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의미가) 되고 싶다.
핵심정리
▶ 성격 : 관념적, 주지적, 상징적, 인식론적
▶ 어조 : 갈망적 어조
▶ 특징 : 명명(命名) 행위에 의한 인식을 바탕으로 함.
▶ 표현 : 의미의 점층적 확대(단계적인 의미의 심화 과정을 보임)
┌ 나→너→우리│
└ 몸짓→꽃→눈짓
▶ 구성 :
① 대상을 인식하기 이전의 무의미한 존재(제1연)
② 명명에 의해 의미 있는 존재로 다가옴(제2연)
③ 존재의 본질 구현에 대한 근원적 갈망(제3연)
④ 존재의 본질 구현에 대한 소망(제4연)
▶ 제재 : 꽃
▶ 주제 : 존재의 본질 구현에 대한 소망
이해와 감상
제1연에서 ‘이름을 불러 주기’는 명명 행위(命名行爲)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대상을 인식하기 이전에는 그는 무(無)과 다름없는 존재였다. ‘몸짓’은 장미꽃이나 민들레꽃과 같은 구체적인 꽃이 아닌, 어떤 낯설고 정체불명인 관념일 뿐이다. ‘몸짓’의 상징 의미는 ‘무의미한 존재’이다.
제2연에서 시적 화자가 대상을 인식하고 이름을 불러 줌으로써 그는 정체를 드러내며 ‘나’에게로 다가온다. 혼돈과 부재(不在)의 상태, 곧 존재의 은폐성(隱蔽性)으로부터 그는 모습을 드러낸다. 이는 하이데거가 “말은 존재의 집이다.”라고 하면서 만물은 본질에 따라 이름을 지으며, 시인의 사명은 성(聖)스러운 것을 이름 짓는 데 있다고 한 말을 상기시켜 준다. 존재의 본질을 인식하고 그것의 이름을 부를 때, 존재는 참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꽃’은 ‘의미 있는 존재’를 상징한다.
제3연에는 존재의 본질 구현에 대한 근원적 갈망(渴望)이 표출되어 있다. 주체인 ‘나’도 대상인 ‘너’에게로 가서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여기서 “대상 없는 주체도, 주체 없는 대상도 무의미하며, 성립될 수 없다.”는 말을 연상해 보면 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빛깔과 향기’는 ‘존재의 본질’을 뜻한다.
제4연은 이 시의 주제연으로서 시적 화자의 본질 구현에 대한 소망이 ‘우리’의 것으로 확산된다. 그리고 ‘꽃’은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임이 확인된다. ‘눈짓’은 ‘꽃’과 동격(同格)의 이미지로서 ‘의미 있는 존재’를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