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운동의 결집력, 유무상자(백승종)
어느 연구 결과에 따르면, 초기의 동학운동은 ‘유무상자(有無相資)’의 실천을 통해 큰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가진 자(유)와 못 가진 자(무)가 서로서로(상) 의지함(자)으로서 단체 내부의 결속력도 강화되었고, 그들의 삶의 질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말이다.
유무상자의 효력이 동학을 가장 앞장서서 비판하고 탄압하던 양반유생들의 <동학배척통문>( 1863)에 나온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동학의 무리는) 귀천이 같고, 등급과 지위의 차별도 없다. (그리하여) 백정과 술장사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그들은) 남녀를 차별하지 않는다. 포교소를 세우자, 과부와 홀아비들이 모여들었다. 재물과 돈을 좋아하여 있는 사람과 없는 이들이 서로 도우므로(有無相資), 가난한 이들이 (매우) 기뻐한다.”
동학도들 가운데서도 유무상자의 유익함을 증언한 이가 있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 충청도 서산의 접주로 활약한 홍종식의 체험담을 들어보자.
“죽이고 밥이고, 아침이고 저녁이고, 도인(道人, 신자)이면 서로 도와주고 서로 먹으라는 (가르침 같은)데서 모두 집안 식구같이 일심단결이 되었습니다.”(홍종식, 「70년 사상의 최대활극 동학란실화」, 『신인간』 34호, 1929년 4월호)
1894년 동학농민군은 유무상자를 광범위하게 실천했다. 비단 동학농민군들끼리만 그러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부자의 재물을 거두어서 가난한 농민들을 도왔다. 간혹 남의 재산을 빼앗기도 했으나, 그것은 평소 농민들을 함부로 괴롭힌 악덕 지주의 재산에 국한된 것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일반백성들조차 동학농민군을 의롭게 여겼다.
출처: 백승종, <<상속의 역사>>, 사우, 2018; 교보문고 및 세계일보 선정 올해의 책
첫댓글 이 시대 서로 돕는 유무상자의 실천이 필요할 듯합니다. 다가오늘 연말 분위기에 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