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피터와 알베르게에서 찰칵>
오줌싸개와 그리고
方 旻
그의 이름은 피터다. 별명은 오줌싸개, 내가 붙여주었다. 물론 나와 아내만 몰래 불렀다. 공개적으로 부르면 괜한 국제 명예 훼손 소송에 휘말릴지도 모를 테니 말이다. 똥싸개란 별명으로 부르는 사람이 하나 더 있는데, 그의 이름은 모른다.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까미노에서 만난 특이한 두 사람을 나는 그런 이름으로 기억한다.
피터는 네덜란드 사람이다. 피레네를 넘어 온 그날,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에서 순례자 정식(순례자를 위한 맞춤 저녁 코스 음식, 채소류의 전채와 빵, 육고기나 해산물의 주 요리와 과일이나 음료의 후식으로 이루어지고, 와인 한 잔도 곁들여 제공, 가격은 9-10 유로. 알베르게 근처의 레스토랑에서 대부분 판매.)을 바로 옆자리에서 함께 먹었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면서 알게 되었는데, 좌중을 휘어잡는 말솜씨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까미노를 완보하고 싼티아고 성당 광장의 저녁 음악회자리에서 그를 마지막으로 만났다. 그 옆에는 그곳으로 마중 나온 미녀 아내가 함께 있었다.
그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길과 숙소에서 여러 차례 만나며 대화도 나누고 이름도 알게 되면서 더욱 가까워졌다. 만날 때마다 거의 같은 옷차림이었다. 반바지와 반소매 셔츠에 묵직한 배낭을 멘 차림새, 날씨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늘 같은 모습, 길에서 사진을 자주 찍던 그, 마주칠 때면 서로 반갑고 환한 웃음을 주고받았다. 한 달 이상을 걸으며 가장 자주 만났던 외국인이었다. 그래도 그를 우리는 언제나 오줌싸개로 추억할 것이다.
그는 아무데서나 바지 지퍼를 내렸다. 너른 길가 옆에서 그 짓을 처음 보았을 때는 같이 걷던 아내한테 내가 민망했다. 며칠 후 또 그 볼일을 우리한테 멀지 않은 곳에서 들켰다. 브레히트라고 나중에 통성명을 했던 독일 아줌마와 함께 얘기하며 걷는 걸 뒤에서 보았다. 그녀가 밀밭을 바라보며 물을 마시고 있는 근처에서 피터는 거시기를 약간 비켜서서 통풍시키고 있었다. 그 뒤 또 한 차례 길에서 보았는데 역시 자연의 부름(nature calls)에 답하고 있을 때였다. 그 때 나는 그를 오줌싸개로 즉시 명명해 버렸다.
똥싸개는 더욱 극적으로 조우했다. 그날 아내한테 급히 신호가 왔다. 자연의 숭고한 부름이 찾아온 거였다. 머지않은 곳에 마을이 있다고 안내서에서 보았기에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말했다. 까미노 중간의 마을에는 반드시 카페나 레스토랑이 두엇은 있고 그곳에서 일을 보면 된다. 간혹 공짜로 눈치껏 이용하기도 하지만 음료나 커피나 맥주 한잔 마시며 이용하면 되는 거였다. 예상하던 마을 안에는 표지가 안 보였다. 다른 마을로 가는 다리 건너 길가에 반가운 카페가 보였다. 서둘러 그곳에 가보니, 아뿔싸 휴업중이다. 성수기(6-9월)에만 잠시 여는 그런 곳이었다.
아내는 더 이상 인내하기에는 막다른 골목에 서 있었다. 그 건물을 보는 순간 마음을 놓아버린 뒤라 이제는 비상수단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태로 돌입하였다. 그곳엔 너른 마당이 있고, 아이들 놀이터까지 겸비한 곳으로 그 둘레를 적당히 큰 나무들이 울타리를 치고 있다. 흐린 날씨에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처럼 하늘도 울상을 짓고 있다. 아내의 뱃속이 아마 그러리라. 나는 울타리 뒤로 아내를 보내고 근처에서 사방을 주시하며 경비를 섰다.
