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불의한 돈으로 친구를 사귀라? 이 말씀은 무슨 뜻인가요? 모든 돈은 어차피 다 불의하니까 좋은일에 써서 남을 이롭게 하고 사랑의 관계래도 만들라는 말씀인지... 뭔지..... 어려워서 질문드립니다. 귀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변>
질문하신 내용은 사실 저로서도 분명하게 해석해 드리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해하고 있는 대로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눅 16:9절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는 구절 앞에는 한 청지기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횡령한 것이 들통이 나서 주인으로부터 파면을 통보 받습니다. 그러자 청지기는 파면을 당한 후의 자신의 생존 문제를 걱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불러서 기름 백말은 오십 말로, 밀 백석은 팔십으로 고쳐 쓰게 합니다. 한마디로 차용증을 위조한 것이지요. 결국 청지기는 주인에게 빚진 자들에게 이익을 안겨줌으로써 그들과 친한 관계를 만들고 파면을 당한 후에 그들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의도인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롭게 한 것을 칭찬을 하고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는 말씀을 합니다. 이 부분부터 우리의 상식과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혼란스러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식은 주인이 종이 한 일을 알았다면 당장 종을 쫓아내든지 아니면 벌을 주고 조작된 차용증은 다시 원 상태로 돌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옳지 않은 일은 하지 말라는 교훈적 결론을 내려 놓았다면 누구도 다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성경은 결국 초등학생의 도덕책으로 전락하고 말았겠지요.
그럼 이 말씀을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먼저 이 말씀을 생각하기 전에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14절을 보면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청지기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바리새인을 책망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15절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는 말씀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의로운 체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재물을 사랑하시는 그 마음을 잘 알고 계신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바리새인들은 재물을 사랑하는 자신의 악함을 깨닫지를 못하고 율법을 실천하고자 힘쓰는 것을 자신의 의로움으로 삼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으려고 하지만 그것이 곧 하나님께 미움을 받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점을 생각해 본다면 예수님이 옳지 않은 청지기에 대한 말씀을 하시는 것은 재물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자신들의 실상은 보지 못한 채 단지 율법을 지키기 위해 힘쓰는 것을 내세우며 그것으로 자신을 의롭게 보이면서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고자 하는 것이 참으로 어리석은 것임을 가르쳐 주고자 하시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주인이 옳지 못한 청지기를 칭찬하는 것은 그의 지혜 때문입니다. 그 지혜는 주인에게 쫓겨난 후의 자신에게 닥칠 미래가 어떠할 것임을 알고 미리 준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눅 16:8)는 말씀을 보면, 이 세대의 아들들을 내세워서 소위 빛의 아들이라고 하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가르쳐주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어리석음은 보이는 현실에 갇혀서 영원한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리석음이 무엇인가는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말한대로 바리새인은 돈을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돈을 좋아하기 때문에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6:13절)는 말씀도 비웃어 버립니다. 그런데 우리도 돈을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돈을 좋아하는 우리들이 얼마나 불의한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기의 불의함을 볼 수 있어야 하고, 자기의 불의함을 본다면 자신은 사람들에게 의롭다 함을 받을 가치도 없고 높임 받을 수도 없는 존재임을 알게 됩니다. 세상은 돈이 있으면 살 수 있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닥치면 돈은 무용지물이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닥치면 오직 예수님의 의만이 우리를 살릴 뿐입니다. 이것을 아는 자로 사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래서 지혜는 신자가 자신의 불의함을 보면서 예수님의 의를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신의 미래를 준비한 청지기의 지혜였던 것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에게 쫓겨나서 생존에 위기가 닥칠 자기 미래를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불의함을 생각한다면 우리 역시 주인에게 쫓겨날 사람이고, 그러므로 우리는 그러한 실상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 돈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먼저 재물을 불의한 것으로 말씀하는 것은 사람이 재물을 부당하게 사용한다거나 하는 그런 의미라기보다는 재물이 인간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힘이 되지 못함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재물을 동원해서 친구를 사귀어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고자 합니다. 이런 면에서 청지기는 지혜가 있었지만 그러나 재물이 우리의 미래를 지켜줄 수 없습니다. 불의하다는 것은 의롭지 못하다는 것이고, 의롭지 못한 것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우리를 지켜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미래를 생각한다면 재물을 힘으로 여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불의한 재물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친구를 사귀라는 것은, 청지기는 재물로 자신의 미래를 책임져 줄 친구를 사귀고자 했습니다. 그렇다면 청지기가 생각한 친구가 우리에게는 누구일까요? 하나님의 심판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진정한 친구는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것은, 재물을 통해서 재물을 사랑하는 자신의 불의함을 보라는 뜻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자신을 보게 되면, 결국 자신의불의를 볼 것이고, 자신이 불의하다는 것을 절감한다면 그런 자신을 지켜주고 도울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임을 알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없어질 때 우리를 영원한 처소로 인도할 분은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10절의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는 말씀은, 재물로 말미암아 자신의 불의를 깨닫는 것을 지극히 작은 것으로 여기는 바리새인의 풍조를 책망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불의를 깨닫는 것을 쓸데없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은 의로운 자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불의를 깨닫지 못하고, 또한 그러한 것을 쓸데없는 것으로 여기는 그들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충성된 자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함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11-13절은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고 말합니다. 신자는 불의한 재물을 힘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신자에게 힘은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불의한 재물에 충성한다면 그것은 재물이 힘이 될 수 없음을 알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 사는 것입니다. 신자는 다만 하나님이 주신 재물로 감사하며 살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삶을 꿈꾸고 원하는 인생을 살려고 한다면 하나님이 주신 재물에 불만이 있게 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내게 있는 것을 내것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 남의 것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내가 원하는 인생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재물을 힘으로 여기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재물을 원합니다. 이것이 재물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재물은 우리가 얼마나 불의한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재물을 섬기는데 열심인 우리를 보게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의로우심이 생명임을 깨닫게 합니다. 이것을 작은 일로 여기는 것이 어리석음입니다. 질문하신 성경 내용은 바로 이점을 가르쳐주고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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