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구두 수선"이라는 간판을 내 건 조그마한 집 모양의 컨테이너는 내가 항상 다니는 길 옆 한 귀퉁이에 있다. 아파트 단지가 막 시작 되는 그 길 옆엔 낡은 옛집이 있다.집 뒤로는 키 큰 가죽 나무가 늦봄이 되어 온갖 풀들이 꽃을 피어 내도록 잎이 나지 않아 죽었나 싶으면 그 때서야 서서히 잎을 틔우고 비탈진 땅엔 돈나물과 민들레와 제비꽃이 같이 피어난 그 집 옆 한 귀퉁이 공터에 느닷없이 텐트가 쳐 진 건 올 봄이었다.
무슨 텐트일까? 기웃거렷더니 텐트 앞으로 구두 몇 켤레가 생경스럽게 흙 바닥 위에 그냥 놓여 있고 텐트의 열린 문 안으로 보니 구두 수선용 연장들이 주인도 없이 그냥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텐튼데 맞다! 그 텐트는 작년 겨울 어느 날 우리 아파트 상가 옆에 자리 하고 있었던 그 것이었다.그 때도 참 우습다고 생각했지만 가까운 곳에 구두 수선집이 생겨서 좋다고 생각했다.
추운 바람에 노란색 텐트는 입을 굳게 다물고 떨고 있었다.
거기서 어떻게 장사를 하겠다고 시작한 것일까? 하지만 장사가 문제는 아니었다. 텐트는 한 달도 되지 않아 사라져 버렸다.
들리는 소문에 아파트 부녀회에서 집값 떨어진다고 내 쫓았단다.
그리고는 잊혀져 가던 텐트가 올 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앉은 것이다.
어느 봄날 출근 길에 처음 그 텐트의 주인을 보았다. 건장한 남자엿다. 나이는 삼십대 후반에서 사십대 초반쯤 된 것 같았다. 어깨엔 문신이 있었는데 흑장미였다.
봄인데도 소매 없는 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구두를 고치고 있지는 않았다. 강아지와 놀고 있었다.
그 뒤로도 출 퇴근 길에 더러 보았지만 구두를 고치는 일은 언제 하는지 별로 보지 못했고
어느 새 바뀐 컨테이너 꾸미기에 정성을 들이는 것 같았다.
흙 바닥에 넓은 돌을 박아 컨테이너 입구까지 연결하고 그 양 옆으론 과꽃과 국화 해바라기 코스모스들을 심어 놓았다.
얼굴울 익히고 나니 그 아저씨를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시장에서 구두를 양손에 들고 상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데 성경 구절이었다.
해바라기가 피었다 지고 코스모스가 피고 과꽃이 검붉게 피어난 며칠 전 난 드디어 바울 구두 수선집으로 들어 갈 기회가 왔다.
어쩌다가 신던 내 구두가 드디어 굽이 닳아 있었다.
돌 계단을 올라가니 문은 열려 있었다. 무엇을 하는 중이었는지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자세와 표정으로 아저씨는 그냥 조그마한 의자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
"구두 굽좀 갈 수 있나요?"
"참 잘 오셨습니다. 마지막 손님이군요"
"이렇게 빨리 문을 닫나요? 밖이 아직 훤한데요."
"교회에 막 가려던 참이었어요."
더 이상 뒤는 묻지 않았다. 말이 엄청나게 길어질 것 같은, 귀챦으면서도 간지러운 예감때문에 가만히 신발을 벗어 주고 말하자면 손님용 의자인듯한 의자에 앉아 여기 저기 둘러 보았다.
아저씨는 내 구두에 맞는 굽을 찾고 있었다.
거의 모든 구두 수선집은 일단 검정색으로 느껴지지 않은가 온통 검정색 연장들과 검정 계통의 옷을 입은 아저씨의 얼굴에 묻은 검정칠, 바울 구두 수선집은 아니었다.
낡은 거실용 장은 분홍빛이 도는 흰색이었고 그 위엔 하얀 스치로폼 상자가 있고 거기엔 길고 짫은 연장들이 줄 맞추어 꽃혀 있었다. 그 옆엔 선인장이 정갈한 흰색 화분에 심어져 있고 떨어진 장두감 두어개는 '키' 모양의 플라스틱 장식용 소품에 놓여 있었다.
