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과 빈둥댐이 일상일 79살의 노인도 꿈속에서는 늘 분주하다. 무슨 꿈이었는지도 깨어나는 순간에 기억넘어도 사라지고 말지만, 어쨌거나 분주한 꿈을 꾸곤 한다. 꿈속에서 처럼, 결국엔 지나가고 마는 일들이 많고 많다. 그런데도 우린 시시각각으로 걱정과 근심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불안하고 초조하고 조급해 한다. 그러지 말라고 도닥여보지만 효과는 없는듯 싶다. 천장이 무너지고 물이 쏟아지는 일이 발생하고도 한달여가 지나갔다. 천정은 아직도 벌어진체다. 당장 목을 조르는 것 같던 조급함도 여전하다. 그럼에도 나는 잘 지내고 있는 중이다. 다친데도 없고, 아프지도 않으니 잘 지내는것 맞다. 여기저기서 곰팡이가 기새를 올리는 중인가. 냄세도 나는듯 싶고, 아직 이른 벌래도 눈에 뜨이는 걸 보면 편치 않는게 맞나. 사는게 왜 이렇게 어수선 한 것일까. 나만 그런가. 편견에 완고하기까지 하다. 순탄하지도 원만하지도 못했던 삶에서 오는 열등감 때문일수도 있다. 자존감이 낮은 탓도 그래선가 싶다. 지나친 열등감은 교만을 부르기도 한다. 어쩌면 열등감이야 말로 죄악으로 가는 촉매제 역활을 하는 시작점은 아닐까. 그런 생각마저 든다. 누가 뭐라고 하던 나는 열등감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왜 "나만"이라는 집착이 강했다. 가난한 것도, 찌질한 것도, 못난것 까지도 굴래였다. 판타지에서 처럼, 내 굴래를 벗겨줄 영웅은 어디에도 없는데,,, 영웅을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내가 하나님을 믿는것은 그래서 일수도 있다. 짠! 하고 나타나서 아무련 대가없이 나를 구원해주실 분으로 하나님보다 더 효과적인 분이 있을까. 어떻게도 할수없다는 무능함을 고백하며 은혜에 기대는, 나약함에 숨어서 아무련 노력도 않하려 하는 것도 믿음에 속할려나,,,. 아니, 나는 하나님은 물론이고 예수님도 믿지 않는 것일수도 있다. 하나님 예수님을 본연의 모습대로가 아닌, 내 필요와 기대에 따라 재창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다. 천지의 창조주 이시고 절대주인이 되시는 분, 경배받기를 원하시는 분으로서의 하나님이 아닌, 요술램프 속의 요정을 닮은 하나님을 내가 원하고 있다면 나는 하나님을 믿는게 아닌것이 된다.그런가, 그런가? 나는 드리는 신자는 아닌게 확실하다. 오늘도 뭘 주시길 기대하니까. 그게 사랑이던 물질이던, 또는 추상적인 행복이던. 나는 끊임없이 받기만을 원하고 있다. 추운것 말고는 다 괜찮다. 국내외가 다 시끌시끌하다. 나도 그렇다. 나 역시 안팍으로 어수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