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개미창(欲蓋彌彰)(정민)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이항복(李恒福·1556~1618)이 1600년에 전라도 체찰사가 되어 내려갔다. 조정에서 역적을 적발해 잡아 올리라는 명을 받고 그가 올린 치계(馳啓)가 이랬다. "역적은 새나 짐승, 물고기나 자라처럼 아무 데서나 나는 물건이 아닌지라 잡아내기가 어렵습니다." 공을 세우자면 없는 역적도 만들어내야 할 판인데 그의 보고가 이렇게 올라오자 사람들이 모두 기담(奇談)이라며 외워 전했다. 역적 색출로 후끈 달아있던 판을 식히는 경종이 됐다. '부계기문(涪溪紀聞)'은 이 일을 적은 후 '오늘날에는 역적을 고변하는 자가 잇달아서 앞뒤로 5~6년이 지났는데도 여태껏 옥사를 결단하지 못하고 있다. 역적 수가 새나 짐승, 물고기와 자라보다도 많으니 또한 세상이 변한 것을 볼 수가 있다'고 썼다.
참판 문근(文瑾·1471~?)이 형관(刑官)으로 오래 있었다. 하루는 자백의 허위와 진실을 시험해 보려고 집안 사람들에게 "닭 둥우리의 알을 가져가면 형벌을 더하리라" 하고는 몰래 몇 개를 빼내 감췄다. 그러고는 집안의 손버릇 나쁜 계집종에게 계란을 훔쳐갔다고 뒤집어씌워 맵게 매질을 했다. 견디다 못한 계집종이 자기가 그 계란을 삶아 먹었다고 실토했다. 참판이 탄식하며 말했다. "내가 후손이 끊어지겠구나. 10년간 형벌 맡은 관리로 있으면서 죄를 자백한 자가 어찌 모두 진실이겠는가? 이 계집종과 한가지일 것이다." 자신의 능력 때문인 줄 알았는데 매질의 힘이었다. '효빈잡기(效顰雜記)'에 보인다.
국정원의 간첩 사건 증거 조작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미리 상황에 맞춰 증거를 조작해서 진실을 왜곡했다. 국가의 체모를 다 갉아먹고 그간의 애쓴 보람마저 모두 의심의 눈길을 받게 만들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사과하는 지경에 이르니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이른바 '덮으려다 더욱 드러나는' 욕개미창(欲蓋彌彰)의 꼬락서니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목적이 정당하면 수단은 부당해도 좋은가? 매질이나 돈으로는 진실을 못 가린다. 덮어 가리려 들수록 점점 더 또렷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