벽엔 종이를 접어서 만든 벽걸이에 빗과 거울이 있었고 교회 달력이 걸려 있었다.
"아 여기 있네 딱 맞는게 있어서 다행이네요.안 그러면 교회 늦어지는데 아주머니 교회 다니세요?"
"아니요"
"아이구 아이들도 남편분도 안 다녀요?"
"예"
"큰 일 났네 그럼 안돼요. 아이들은 꼭 하나님 품 속에서 양육해야 돼요.요즘이 얼마나 무서운 세상인데요"
이제 드디어 나왔다. 세상 사람들과는 많이 다른 그 무엇, 그래서 궁금했고 그래도 물어 보지 못하고 봄이 가고 여름가고 가을이 다가 와서야 용기 내어 들어온 이유, 물론 구두 굽 갈로 오긴 했지만 난 아저씨께 뭔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
아저씨는 교회 갈 시간은 잊어 버린 듯 내 구두만 잡고 늘어졌다. 구두 굽은 벌써 "무서운 세상" 나올 때 다 갈았는데 이젠 구두를 닦기 시작했다.
창세기를 들려 주는데 토씨하나 틀리지 않았다. 특히 강조하는 구절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였다.
하나님이 새와 물고기를 창조하시는 대목에서 말 중간을 끊고 내가 물었다.
"아저씨 근데 이 땅은 누구 거예요?"
난 아저씨가 예전 아파트에서처럼 쫒겨 날까봐 물어 본 건데 아저씨는 구두 닦던 손을 멈추고 잠깐 숨을 고르더니 슬픈 표정으로 말하였다.
"아주머니는 영생의 말씀보다는 이 땅이 누구 것인지에 더 관심이 많네요."
순간 장미 문신이 어깨에서 꿈틀 거리는 것을 보았다. 난 얼른 입을 다물었다.
다시 창세기는 계속 되었고 아담과 이브가 창조되었고 그 사이 내 구두는 더 이상 닦을 데가 없을만큼 번들 거렸다. 그래도 아저씨는 내 구두를 주지 않고 하나님이 모든 일을 엿새 동안 마치고 일곱째 날 쉰 얘기까지 하고, 이젠 자기 살아 온 얘기로 넘어 갔다.
"아주머니 내가 어떻게 살아 온줄 아세요? 아주머니는 모를 거예요. 나를 변화 시킨 건 여자도 친구도 아니예요. 하나님뿐이었어요.술, 도박, 계집질에 징역, 난 그 때 죽고 없어요.
지금의 난 다시 태어 난 거예요."
아저씨는 정말로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간절하게도 들렸다.
그 때서야 아저씨는 내게 구두를 내 주며 나더러 가까운 교회라도 다니라고 했다.
구두는 흠집난 곳까지 다 고쳐져 있었다.내가 아저씨 이야기에 지루해 한 것이 미안해졌다. 난 반색을 하며 "아저씨 내 구두 너무 좋아졌네요. 정말 고마워요."
난 진심으로 고마웠다. 하나님 보시기에도 좋을 것 같았고 내 보기에도 아저씨가 너무 좋았다.돈을 건네 주니 "구두 닦은 건 서비스예요. 아주머니가 착해보여서예요.했다
또 한 번 좋았다. 땅 임자를 물어 볼 때부터 난 속물이었나 보다
아파트 꼭대기 너머로 해가 지고, 아저씨의 꽃밭에도 해가 지고, 아저씨는 해가 지는 돌계단을 내려 왔다. 교회에 가시는 것 같았다.나도 천천히 돌계단을 밟았다. 또각또각 새 구두굽에서 좋은 소리가 났다.
어제 아침 출근 길에 바울 구두 수선집이 파헤쳐진 공터 옆에 위태롭게 쭈그리고 앉아 있는 걸 보았다. 그 옆에는 중장비를 동원한 인부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아저씨는 교회에 다녀 오셨을까?
첫댓글 가끔 서진이란 이름으로 올라오는 산문다운 산문을 늘 반갑게 읽습니다. 산문방에 산문이라기보다는 교단일기를 독점하다시피 올려놓고 늘 미안해하면서 말이죠. 저도 언젠가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하면서...
고맙습니다. 저도 선생님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머무시는 학교의 학생들은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시는 그만 때려치우고 이런 멋진 글들이나 쓸까하는데, 하여튼 아름다운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