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야기 시작하기 전에 먼저
전제하자면 이 영화는 큰 흥행하기는
힘들겁니다.
물론 같은 날 (6월28일)개봉한 희대의
괴작이라 불린다는 김수현의 "리얼"에 비하면
흥행을 많이 할겁니다.
영화 "리얼"이 혹평이 곳곳에서
나오니까요.
그래서 일부 기사에 이제훈 vs
김수현이라는 비교내용으로는
이제훈이 "승"이라 나오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이런 기사는 안좋아합니다.)
그렇지만 그외에 큰 흥행은 쉽지 않겠다 보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나라에서 흥행했던 독립운동
영화는 어느 정도 오락적 요소와 액션이 들어가야하죠.(예 :암살. 그나마 여기에
해당하는 다른 영화 밀정은 그나마 여기서
벗어나려 노력한 흔적은 보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많이 함축하려 했고)
건물이 폭파되고 차가 날아가고
일본군과 경찰들이 하늘로
치솟고. .기관총을 들고 갈기면서
지붕을 뛰어다니고. .
따라서 여름에 개봉할 군함도는 분위기를
봐서 천만을 넘을겁니다.
또 그러길 바라구요.사실 일본도 긴장하는
영화가 -군함도 -이기는 합니다.
지들을 정면조준하는 소재이니까요.
또 예고를 보니 전반은 가슴이 먹먹하겠으나
후반에 욱일기를 찢는등 속을 시원하게
하는 장면도 있으니 영화 암살처럼
속에 응어리 맺힘을 푸는 계기도 될겁니다.
다만 아쉬운 점들이 있습니다.
항일독립운동영화에 가슴 후련함도
있어야겠지만. .
실제 역사적 인물들이 조명이 많이 되었음도
합니다. .

영화 시작때부터 이 영화는 사실에
근거 철저히 고증한 영화.주인공.지명등이
모두 사실이라는데는~또 팡팡.쾅쾅터지는걸
기대하신 분들중에는 지겨워(?)하실 분들도
계실겁니다.
하지만 이준익 감독의 영화가 온갖
MSG를 넣어 끓여 흥행을 노리고 만들
입에 착착 감기는 김치찌개 스타일이
아니기도 하고 해서 안타깝지만. .
그래서 이준익 감독의 영화가 대히트는
(왕의 남자 이후로는)못하는 이유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래도 최근 그나마 흥행한 사도는 엉뚱하게 부모들의 이상한 학구열로
번지는 감독 의도와 다르게 흐른 씁쓸함이
있었죠.)
하지만 이준익 감독의 특유의 스타일로
저는 보고 있어서 아쉬움이라기보다
감독 특유의 색깔로 보고 논외로 보겠습니다.

메가박스에 6월30일로 소멸되는 포인트가
있어서 오늘 포인트로 보고 왔습니다.
메가박스쪽 영화라 메가박스에는 많이
깔려 있었습니다.
시간대가 그래서 젊은 여성분 몇명도
보였지만 대체로 노년층 부부등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많이 보시러 오셨더군요.
흥행이 쉽지는 않겠지만 포인트로나마
시간이 될때 봐야겠다는것과. .
또 하나 제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좋아하기때문이죠.흥행여부와 상관없이. .
실제로 영화 시작에
일반적인 실화 기반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정도로
사전 고지하는 데 반해
이 작품은 '철저한 고증의 실화입니다' 를 강조하면서 시작합니다.
이준익 감독은 고증이 철저한
작품이 되도록 가네코 후미코 평전과
옥중 자서전, 각종 신문 자료 등을
통해 90% 이상을 고증했다고 밝혔습니다.
감독의 전작 동주와 달리 그래서
이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은 모두
실존 인물이라 합니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에 대한 글은 예전에
제가 여기 나인틴에서 글을 올렸기에
따로 쓰지는 않겠습니다.

영화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아나키스트 박열과 불령사(후데이 센진
이른바 일본인들이 불렀던 "불령선인"이름
그대로 항일&무정부주의자 단체를 조직)들은
폭탄도 못구하고 돈도 없지만 나름대로
아나키스트 (무정부주의자이지만
이당시 일본에 아나키스트들은 사회주의에 가까웠죠.)로 지냅니다.
그리고 가네코 후미코와 동거를 하죠.

1923년9월1일 도쿄를 비롯한 간토(관동)지방에
대지진이 일어납니다.
지진 후유증으로 폭동이 일어날 분위기가
돌자 일본정부 특히 내무대신 미즈노 렌타로는
조선인들과 사회주의자들이 우물에 독약을
풀었다는 1세기 기독교인들이 로마에 불을
질렀다는 20세기 네로 짓을 합니다.
자경단들이 순식간에 15원50전(쥬고엔고짓센)을 발음시킨후 발음이 이상하면 죽창으로 찔러
죽이는 무법천지가 됩니다.
따라서 이 발음이 잘 안되던 대부분 조선인들과
중국인들 그리고 당시 도쿄를 방문중이거나
내려와 살던 간토 지방과 억양차이가
있는 도호쿠(동북)와 홋카이도 지방
일본인들까지 학살당합니다.
3일만에 도쿄.사이타마.군마 현 등지에
6천여명이 넘는 조선인들이 학살당합니다.
(영화상에는 그렇고 실제로 8천여명이
학살당했습니다.)

