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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민 시인 시조집 평설문>
수행자의 길과 어머니의 새벽달
野城 이도현
(한국시조협회 고문)
1.
道圓 金東旻 시인이 네 번째 시조집 「내 하늘」을 발간한다. 축하를 드린다. 김시인은 일찍이 <문학사랑>으로 신인 작품상을 수상하여 문단에 등단하고, <호서문학>에서 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중견시조시인이다.
또한 서예부문에서도 일가견을 이루어 충청서도대전에서 특선하고, 양성서도회(養成書道會)에서 오랫동안 기예를 연마하면서 우리고장 서예대가로 널리 알려진 분이다.
김시인은 평소 과묵하신 분으로 불문(佛門)에 입문하여 수행자(修行者)의 길을 걸으면서 여러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이번 발간하는 시조집에도 불심(佛心)을 기저로 하여 세상을 살아가는 시인의 겸손한 자세와 오랜 경륜(經綸)에서 샘솟는 혜안(慧眼)이 여러 작품에서 발견된다.
시조집 「내 하늘」에는 모두 80편을 4부로 나누어 묶었다. 1부에서는 시인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와 그 길을, 2부에서는 어머니에 대한 사모의 정과 돌아가신 후의 통회의 눈물, 가족과 고향에 대한 추억을, 3부에서는 꽃과 자연을 노래하고 4부에서는 우리나라 명승고적을 찾아 그 빼어난 승경(勝景)을 예찬하고 있다.
2.
저 뜨겁고 판한 가슴 숭고한 사랑이여
구겨진 삶 보는 대로 가슴으로 문질러
구김이 펴질 때까지 몸 바치는 소신공양
가슴으로 베푸는 위없는 사랑이여
고된 삶의 흔적들 말끔히 지워주고
무심히 물러나 앉는 이타향의 보살도
그 무슨 공덕으로 저런 가슴 받았는가
저토록 뜨거움은 어떻게 이뤘는가
가슴이 가슴을 후벼 들숨날숨 얼얼하다.
-<다리미>전문
시조집 첫머리에 <다리미>를 내세웠다. 그만큼 내공(內功)이 들어간 작품이다. 몸 바치는 소신공양(燒身供養)을 다리미의 속성과 용도에 비유한다.
자신의 몸을 태워 부처님께 바치는 정성을 다리미의 속성에 환치(換置)한 작품이다. 자기 몸을 뜨겁게 데워 구겨진 삶을 가슴으로 문질러 구김이 펴질 때까지 몸을 바치는 뜨거운 공양이다.
가슴으로 베푸는 큰 사랑이요, 뜨거운 정성이다. 고된 삶의 흔적을 지워주고 아무 말 없이 물러나 앉는 이타향(利他鄕)의 보살도(菩薩道)-보살이 닦는 길-이다. 남에게 봉사하고 헌신적 사랑을 베풀고도 자랑하지 아니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무엇을 바라지도 않는 보살의 세계이다.
무슨 공덕(功德)을 쌓았기에 저런 가슴을 받았는가. 가슴과 가슴을 후비는 얼얼한 느낌이다.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붓 끝에 혼을 모아
나서는 고독의 길(道)
한 걸음 한 걸음
긴장의 연속 행간
그윽한 묵향 따라서
길에 길을 잇는다.
-<서예>전문
왜 시조(時調)인가?
우리 조상의 넋과 혼이 담겨 있는 겨레시이기 때문이다. 신라시대 싹이 트고, 고려시대 그 시형이 정착되어 조선 오백년 꽃을 피우고 오늘날까지 연면히 이어오는 우리 고유의 전통시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시조는 우리의 호흡이요, 꽃이요, 맥박이다.
이 작품 <서예>는 시조의 전범을 보이는 작품이다. 시조는 본래 단수(單首)에서 출발했다. 초, 중, 종, 45자 내외면 거뜬히 작품 한 편을 만든다. 이 짧은 단수 안에 우주를 담는다 하였다. 작품 <서예>도 단수 안에 ‘서예(書藝)’라는 예술의 큰 집 한 채를 지었다.
서예를 초장에서는 고독한 길이요, 중장에서는 긴장의 연속 행간, 종장에선 길에 길을 잇는다고 마무리 한다. 논리전개에서 정반합(正反合)의 원리를 도입한 것이 아닐까.
시조의 묘미는 종장에 있다. 초장과 중장은 3, 4, 3(4), 4 반복리듬이요, 종장에서 그 운율을 3, 5, 4, 3으로 반전(反轉)한다. 이때 의미(意味)의 율격 또한 같다. 이것이 시조 종장의 미학이요, 자유시에서 맛볼 수 없는 오묘한 가락이다.
