元聖大王
一 然
伊飱金周元이 初爲上宰하고 王爲角干하여 居二宰한데 夢脫幞頭著素笠把十二絃琴하고 入於天官寺井中이라 覺而使人占之하니 曰 脫幞頭者는 失職之兆요 把琴者는 著枷之兆이며 入井은 入獄之兆라
이찬 김주원이 처음에 상재가 되었고, 원성왕은 각간으로 상재의 다음 자리에 있었는데, 꿈에 복두를 벗고 흰 삿갓을 쓰고 12현의 가야금을 들고 천관사 우물 속으로 들어갔다. 꿈에서 깨어나 사람을 시켜 풀이하게 하니, 말하기를 “복두를 벗은 것은 직책을 잃을 조짐이고, 가야금을 든 것은 칼집을 쓸 조짐이며, 우물에 들어간 것은 옥에 갇힐 조짐입니다.” 하였다.
* 복두(幞頭): 사모(紗帽) 같이 두 단(段)으로 되고 뒤쪽의 좌우(左右)에 날개가 달렸으며 각이 지고 위가 평평(平平)한 관(冠). 신라(新羅) 28대 진덕(眞德) 여왕(女王) 때 처음으로 공복의 하나로 쓰게 되었으며, 조선(朝鮮) 시대(時代) 때에는 과거(科擧)에 급제(及第)한 사람이 홍패(紅牌)를 받을 때에 썼음. 고고리.
* 착가(著枷): 죄인이 목에 칼을 씀. 또는 죄인의 목에 칼을 씌움.
王聞之하고 甚患杜門不出이라 于時에 阿飱餘三(或本餘山)이 來通謁이나 王辭以疾不出이라 再通曰 願得一見이라하니 王諾之라 阿飱曰 公所忌何事오하니 王具說占夢之由라 阿飱이 與拜曰 此乃吉祥之夢이라 公若登大位而不遺我면 則爲公解之라 王乃辟禁左右而請解之하니
원성왕은 그 말을 듣고 매우 근심하여 문을 닫고 밖에 나가지 않았다. 그때 아찬 여삼이 와서 뵙기를 청하였으나 원성왕은 병 때문에 나갈 수가 없다고 거절하였다. 아찬이 다시 한번 만나기를 청하자 왕이 허락하였다. 아찬이 말하기를 “공께서 꺼리는 일은 무엇입니까?” 하니 원성왕이 꿈을 풀이한 일을 자세히 말하였다. 그러자 아찬이 일어나 절을 하면서 말하기를 “이는 바로 길몽입니다. 공께서 만약 왕위에 올라 저를 버리시지 않는다면 공을 위해 해몽해 드리겠습니다.” 하니 왕은 이에 주위 사람들을 물러가게 하고 풀이해 줄 것을 청하였다.
曰 脫幞頭者는 人無居上也요 著素笠者는 冕旒之兆也며 把十二絃琴者는 十二孫傳世之兆也요 入天官井은 入宮禁之瑞也라하니 王曰 上有周元하니 何居上位아 阿飱曰 請密祀北川神可矣라하니 從之하다
아찬이 말하기를 “복두를 벗는 것은 그 위에 사람이 없는 것이고, 흰 삿갓을 쓴 것은 면류관을 쓸 징조입니다. 또한 12현의 가야금을 지닌 것은 12손이 왕위를 전해 받을 징조이고, 천관사 우물에 들어간 것은 궁궐로 들어갈 좋은 징조입니다.” 왕이 말하기를 “위로는 김주원이 있는데 어떻게 임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단 말인가?” 아찬이 말하기를 “청컨대 은밀히 北川神에게 제사를 지내십시오.” 하니 왕이 아찬의 말을 따랐다.
未幾에 宣德王崩하니 國人欲奉周元爲王하여 將迎入宮이라 家在川北한데 忽川漲不得渡라 王先入宮卽位하니 上宰之徒衆이 皆來附之하여 拜賀新登之主라 是爲元聖大王이니 諱는 敬信이요 金武(氏)니 蓋厚夢之應也라
얼마 후 선덕왕이 崩御하니 나라 사람들이 김주원을 왕으로 삼아 궁궐로 맞아들이려고 하였다. 그의 집은 北川의 북쪽에 있었는데, 갑자기 시냇물이 불어 건널 수가 없었다. 그래서 왕이 먼저 궁궐로 들어가 즉위하자 대신의 무리들이 모두 따라와서 새로 즉위한 임금에게 절을 하고 축하하였다. 이가 바로 원성대왕이다. 대왕의 이름은 敬信이고 성은 김씨인데, 대개 厚夢의 應驗이었던 것이다.
