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다의 행보
“일본인 순사가 나빴지만 조선인 순사 중에도 악질이 있었어. 토착 왜구야 즈이 나라니까 무작정 충성이라 치더라도 배달민족이 동포를 괴롭힌 건 진짜 매국이지. 대동아 전쟁 말기에 비행기 날개 만든다고 놋숟가락까지 죄다 공출하더니 ……나까지 두들겨 맞았어.”
유년 시절 밥상머리에서 아버지의 그 말씀을 수십 번은 들었던 것 같다. 노여움으로 눈빛을 번뜩이면 그만 나까지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니까 1945년 4월, 공주고보 졸업 직후 징집영장을 받은 입영장정끼리 신체검사를 받고 소재지 여관에 모여 쑥덕거리기 시작했단다.
“일본 비행기는 페이퍼 플랜(Paper airplane)이야. 연합군 포격에 맥을 못 춰.”
“해방될 때까지 목숨이나 보존하는 게 최고야.”
“조금만 더 ……일단 견뎌야지.”
그렇게 수군거리는 소리를 그 야스다 사내가 옆방에서 도청하면서 밀고용 도표를 짜고 있는 줄을 까맣게 몰랐던 것이다. 이튿날 신체검사를 마치고 각자 헤어져 귀가 준비를 서두르는데, 차부 입구에서 웬 게다짝 사내 하나가 앞을 딱 가로막으며 손가락으로 지프차를 가리키는데 문득 싸늘한 바람이 스친다. 칼 찬 헌병 둘이 옆에서 노려보고 있었으니 반항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리고 굴비처럼 끌려갔단다.
그르르르륵.
아버지는 그 낡은 철제문 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굉음이었노라고 오래도록 회고하셨다. 그리고 취조실의 쇳가루 섞인 시멘트 냄새도 오래도록 소름끼쳐 하셨다. 참나무 탁자와 철제 의자 두 개 그리고 벽에 매달린 채 번들거리는 박달나무 몽둥이를 보면서.
‘죽었다.’
옆방의 비명소리까지 처절하게 들리면서 완전히 기가 죽은 것이다. 그리고 놈이 나타났다. 외투를 벗고 훈도시 차림의 허벅지가 허옇게 드러나니 완전히 야만의 왜놈 패션으로.
“무슨 작당을 했느냐? 어젯밤 여관에서.”
“한 말이 없소.”
어젯밤 형님네 건어물 상점에서 차비를 받아오는 길이어서 여관 도착이 늦은 것만은 사실이다. 그래서 친구들의 대화 중 마지막 대목만 가물거릴 뿐 뚜렷하게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 차비에서 절반을 뚝 떼어내어 두 되들이 소주 두 병을 여관방 바닥에 올려놓은 다음 ‘와 - .’ 박수 세례를 받은 게 전부이다.
“빠가야로.”
쓰러진 정수리를 구둣발로 짓이기면서 이마가 훌러덩 벗겨질 것 같다. 몽둥이로 가슴을 찌르다가 쓰러지면 게다짝으로 목을 짓누르면서 항거불능의 상태가 된 것이다. 열아홉 강 씨 청년도 고보 시절 유도로 단련된 몸이라 완력 대결에서 과히 밀리는 편은 아니었지만 여기서는 다르다. 발가벗겨진 채 꽁꽁 묶였으니 대항할 엄두조차 낼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찢어지게 아프더니 서서히 무디어지다가 나중에는 아예 감각이 사라질 만큼 작신 맞았다.
“이 새끼야. 무능한 느이 나라 조선 따위가 독립할 능력이 있을 것 같으냐? 천황폐하의 뜻을 받들어 위대한 대동아제국 건설을 훼방 놓는 조센징 놈들 한 놈씩 찍어내어 갈기갈기 찢어버리겠다.”
그도 조선인이면서도 말끝마다 조센징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면서 스스로의 유체 이탈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미군들이 대일본제국 비행기를 종이비행기라고 조롱한다며 비웃었잖아. 그런 소문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적군을 돕는 이적행위야.”
벗들의 얘기에 맞장구친 게 맞긴 하지만 자칫 바깥세상을 영원히 보지 못할 것 같아 입을 다무는 것 이외의 방법이 없었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가미카제 용사 하나가 양코배기 군함을 수장시킨 것도 모르낫! 대일본 제국이 반드시 이긴닷.”
마지막 몽둥이를 맞으며 들은 소리이다. 강동원 장정은 그 모진 고문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며 뽀드득 뽀드득 어금니만 깨물었다.
어이없는 것은 고문 기술자 야스다의 광복 이후의 행보이다. 그는 해방이 된 며칠 후 한국식 이름으로 재빨리 바꾼 후 이웃 소도시 관료로 다시 채용되었다가 십 년 후에 군청의 고위직으로 올랐단다. 어느 해였던가, 광복절 기념식에서 그 지역의 독립 유공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훈장도 달아 주었으니 어안이 벙벙하다. 분하다. 반민특위 해체로 친일 청산이 실패하면서 해방 후까지 그들이 설칠 수 있는 무대를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