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진짜 운이 좋으려는지,
아쉬운 소리 안했는데
달력을 각 방에 걸고도 남게 얻었다.
남은 달력은 구정에 전 부칠때 기름받이로나 쓰겠군 하였는데,
오늘 <뇌건강 일기쓰기>가
치매예방에 최고라는 걸 다시 배우니
저 눈부시게 하얀 공간을
허접하게 써버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하여 저녁을 먹고나서 나는
열심히 줄을 긋고 글씨를 써넣었다.
일기에 뭘 적을까 궁리만 하시던 엄마는 이제 빈 칸을 채우면 된다.
일기쓰기에 먹먹해했던 엄마는
이제 이런 것들로
하루 일기가 채워진다는 걸
아실 것이다.
뇌를 운동시키는 일이라
보통 우리들의 일기쓰기와는 다르나
한동안 이런 형식을 고수할 생각이다.
습관이 되면 엄마 편하실대로
자유롭게 쓰셔도 될 것이다.
엄마의 일기쓰기가 끝나고
나와 같이 읽고 얘기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는데
나를 간호선생님이라
적어놓은 게 보였다.
아빠나 영도 두사람 다
나의 돌봄속에서 지내다 떠났지만
나는 똑똑한 보호자이질 못했다.
암환자를 어찌 돌봐야 하는지,
반신불수의 환자는 어떤 조심스런 자세여야 하는지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보호자라는 이름을 얻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젠 노인의 건강을 어찌 챙겨야 하고
치매가 단계별로 어떤 양상을 보이는지 배워두니
엄마만큼은 제대로 보호자가 되어드려야지 다짐을 굳힌다.
내일은
엄마를 위해 우울증 검사를 예약해두었다.
영도를 보내고 상담을 권해왔는데
이제서야 응하신 것이다.
엄마는 애써 눈물을 억누르고 살았기에 상담의 시간이 누구보다
절실하다는 게 느껴진다.
엄마의 일기속에 나는
간호선생님이니
이름에 걸맞게 세심히 살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