* 후몽(厚夢): 좋은 조짐이 되는 꿈.
周元은 退居溟州라 王旣登極時에 餘山은 已卒矣라 召其子孫賜爵이라 王之孫有五人하니 惠忠太子‧憲平太子‧禮英匝干‧大龍夫人‧小龍夫人等也라 大王은 誠知窮達之變이라 故有身空詞腦歌(歌亡未詳)이라
김주원은 물러나 명주에서 살았다. 왕이 등극했을 때, 여산은 이미 죽었으므로 그의 자손을 불러 벼슬을 내렸다. 왕에게는 손자가 다섯이니 혜충태자, 헌평태자, 예영잡간, 대룡부인, 소룡부인 등이다. 대왕은 참으로 인생의 곤궁하고 영화로운 이치를 알았기 때문에 신공사뇌가를 지었다.
王之考 大角干孝讓이 傳祖宗萬波息笛하여 乃傳於王이라 王得之故로 厚荷天恩하고 其德遠輝라
왕의 아버지 대각간 효양이 조종의 만파식적을 전해 받아 왕에게 전하였다. 왕은 이것을 얻었기 때문에 하늘의 은혜가 두터웠고, 그 덕이 원대하고 빛났다.
貞元二年丙寅(786秊)十月十一日에 日本王文慶(按日本帝紀, 第五十五主文德王, 疑是也, 餘無文慶. 或本云, 是王太子)이 擧兵欲伐新羅한데 聞新羅有萬波息笛하고 退兵하고 以金五十兩으로 遣使請其笛이라 王謂使曰 朕聞上世眞平王代有之耳요 今不知所在라한데
정원 2년 병인년(786) 10월 11일, 일본의 왕 문경이 군사를 일으켜 신라를 치려고 했는데, 신라에 만파식적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군사를 돌리고 금 50냥과 함께 사신을 보내 그 피리를 청하였다. 왕이 사신에게 말하기를 “짐은 윗대 진평왕 대에는 있었다고 들었으나,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라 하였다.
明年七月七日에 更遣使하여 以金一千兩으로 請之曰 寡人이 願得見神物而還之矣라 王亦辭以前對하고 以銀三千兩賜其使하고 還金而不受라 八月에 使還하니 藏其笛於內黃殿하다
이듬해 7월 7일, 다시 사신을 보내 금 천냥으로 그것을 청하며 말하기를 “과인이 신물을 보고 난 후 다시 돌려드리겠습니다.”라 하되 왕은 역시 이전과 같은 대답으로 사양하고, 은 3,000냥을 사신에게 주어 금과 함께 돌려보내며 받지 않았다. 8월에 사신이 돌아가자, 피리를 내황전에 보관하였다.
王卽位十一年乙亥(795秊)에 唐使來京하여 留一朔而還한데 後一日에 有二女進內庭하여 奏曰
妾等은 乃東池‧靑池(靑池卽東泉寺之泉也. 寺記云, 泉乃東海龍往來聽法之地. 寺乃眞平王所造, 五百聖衆‧五層塔, 幷納田民焉)二龍之妻也라 唐使ㅣ 將河西國二人而來하여 呪我夫二龍及芬皇寺井等三龍하여 變爲小魚하여 筒貯而歸라 願陛下勅二人하여 留我夫等護國龍也라하니
왕이 즉위한지 11년 을해년(795)에 당나라 사신이 서울에 와서 한 달 동안 머물다가 돌아갔는데, 다음 날 두 여자가 내정에 나와 아뢰기를 “저희들은 바로 동지・청지 두 용의 아내입니다. 당나라 사신이 하서국 사람 두 명을 데리고 와서 우리 남편인 두 용과 분황사 우물의 용 등 세 龍을 저주하여 작은 물고기로 변하게 하여 통 속에 담아서 돌아갔습니다. 원하옵건대 폐하께서는 두 사람에게 명령하여 저희 남편을 비롯하여 나라를 지키는 용을 돌려주게 하십시오.” 하였다.
王追至河陽館하여 親賜享宴하고 勅河西人曰 爾輩는 何得取我三龍至此아 若不以實告면 必加極刑이라 於是에 出三魚獻之라 使放於三處하니 各湧水丈餘하고 喜躍而逝라 唐人은 服王之明聖이라
왕은 뒤쫓아 하양관에 이르러 직접 연회를 열고 하서국 사람에게 명령하기를 “너희들은 어찌하여 우리의 용 세 마리를 이곳까지 데리고 왔느냐? 만약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반드시 극형을 처하겠다.” 하니 하서국 사람은 물고기 세 마리를 꺼내 바쳤다. 세 곳에 놓아주자 제각각 한 길씩이나 뛰어오르고 기뻐하며 사라졌다. 당나라 사람들은 왕의 성스럽고 명철함에 감복하였다.
