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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다
홍성주
유배의 땅에 유채화는
속없이 지천으로 만발입니다 맨발입니다
섯알오름* 낮게 올라 총총
고개 숙여 말없이 늦은 안부 묻습니다
여린 나무 그늘이 또랑또랑 굵어갑니다
거꾸로 겨눈 총구
소스치게 스러지는 꽃봉오리 꽃 덩어리
핏물로 받아 안은 옹이눈에
한 바가지 빗물인 양 그렁그렁 고였습니다
아직도 마르지 못한 함성입니다
엉겁결에 묶인 두 손 느닷없이 꺾인 무릎
천만년 흐른대도 흐르는 건 침묵입니다
비명조차 뿜지 못한 분화구에
뭍이 섬의 풍파를 차마
묻지 못합니다
길잡이 삼으라고 길섶에 벗어던진
검정 고무신
짝짝이 쓸려와 서늘하게
맨발로 두고두고 기다립니다
고무신도 백조일손伯祖一孫 한 몸입니다
감지 못한 두 눈을 하늘은 어찌 묻었을까요?
묏바람도 매섭도록 철철이 일어섭니다
예비검속 다 닳도록 갈피갈피 매매 새겨
잊은 듯 새록새록 묻고 또 묻습니다
기껏, 그뿐입니다
*섯알오름: 제주 예비검속자 학살터
-《시와소금》 2025년 가을호
시 읽기
해마다 노랑을 앞세워오는 제주의 상징, "유채화"는 제주의 언어이며 "묻다"의 공동체이다. 억울한 희생자들의 영혼이 “지천으로 만발”이고 “맨발”로 말하는 상처의 본능이다. “아직 마르지 못한 함성”인 “꽃봉오리”를 “매매 새”긴다. 유품인 “고무신도 백조일손伯祖一孫 한 몸”으로 개인의 죽음이 집단적이 됨으로써, 공동체인 역사로 변증한다.
시인은 제주 4·3의 역사적 상흔을 '섯알오름'에서 시대를 넘어 "묻다"로 복구하고 있다. ‘섯알오름’은 남쪽 기슭에 제주 4·3 사건의 아픔을 간직한 학살터이다. 당시 계엄군에 의해 한 날, 한 시, 무참히 총살된 희생자들의 뼈가 하나로 엉겨 묻힌 곳으로, 카프카의 ‘유배지’처럼 비참했던 상황을 보여주는 죽음의 “유배지”이다.
시인은 이 분화구에서 내면적 성찰을 한다. "묻다"를 통해 다층적인 의미를 만든다. 이미지들은 이어지며 운동성을 보여주고, 창의적 과정에서 의미는 굴절된다. 현재 안에서 과거가 역동하듯, 구별되지 않고 의미를 넘어선다. “안부” “침묵” “시신” “기억”이 진실을 “묻”는 것은. 불협화음 속에 화음처럼 차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하나의 공동체가 된다. "거꾸로 겨눈 총구" 앞에 “스러지는 꽃봉오리”는 희생자들이자. “침묵”의 대화이며 “비명”이다. 시대를 뛰어넘어 수많은 희생을 기리는 시 세계의 운명이다.
과거로 대상화된 ‘섯알오름’에서 진실을 “묻”는 자와 대답 없는 역사적 침묵을, 시인은 “갈피갈피” “묻”은 시간을 확장하며 창조적 해법을 찾는다. 창조는 “묻다”에서 시작한다. 시인의 “묻다”를 따라가면 질문의 근원적인 차원에 닿거나, 시적 주체의 새로운 시각을 발견한다. 가슴속에 자리를 차지한 ‘묻기’의 출발점에 선다.
비극을 “기껏” “묻고 또 묻”는 하늘빛이 노란 제주, "감지 못한 두 눈을 하늘은 어찌 묻었을까요?" '묻지 못하고 묻지 못하는' 오래도록 억압된 죽음을, "묻다"의 시는 새로운 미래의 공간으로 인식시킨다. (추천 양소은)
《시와소금》 2025년 겨울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