당시 조선인들을 학살하는 일본 자경단원들.
이 사진은 학살후 조선인 시신들을 바라보는
자경단원들 모습입니다.
이것은 진짜 조선인 학살하는 잔인한
일본놈들이 모습이죠.
사족이지만. .
가끔 일본의 독립군 학살이라 타카페에 올라오는
사진들은 중국군벌의 참수집행사진이나
변발한 모습이 같이 나온게 있는데 사진고증이 안맞는데도 무조건 올리는 경우가 있는데 당시 일본놈들이 잔인한것은 사실이나 잔인성을
강조하기 급급해서 중국 군벌사진이나
장개석 군대의 1927년 상해 공산주의자들
숙청때 모습(앙드레 말로가 이 당시 모습을
인간의 조건이란 소설에 썼었죠.)을 같이
올리기도 했는데 수정을 안하고 무턱대고
올리는 경우가 있기때문에 역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들은 이런것을 고려를 했음
합니다.
그런다고 일본이 잔인한 학살을 한것이
변하지는 않지만 때로는 확실한 역사적
고증도 중요합니다.
미즈노 렌타로는 이 영화에서 사법대신등으로
부터 "당신 조선에서 폭탄 공격을 당해
사적감정으로 보복하려는거 아닌가?"하는
힐난을 받죠.
영화에서는 이 대사로만 나오지만 찾아보니까
1919년 남대문역(서울역)에서 사이토 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강우규 의사의 의거때 부상을 당하죠.
당시 강우규 의사의 의거에 사이토 총독과 같이 부임중이던 미즈노 총독부 정무총감이 부상당한
기록이 있죠.
학살 규모가 치안부재상태에 이르자
미즈노는 "저들에게 영웅.이쪽에게는 대역죄를
한 놈 하나를 고르라"합니다.

△영화에서 미즈노 렌타로(가운데 인물.
동주에서 일본 고등계형사를 연기한
김인우 배우가 연기합니다)

△실제 미즈노 렌타로 :조선인 학살의 원흉.
그리고 박열이 거기에 이름이 오르죠.
이에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는 자신들이
당시 히로히토 왕세자에게 폭탄을 던지려 했다.
가을에 열릴 결혼식에 .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영화 예고나 소개프로와 같습니다.
재판에 사모관대에 관복입고 나온것도
사실이죠.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이후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는 각각 다른 형무소로
이감이 됩니다.
이미 자료를 찾아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가네코 후미코는 자살하고(자살을 가장한
타살이라는 말이 많죠)
박열은 22년을 형무소에 살죠.
즉 일본이 패망하자 감옥에서 풀려납니다.
영화 마지막 자막으로 박열은 22년을
감옥에서 있다가 풀려난 후 이봉창.윤봉길.
백정기 3의사의 시신을 찾아 귀국하여
효창공원에 3의사 시신을 봉환하였고
1989년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았다고
나옵니다.
(영화에 안나옵니다만 찾아보시면 아시겠지만 박열은 그후 한국전쟁때 납북되어 1974년
평양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안타깝게 가네코 후미코와 같이 묻히지 못하죠.)
마지막 자막에 가네코 후미코는 1931년 박열의 고향 문경으로 이장됩니다.
영화에서 짠한 부분은 박열이 가네코 후미코를
혼인신고하면서 "우리는 어차피 사형당해.
사형당하면 우리 부모님이 당신 시신까지
인수할거야.가족들만 시신을 인수할수 있으니까
그러면 우리는 같이 묻힐수 있어"
라고 합니다.
가네코 후미코는 가족이 없었죠.
나이드신 분들인지는 모르겠으나
영화관 내에서 훌쩍훌쩍
소리가 들리더군요.
다만 기존 독립운동 다룬 영화들에 비해
액션등이 없으니. .밋밋하다는 느낌이 들기는
할수도 있습니다.
이준익 감독의 초반은 코믹하거나
밝다가 끝은 슬퍼지는 스타일이
여기서도 보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박열을
모르다 알게 된 분이 있었다면
마음의 소득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이 기회에 발굴해보는 계기도
(예를 들어 영화가 아닌 개개인 각자
우리동네는 어떤 독립운동가가 있을까
찾아보는 )되었으면 합니다.
영화속 박열의 대사.
"발악할수록 드러나는 것이 자연의 순리요,
역사의 흐름이다"
역사왜곡하는 일본과 전두환 일당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대사입니다.
동영상친절한 기리씨 - 박열친절한 기리씨(Friendly Mr. Kiri) - 박열(Anarchist from Colony), 영화가 좋다(Good Movie) 20170617www.youtube.com
첫댓글 정치성향 때문에 잊혀진 수많은 독립운동가 중 한분이시죠
사실 정치성향은 우익이었죠.
해방이후는 김구선생의 우익
계열이었죠.
그의 아들(가네코 후미코와는
자식이 없었지만 해방후 한국여성과 결혼후 사이에 얻은
자식)은 한국군 장성까지 올라갔죠.
다만 6.25때 납북되어 북한에서
세상을 떠났기에 잊혀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중에서는
조명을 받으신 분이기는 합니다.
제가 어렸을때 읽은 한국사 이야기에서 이분 성함을 이미
봤었으니까요.
@풍문으로 들었어 우익성향이라기 보다는 공산주의자들을 무척 싫어했다고 알고 있어요... 뭐 당시는 니편 아니면 내편인 시대였으니 어쩔 수 없지만...
@신의실패작 그렇긴하죠. 아나키스트는 무정부주의자이지 공산주의자는
아니었죠. 무식한 놈들은 박열을
빨갱이라 하지만. .Daum에 영화평에 어느 무식한 놈( 감히 박보검을 닉넴으로 쓰는.)은 박열이 월북했다고 빨갱이라는둥 영화까지 욕하더군요.
영화가 재미없든 말든~그것은
개개인의 의향이니
상관없는데 그런 무식한
놈(일단 월북이 아닌 납북이 사실이죠.사실확인도 전혀 안한)은
역사공부도 안하는거죠.
그런놈들때문에라도 이런분들은
조명을 받아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