王이 一日請皇龍寺(或本云 華嚴寺 又金剛寺香(者)는 蓋以寺名經名을 混之也라)釋智海入內하여 稱華嚴經五旬이라 沙彌妙正이 每洗鉢於金光井(因大賢法師得名)邊한데 有一黿이 浮沈井中하니 沙彌ㅣ 每以殘食을 餽而爲戲라 席將罷에 沙彌謂黿曰 吾德汝日久한데 何以報之아 隔數日에 黿吐一小珠하고 如欲贈遺라 沙彌得其珠하여 繫於帶端이라
어느 날 왕이 황룡사의 중 지해를 대궐안으로 청하여 화엄경을 50일 동안 외우게 했다. 沙彌 妙正이 매양 금광정 가에서 바리때를 씻는데 자라 한 마리가 우물 속에서 떴다가는 다시 가라앉곤 하므로 沙彌는 늘 먹다 남은 밥을 자라에게 주면서 희롱했다. 法席이 끝나려 할 무렵 사미 묘정이 자라에게 말하기를 “내가 너에게 은의를 베푼지가 오랜데 너는 무엇으로 갚으려느냐?” 그런지 며칠 후에 자라는 조그만 구슬 한 개를 입에서 토하더니 묘정에게 주려는 것같이 했다. 묘정은 그 구슬을 얻어 허리띠 끝에 달았다.
自後로 大王見沙彌愛重하여 邀致內殿하여 不離左右라 時에 有一匝干이 奉使於唐한데 亦愛沙彌하여 請與俱行이라 王許之하여 同入於唐한데 唐帝亦見沙彌而寵愛하고 承相左右ㅣ 莫不尊信한데
그 후로부터 대왕은 사정미를 보면 더욱 사랑하고 소중히 여겨 내전에 맞아들여 좌우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이때 잡간 한 사람이 당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도 묘정을 사랑해서 같이 가기를 청하자 왕이 이를 허락하여 같이 당나라에 들어가니 당나라의 황제도 역시 묘정을 보자 매우 사랑하게 되고 승상과 좌우 신하들도 모두 그를 존경하고 신뢰했는데,
有一相士奏曰 審此沙彌컨대 無一吉相한데 得人信敬하니 必有所將異物이라하여 使人檢看하니 得帶端小珠라
관상보는 사람 하나가 황제에게 아뢰기를 “사미를 살펴보니 하나도 吉相이 없는데 남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으니 틀림없이 이상한 물건을 가졌을 것입니다.”라 하여 황제가 사람을 시켜서 몸을 뒤져보니 허리띠 끝에 조그만 구슬이 매달려 있었다.
帝曰 朕有如意珠四枚한데 前年失一个라 今見此珠하니 乃吾所失也라 帝問沙彌하니 沙彌具陳其事라 帝內(曰) 失珠之日이 與沙彌得珠로 同日이라하고 帝留其珠而遣之한데 後로 人無愛信此沙彌者라
황제가 말하기를 “나에게 여의주 네 개가 있었는데, 지난 해에 한 개를 잃었었다. 이제 이 구슬을 보니 바로 내가 잃은 구슬이다.”하고 황제가 사미에게 물으니 사미가 그 사실을 자세히 말했다. 황제가 말하기를 “구슬을 잃은 날이 사미가 구슬을 얻은 날과 같다.”하고 그 구슬을 빼앗아 두고 보냈는데, 그 후로 이 沙彌를 信愛하는 자가 없었다.
王之陵이 在吐含岳西洞鵠寺(今崇福寺)하고 有崔致遠撰碑라 又刱報恩寺하고 又望德樓라 追封祖訓入匝干하여 爲興平大王하고 曾祖義官匝干으로 爲神英大王하고 高祖法宣大阿干으로 爲玄聖大王한데 玄聖之考는 卽摩叱次匝干이라
왕의 릉이 토함산 서쪽에 있는 동곡사에 있는데, 최치원이 지은 비가 있다. 왕은 또 보은사와 망덕루를 세웠다. 조부인 훈입잡간을 추봉하여 흥평대왕이라 하고 증조인 의관잡간을 신영대왕이라 하고 고조 법선대아간을 현성대왕이라 했는데, 현성대왕의 아버지는 곧 마질차잡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