작품 <서예>는 붓 끝에 혼을 모아 한 걸음 한 걸음 긴장의 행간 속에서 묵향을 따라 길과 길을 잇고 또 찾아가는 끝없는 수행길이다.
옷 벗어 걸을 때면
그 매미가 떠오른다
껍데기 훌렁 벗어 나무에 걸어놓고
비래사
골짜기에서
목청껏 노래하던.
미물의 몸을 받아
어둠 속 살던 그가
그 무슨 원력으로 대명천지 환생하여
오가는 중생을 위해
음성공양 그리 했나.
나목들 참선에 든
적막한 겨울산
나무에 매미허물 영락없는 가사장삼
오롯한
비움의 경지
성스러운 열반길.
-<길(道)>전문
세 수로된 연시조 <길(道)> 전문이다.
매미의 일생을 자세히 관찰하고, 불자(佛者)가 세상에 나와 중생을 제도하고 마지막 열반(涅槃)에 드는 경지를 매미의 일생에 환치한 작품이다.
미물의 몸으로 태어나 어둠속에서 살던 그가 대명천지(大明天地)로 환생하여 많은 중생(衆生)을 위하여 소리를 뽑아 노래로 공양했는가?
벌거벗고 참선(參禪)에 든 적막한 겨울산 나뭇가지에 걸린 매미허물-가사장삼(袈裟長衫)-한 벌 벗어 놓고, 모두를 비우고 성스러운 열반 길에 들어선다. 그것이 불자(수행자)의 길이 아닌가.
수염을 깎다 말고 거울을 닦는다
쭈그러져 낯설어진 거울 속 사나이
하루치
자란 업적들
최대한 밀어낸다.
거울이 아니면 내가 나를 보겠느냐
덕분에 입 주변은 자주자주 살핀다만
한평생
보지 못하는
뒷모습이 걱정이다.
내친김에 날 도와 등도 보게 해다오
탑세기 털어내고 머리칼도 매만져
뒤쫓아
오는 이에게
부끄럽지 않게나.
-<수염을 깎으며>전문
시인은 지금 수염을 깎고 있다. 하루치 자란 업적들을 최대한 밀어낸다. 거울을 보고 내 입 주변은 자주 살펴서 수염을 깎는데 한평생 보지 못하는 뒷모습이 걱정이란다. 그러면서 뒤쫓아 오는 이에게 부끄럽지 않게 탑세기 털어내고 머리칼도 매만져야겠다는 생각이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서산대사의 ‘답설가(踏雪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눈 내리는 벌판을 걸어갈 때/모름지기 그 길을 어지럽히지 마라/오늘 내가 걷는 이 길이/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라”는
서산대사는 눈길을 걸으면서 내가 걷는 이 길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함부로 걷지 말고 바르게 걸으라고 충고한다.
김시인도 나를 뒤쫓아 오는 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내 모습을 보이려고 정도(正道)를 가고자 한다.
김동민 시인이 가고자 하는 길은 부끄럽지 않은 길이다. 거울을 보고 수염을 깎으며 앞만 보지 않고, 뒤를 살피며 뒷사람에게 부끄럽지 않게 가는 수행의 길이다.
3.
갈기 세운 눈발이 휘날리는 삼십리는
모시 팔아 설 쇠려는 어머니 대목장 길
봉창문 까만 눈동자 사립문을 지켰지.
야속한 눈발은 그칠 줄을 모르고
산촌의 섣달은 유난히도 해가 짧아
고 작은 가슴에 대고 절구질을 해댔지.
황혼의 언덕배기 다시 눈발 흩날린다
그 슬픈 기억의 대목장날 눈발들
아득한 세월을 건너 모시 같은 눈이 온다.
-<대목장>전문
대목장 전문이다. 대목장은 5일장에 구애 없이 설날 바로 전날 임시로 서는 장이다. 화자의 어머니는 모시를 팔아 설 쇠려고 삼 십리 길 읍내 장엘 가셨다.
산촌의 섣달은 유난히도 해가 짧았다. 왜 그리 많은 눈발은 그칠 줄을 모르고 쌓이는지. 어린 자식은 조그만 문틈으로 어머니를 기다렸다.
아득한 세월이 지난 오늘, 그 서러웠던 기억의 대목장날 눈발들! 모시 같은 하얀 눈이 온다. 꼭 동화 속 같은 청순한 이야기를 전개하여 가슴으로 다가서는 대목이다.
천의무봉(天衣無縫), 어디 꾸민 데가 한 점이나 있는가. 순박한 산촌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자연 그대로 묘사한 한 폭의 대목장날 풍경이다.
