한 예술가였던 것이다.
젊은 시절엔 그분의 산문집도 좋아했다.
글을 보나 그림을 보나 그 영혼의 자유로움이 전해져 와
많이 부러워 하고 흠모하는 마음이 컸다.
어느 글에선가 썼던 길례언니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미인은 아니지만 개성있는 외모에 차림새는 또 얼마나
세련되고 매력적이었던지....
내 보기에는 화가 자신이 그림이었다.
하지만 글에서도 잘 구사하는가 하면 가끔 육성으로 들을 수 있었던
질펀한 남도 사투리는 무엇보다도 반전의 매력과 친근감으로 다가왔다.
매체를 통해 간간이 그분의 소식을 들으며
그런 분은 늙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는 물이 다른 나같은 사람의 관심은 그저 거기까지였다.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와서 그렸다는 그림들도 매체를 통해서 감상했을 뿐
전시회에도 가본 적이 없었다.
여러가지 소문도 들려왔다. 그 걸출한 화가가 치매에 걸렸다던가
'미인도'라는 그분의 그림이 위작이다, 아니다라는 논란의 와중에
가족과의 불화도 있었던 것 같고 결국 미국으로 가서 칩거하셨다는 등
한 여인으로서 너무나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았는데
명성에 비해 말년이 안타까울만치 평탄치 않아 보였다.
방송을 통해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이건 내 그림이 아니야, 이건 가짜야"
천경자 여사가 단말마처럼 부르짖었다는 그 외마디 소리가
그대로 씻을 수 없는 한이 되어버렸다는 것.
누가 자기 자식을 못 알아보겠으며 하물며 자식같은 그림을
몰라보겠냐는 그분의 통한이 고스란히 이입되고 있었다.
방송은 상당히 객관적으로 보여주었다.
가차없이 파헤치고는 있었지만 우리에게 철저히 '보여주기'의 사명을 다하고 있었다.
무지하고 권위만 내세우던 그 시절의 관리들과, 전시행정,
이해타산에 급급한 화랑협회,
나약한 인간의 비겁함,
예술을 예술로 보지 않는 천박함....
카메라가 추적한 관계자들의 행적은 모두 그랬다.
예리한 질문을 피하여 급히 도망치며 '몰라요'만 연발하는 그, 그녀.
그 '몰라요'가 우리 귀에는 '네, 제가 그때 틀렸습니다'로 들린다는 것을
정말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고바우 영김님이 아직 살아계시는구나 싶어 엄청 반가웠다.
그분의 말씀.
"그때는 모든 정황이 진실을 말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모작인지 아닌지 봐달라고 미술관 쪽에서 보내왔을 때
천화백이 아니다, 하며 주지 말던지 없애 버렸어야 했어요..."
김성환 화백의 두 마디는 방송에서 취재한 모든 의문과
사실을 압축하고도 남았다.
결정적 비수.
(당시 '움직이는 미술관'을 기획했던) 문공부 관계자.
"이 작품(미인도)을 진짜로 만들지 못하면 7명의 목을 치겠다고 했어요”
한 여인의 아픔과 한을 그림으로 승화시켜 자기만의 독보적인 화풍을 지켜온
천경자화백이 결국 한을 풀지 못한 채
이국에서 쓸쓸히 가셨고, 그 한이 자녀에게까지 대물림 되었을까.
얼마나 이땅의 사람들이 싫었으면 가신 사실조차 숨겼을까.
한 달 전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그분의 그림들을 보고 왔다.
방송을 보고 그때와는 또 다른 심정으로 천화백을 다시 만나고 싶다.
첫댓글 중요한 건 작가가 자기 그림인데 아니라 하는 건 자기 자식을 내 자식이 아니라 하는 거와 똑 같죠.
반대로 내 자식이 아닌데 내 자식이라 할 수 있나요. 아닌 건 아니거죠. 워낙 다작도 아니고 채색화라 손이 많이 갑니다 작가는 척보면 내그림인 줄 알죠. 전 그당시 상황을 벌써 알아봤지요~
큰 돈에 거래되고 다리를 건너고 건너면 말을 함부로 할 수 없는 거죠.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작가가 안 계시니~
사실 천화백 그림은 위작하기가 쉽습니다. 사족 제가 동아미술제 등단할 때 천화백님이 심사위원중 한 분 이셨다는 사실이 전 좋았죠~ 젊어 그 분 뱀그림보고 충격받은 거며 저 나름 천화백님과 인연이 있네요~ㅎ
저는 그 방송 보면서 얼마나 울컥하고 기가 막히던지요. 작가가 아니라면 아닌 거지, 웬 얄팍한 수작들인지, 그때 진위 여부 가리던 화랑협회 회장인지 누군지 하는 여자, 지금 나이깨나 잡수셨을 텐데 기분이 어떤지 모르겠어요. 그 위작하시는 권모씨, 대단합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