그런데 얼마 안 되어 뒤따르던 사람들이 하나둘 보였다. 이곳은 길옆이나 까미노에서 벗어난 길이라 이리 올 일이 없지만 그들을 경계의 눈초리로 지켜보았다. 아내가 쉬 안 나타난다. 오래 참았던 셈이라 신속한 신진대사에 애를 먹이나 보다. 그간 길에서 몇 번 지나쳐 낯이 익은 늙은 남정네가 이쪽으로 급한 발걸음을 옮긴다. 손에는 휴지까지 들고서, 나는 막아섰다. 여긴 영업도 안 하고 길도 아니라고 급히 외쳤다. 그는 불쾌한 낯빛으로 보는 둥 마는 둥 안다고 그러면서 아내가 간 곳으로 뒤뚱뒤뚱 걸어간다. 소리로 신호를 보낼까 입을 열려는 찰나 환한 얼굴의 아내가 시야에 잡혔다. 나는 그에게 똥싸개란 이름을 감사한 마음과 우정의 선물로 포장하여 즉각 선사하였다.
까미노 길엔 화장실이 없다. 대략 3-5 킬로 쯤 사이에 마을들이 있고, 그곳엔 화장을 우아하고 시원하게 고칠 곳이 있게 마련이다. 그 거리면 한 시간쯤 걸리니 다리쉼도 할 겸 거기에 들리면 된다. 잠시 배낭도 내려놓고 오가는 사람과 눈인사나 대화도 나누는 이게 까미노의 색다른 매력이기도 하고 소소한 즐거움이 되기도 한다. 아예 그곳에서 구매하지 않으면 뒷간을 이용하지 말라는 안내와 그 비용을 따로 청구하겠다는 엄포용 글귀가 붙어있는 곳도 더러 있다. 위대한 ‘자연님’이 부르시는 건데 그 따위는 인간적으로 무시하면 된다(생리적 욕구를 영어로는 Nature calls, 즉 자연이 부른다고 쓴다).
떠나기 얼마 전부터 비가 내렸다. 알베르게를 나서자 얼마 안 되어 안개가 자욱하니 길에 덮였다. 걸음을 떼고 한 반 시간쯤 지나서부터 뱃속이 안개처럼 흐릿하였다. 아침을 그곳에서 제공하는 서양식 조식을 먹었는데 무언가 뒷맛이 개운하지 않았다. 먹고 바로 길에 나서서 내장을 자극하여 그런가 보다. 얼마간 버티기로 하고 다음 마을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였다. 길은 멀고 속에선 점차 시위의 강도를 높여 온다. 타협과 조정이 필요한데 시위대는 협상 테이블에 나서기는커녕 삭발하고 단식 투쟁하겠다고 선전포고한다.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마침내 나는 비겁하지만 굴복하고 평화를 택하기로 중대 결단을 선언하였다. 아내를 먼저 보내고 은밀한 곳을 물색해 신체 노사 간 투쟁을 종식시켰다. 강물처럼 평화가 온몸으로 흘러 넘쳤다. 할렐루야! 자연의 부름에 고분고분 순종한 나는, 그 순간 우정으로 선물했던 이름을 반송 받았다.
첫댓글 ㅋㅋㅋ
정말이지 그 '자연의 부름'은 왜 그렇게 은밀(?)하게 치러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자연이니 자연스럽게 남의 눈치 보지 말고.... 뭐 그렇게 되지 못한 데에는 이유야 있겠지요?
이름은 주거니 받거니 하셨네요.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세상 일이란 게 지나고 보면 다 그렇더군요. 늘 읽고 평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싼티아고 두 세번가 본 길(순전히 책으로)인데 이번 순례길은 색다르네요.재미있게 잘 읽었읍니다.
입원 치료 중인 듯한데도 읽고 답까지 주시니 송구합니다. 완쾌하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