꿈이 고아 곱디고운 젊은 날로 오시더니
기우는 중천인데 낮달로 계시는가
그 무슨 수심에 겨워 저리 창백하실까.
가난을 필로 짜던 한 많은 모시 길삼
베틀에 시름 걸고 북 바디로 곱게 짜서
새벽달 머리에 이고 달려가신 한산장.
허기진 보릿고개 빈 젖 빨던 열한 자식
세월 따라 시집 장가 남겨진 빈껍데기
창백한 낮달이 되어 승천하신 어머니.
끊어진 탯줄이 서리서리 감기는 밤
천형도 가벼운가 멎지 않는 이 호흡
불효는 하늘을 찔러 소나기가 내린다.
-<낮달>전문
돌아가신 어머니를 ‘낮달’로 비유한다.
어머니는 베틀에 시름을 걸고 가난을 일구면서 북 바디로 피륙을 곱게 짜서 새벽달 머리에 이고 한산 장으로 달려간다.
허기진 보릿고개 빈 젖 빨던 열한 자식, 시집장가 보내느라 껍데기만 남았는데 마지막 창백한 낮달이 되어 승천(昇天)하신 어머니! 천형(天刑)도 가벼워라 불효가 하늘을 찔러 소나기가 내린단다.
세상의 어머니들은 영화(榮華) 한 번 못보고 헌신만 하시다 가신다. 화자의 어머니는 더욱 그러하다. 가신 어머니를 하얀, 아니 창백한 낮달로 비유하면서 이미지를 직조하여 슬픔의 경지를 한 굽 끌어올려 절실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눈을 감고 바라본다
마음의 창으로
추억을 앞세워 산으로 길을 내고
허망히
무너져 버린
내 하늘을 바라본다.
삶이라는 구차한 멍에를 짊어지고
앞만 보고 달리다 무너뜨린 내 하늘
때늦은
회한의 비수
뼛속까지 후빈다.
비루먹은 자식을
금쪽으로 여기시며
한생전 주고가신 태산보다 높은 은혜
되갚아
드릴 길 없어
가슴 쥐어뜯는다.
-<내 하늘>전문
사람이 운명하면 육신은 땅에 묻히나 영혼은 하늘나라로 승천(昇天)한다. 화자의 어머니도 승천하여 ‘내 하늘’이라 부른다.
가신 어머니의 큰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하랴? 때늦은 회한의 비수(悲愁)가 뼛속까지 후빈다고 서러워한다.
마지막 수에선 별 볼일 없는 자식을 금쪽 같이 여기시며 한평생 주고가신 태산보다 높은 은혜를 갚아드릴 길 없어 가슴 쥐어뜯는다고 통회하고 있다.
그러기에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에서도 부모의 은덕은 하늘 보다 높아서 자식은 아버지를 왼쪽 어깨에 업고, 어머니를 오른쪽 어깨에 업고서 수미산(須彌山)을 백 천 번 돌더라도 그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다고 설하지 않는가.
세상에 김시인처럼 어진 효자가 있을까. 돌아가신 어머니를 하늘로 받들고, 통회하며 끝없는 은혜에 감루(感淚)하고 있다.
4.
함초롬 고운맵시 배시시 웃는 모습
청초한 저 자태는 이 땅의 아낙네
예뻐라
가녀린 몸매
미모의 으뜸이여.
이슬로 허기 달래 봄 가뭄 이겨내고
여름밤 우렛소리 인고로 날을 밝혀
피워낸
고절의 떨기
계절의 여왕이여.
반회장 저고리에 열두 폭 주름치마
사뿐사뿐 대청마루 하이얀 외씨버선
푸른 듯
희어서 고운
아 조선의 여인이여.
-<구절초>전문
구절초(九折草)는 가을을 대표하는 꽃이다. 약초로 많이 사용하는 꽃으로 9월 9일 중양절(重陽節)에 잎과 꽃을 꺾어 말렸다가 약으로 쓰면 약효가 배가 된다하여 구절초란 이름이 생겼다는 꽃이다.
첫수에서는 꽃을 이 땅의 아낙네로 보고 그 청초한 몸매를 미모의 으뜸으로 의인화 하고, 둘째 수에선 봄과 가을 계절을 이겨내고 인고로 날을 밝힌 고절(孤節)의 떨기라 칭찬하며, 마지막 수에선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조선 여인으로 환치한다.
곧 구절초는 미모의 으뜸이요, 계절의 여왕이며, 조선의 여인이라 병치은유(倂置隱喩)하여 그 꽃다움을 찬양하고 있다.
역시 구절초는 가을 꽃 중의 꽃이다. 가을꽃으로 국화가 있지만 저만치 들녘에서 혼자 향을 뿜으며 찬 서리를 이겨내는 그 고절(孤節)을 어찌 다 일러 말하랴.
가슴으로 가슴을 데우려는 주홍빛
이보다 더 곡진한 사랑이 또 있으랴
몸 바쳐 생을 구하는 숭고한 자비여.
비바람 마주하던 고난의 지난세월
떫디떫은 세상맛 인고로 우려내어
중생의 허기진 배를 채우려는 보살도.
온 길로 돌아가는 계절의 끄트머리
사랑해라 그리고 오래오래 살아라
마지막 간절한 기도 높이 매단 참사랑.
-<까치밥>전문
우리는 길을 가다 만추에 매달린 홍시 몇 개를 발견한다. 그것이 까치밥이다. 높은 장대에 매달린 까치밥, 우리조상은 예부터 추수할 때 그것을 다 따지 않고 몇 개를 남겨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베푼다. 그것이 부처의 자비(慈悲)가 아닌가.
김동민 시인은 그것을 예사로 보지 않고, 혜안(慧眼)으로 포착, 형상화(形象化)한다. 첫수에선 자비, 둘째 수에선 보살도(菩薩道), 셋째 수에선 참사랑으로 점층(漸層)시켜 중층 묘사함으로써 주제를 한껏 끌어 올리고 있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불도(佛道)에 이른다.
이것이 김동민의 시조를 창작하는 정신이요, 수행으로 가는 길목이다. 여기서 김시인의 시를 빚어내는 솜씨,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철학을 찾게 된다.
이러한 시인의 자세와 철학은 작품 <산에서> 더욱 빛난다.
“진리에 순응함으로 일러 말해 산이다. 가슴에 품어 기르는 그게 진정 산이다. 원한을 만들지 않는 그게 바로 산이다. 화려함도 벗어 놓고 흰 이불 덮고 누워야 바로 그게 산이지” 이렇게 김 시인은 산의 이미지, 산의 정체성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드레 선착장 설레는 황포돛대
관광객의 시선을 뱃전에 줄 세우고
자온대 수북정 돌아 회귀하는 타임머신
온 길을 돌아가며 보여주는 낙화암
스피커는 때맞춰 ‘불러보자 삼천궁녀’
구슬픈 노래 가락에 전설이 눈을 뜬다.
통한의 조룡대는 천년토록 눈 못 감고
고란사 종소리만 쓸쓸히 길을 뜬다
애달프다 비운의 계백 고란초가 안 보인다.
-<백마강 유람선>전문
김시인은 부여가 고향이다. 백제 말 비운의 역사가 흐르는 백마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있다.
구드레 선착장에서 승선, 남으로 규암나루터 자온대(自溫臺) 수북정을 돌아 강물을 역류하여 부소산 아래 고란사 북동쪽 백마강 조룡대(釣龍臺)에서 잠시 멈추고 고란사 쇠북소리를 듣는다.
찬란했던 700년의 사직(社稷)이 무너지는 백제 의자왕의 비운이 감도는 백마강의 전설이 있다.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할 때, 당나라 소정방이 군사를 거느리고 강을 건너려 함에 비바람이 갑자기 일어, 흰말로 미끼를 만들어 용 한 마리를 낚으니 날이 개어 군사들이 강을 건너 공격했다. 이때 삼천궁녀는 강물에 뛰어들고 백제는 멸망하게 된다. 이것이 백마강(白馬江) 조룡대(釣龍臺)의 전설이다.
31왕 678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백제는 이렇게 최후를 맞게 된다. 부여에 가면 황포돛대 유람선을 타고 슬픈 역사, 백마강을 견학할 일이다.
들풀은 어우러짐
그 맛으로 살아간다
생명의 햇살도 서로서로 나누며
손에 손
마주잡고서
번영을 도모한다.
황량한 들판에
들풀 같은 생이 있다
부대끼는 삶이어도 서로를 위로하고
막소주
잔을 비우며
희망을 노래한다.
그래서 그들은
들판을 좋아한다
높은 언덕 소나무 숲 부러움 없잖지만
파란들
지킨 긍지로
다시 씨를 묻는다.
-<들풀>전문
들풀은 사람이 가꾸지 않고 아무데서나 저절로 나서 제멋대로 자라는 풀이 들풀이 아닌가. 화자는 들풀을 좋아한다.
첫수에서는 들풀은 서로 어우러지는 맛으로 살아가며 손에 손 마주잡고 번영을 도모하기에 좋고, 둘째 수에서는 부대끼면서도 서로를 위로하고 막소주 잔을 비우며 희망을 노래하기에 좋고, 마지막 수에서는 높은 언덕 소나무 숲도 좋지만 그보다 낮은 파란들을 지키는 긍지가 더 좋다고 한다.
필자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김수영 시인의 대표작 자유시 ‘풀’을 떠 올리지 않을 수 없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김수영의 ‘풀’이 민중을 상징하고 저항적인 분위기라면 김동민의 들풀은 화합과 희망을 진작시키는 내용이 아닌가?
김시인은 들풀을 사랑한다. 황량한 들녘에서 나지막하게 서로 정을 나누며 부대끼는 삶을 위로하고 파란들을 지키며 다시 그 씨를 묻으며 오늘을 살아간다.
저 멀리 터반에서 평창으로 불어온다 우리네 얼마나 기다리던
바람이냐 가슴이 벅차서 심장이 마구 뛴다 여기저기 다 제치고
우리의 평창이라 이 환희 이 기쁨을 어찌 다 주체하랴
어얼씨구 저얼씨구 지화자 좋을씨구 이 얼마나 좋으신가
어깨춤이 절로난다 여보시오 동네사람들 큰 마당으로 나오시오
이리 좋고 기쁜 날 신명 한 번 내 봅시다 장구 북 징 꽹과리
신명난 가락으로 G20 바람을 맨 앞장 세우고 자연유산 제주바람
우리 섬 독도바람 세계육상 대구바람 전라 경상 충청 바람
강원 경기 서울 바람 모두모두 한데 모아 춤판 한 번 벌립시다.
그리고 여세몰아 웃동네로 달려가 깊은 잠에 꿈꾸는 동네사람
모두 깨워 손잡고 어깨동무 노래노래 부릅시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목청이 터져라 소리 높여 부릅시다
부르며 부르며 울어도 좋습니다 바다 건너 오랑캐 칼을 갈고
있습니다 한시도 머뭇댈 여유가 없습니다
형제여
지금 우리가
다툴 때가 아닙니다.
-<바람 아리랑>-2018 평창동계올림픽 결정을 보고
이 작품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결정을 보고 그 환희를 노래한 사설시조(辭說時調)이다.
사설시조는 조선 중기 이후 사대부와 기녀들이 중심이 되었던 평시조(平時調)에서 서민들의 각성에 의해 높아진 평민의식과 산문 정신이 빚어낸 산물이다. 사설시조의 특성은 서민들의 생활을 익살스럽게 이야기 하듯 구술(口述)하고, 극적구성을 통해 재미있게 표현하고 독자를 긴장시킨다. 파격을 허용하되 3장(章)의 큰 틀은 지켜야한다.
세계 90여 나라가 참가하여 16일간 개최하는 동계올림픽, 국제 대전을 평창에 유치하였음은 얼마나 영광인가. 16개 시도 바람을 다 모아 덩실 춤을 추고 신명난 가락으로 애국가를 부른다.
해학과 위트, 극적구성으로 흥을 돋구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5.
시조는 우리 문학의 정수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우리 민족의 애환과 사상을 담아 천년을 연면히 이어 오는 전통시가이다. 김동민 시인은 이러한 시조를 사랑하고 시조시를 쓰기에 더욱 존경을 받는다.
道圓 김동민 시인은 세상을 둥글게 산다. 모나지 않고 원만하게 산다. 다리미처럼 너른 가슴으로 구김살을 문질러 펴질 때까지 뜨겁게 몸 바치는 소신공양(燒身供養)으로 산다. 그러면서 앞을 서지 않고 슬그머니 뒤로 물러서는 양보와 미덕의 삶을 산다.
붓 끝에 혼을 모아 한 걸음 한 걸음 묵향 따라 길을 찾고, 수염을 깎다 말고 거울을 보며 앞을 살피되 뒷모습이 걱정되어 뒤를 따라오는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으려고 탑세기를 털어내는 수행자의 길을 가며, 낮달로 떠계신 하늘같은 어머니 은혜를 어이 갚을까 가슴 쥐어뜯는 효심으로 사는 사람이다.
고절(孤節)의 떨기 구절초를 사랑하며, 가지 끝에 높게 매달린 홍시 하나를 아껴 까치 몫으로 남기는 측은지심으로 산다.
그러기에 그의 언어는 들풀처럼 유연하고 나지막하되 질기며, 표현은 결코 화려하지 않고 겸손하다.
이제 산수령(傘壽嶺)! 높은 고갯길에 건승건필하심을 빌어드린다.
경자년 봄, 초록마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