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일해대에게 답하다答金天一海大
지난 번 저를 방문해주신 일은 실로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돌아오는 길에 다시 심회를 펼 수 있다 여겨서 대충 이별했는데, 편지가 문득 도착하여 장대한 유람이 흥을 타서 비행기를 타고 빨리 돌아오신 줄 알았습니다. 좋은 만남을 가질 수 없음이 못내 서운했으나 보내 주신 글을 어루만지며 훌륭한 시를 읊조리자 세상 밖의 맑은 자연을 만난 듯했으니, 벗의 은혜가 한결같이 어찌 그리도 넉넉한 것입니까?
처음에는 고향 행차 때문에, 다음에는 신병(身病) 때문에 즉시 답장을 드리지 못하여 속으로 자책하던 차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형의 편지가 또 이르렀으니, 형의 성대한 정성이 더욱 도타울수록 저의 게으름이 더욱 무거운데 어떤 말로 감히 구구절절 구실을 삼아 그 허물을 스스로 해명하겠습니까?
한 해가 저물어 가는데, 편안히 수양하시는 기거가 평안하십니까? 우러러 생각건대 집안의 난곡(鸞鵠)을 대하여 얼굴을 펴시고 책상에 쌓인 책으로 마음이 즐거우시며, 속진의 소요 속에 지내면서도 자신의 한가로운 경계를 스스로 보존함이 이미 맑고 넉넉하며 마음 또한 늙지 않아 이런 훌륭한 유람을 할 수 있으시니, 이는 곧 양주가학(揚州駕鶴)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생각건대 형은 훌륭한 재주를 펴기도 전에 노경이 어느새 이르렀으니, 근력이 감당할 수 있을 때 마음껏 유람하여 노래를 크게 부르는 것 또한 하나의 특별한 일이 될 것이니, 어찌 유람을 마치고 돌아가 문장을 이룬 자장(子長)을 배운 뒤에야 소득이 있는 것이겠습니까? 다만 속세에 파묻힌 저로서는 땅벌레와 고니의 현격한 차이에 탄식할 뿐입니다.
저는 앞서 고향 행차에 열닷새를 써버리고 돌아온 후 감기 기운으로 병석에 눕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온갖 병이 다 찾아와 오래도록 약을 복용하다 근래에 조금 괜찮아졌습니다만, 쇠한 형상을 말씀드릴 것이 없습니다. 오직 어린 손자가 앞에서 뛰노는 모습은 비록 늘 보는 일이지만 이를 남에게는 없는 노년의 즐거움으로 삼습니다.
종전의 졸시(拙詩)는 다만 기쁨을 기록한 것이니 어찌 시라 하겠습니까? 그런데 노형이 도리어 지나치게 칭찬하시고 창화시도 보내주시니, 실로 노년에 경사를 함께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인 줄 알겠으나 빛나는 문장이 찬란하고 그 향기가 저에게 스며들어 서랍 속에 간직할 보배가 될 만합니다. 다만 한자가 모두 폐기된 이런 세상을 만나 훗날 태어날 이 가운데 누가 문자를 좋아하여 아끼고 소리 높여 욀 줄 알겠습니까? 도리어 한숨 쉴 뿐입니다.
한 통의 편지가 백붕(百朋)보다 낫다는 말씀은 형이 실로 먼저 실천하신 일인데, 스스로 돌아보건대 저는 게으른 습성이 고질을 이루어 한 번도 먼저 베풀지 못했고 심지어 물음에 답도 드리지 못하기까지 하였으니, 이와 같은데도 어찌 남에게 버림받지 않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근래의 제 정상은 실로 붓을 잡기 어려워 지금까지 답장을 미루게 되었으니, 바라건대 양해하여 계교(計較)하지 말아주심이 어떻겠습니까?
형이 지난 번 가야산에 가서 머무르려 한 오랜 소원은 내년 봄 따뜻한 날을 기다려 혹 다시 움직이실 수 있겠습니까? 만약 그런 소식이 있다면 이곳의 여러 벗들과 약속하여 마땅히 뒤를 따를 것이니 특별히 도모해주시겠습니까?
눈이 어둡고 손이 떨려서 글을 쓰기가 어렵습니다. 편지의 투식을 펴지 않습니다.
김해대(金海大) : 1897∼1974. 자는 천일(天一), 호는 초정(草庭), 본관은 의성(義城)이다.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川前)에서 태어났다.
난곡(鸞鵠) : 남의 집 훌륭한 자제를 일컫는 말이다.
양주가학(揚州駕鶴) : 학을 타고 양주 하늘에 오른다는 말로서 모든 욕망이 다 이루어짐을 뜻한다. 소식(蘇軾, 1037∼1101)의 시 〈오잠 승려의 녹균헌[於潛僧綠筠軒]〉에 “세상에 어찌 양주 학이 있겠는가?[世間那有揚州鶴]”라고 했는데, 그 주(註)에 “옛날에 사람들이 각각 자기 욕망을 말하는데 혹은 양주 자사(揚州刺史)가 되기를 원하고, 혹은 재물이 많기를 원하고, 혹은 학을 타고 하늘에 오를 것을 원하였다. 이때 한 사람이 ‘허리에 10만 관의 황금을 차고 학을 타고 양주 하늘을 날았으면 한다.’고 말하였다.”라고 한 것이 있다. 《蘇東坡詩集 卷9》 오잠(於潛)은 송(宋)나라 때 절강성 항주부(杭州府)에 속한 현(縣)의 이름이고, 승려는 혜각(惠覺)이다.
자장(子長) :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사람 사마천(司馬遷)의 자(字)이다. 유람을 좋아하여 남으로는 강회(江淮)에 노닐고 북으로는 문사(汶泗)를 건너 산천을 유람하면서 호한(浩瀚)한 기운을 얻어 이를 문장으로 발휘하여 《사기》를 지었다.
백붕(百朋) : 많은 재물을 말한다. 《시경》〈소아(小雅) 청청자아(菁菁者莪)〉에 ‘나에게 백붕을 준다[錫我百朋]’라는 말에서 나온 것인데, 백붕을 재물이라고 하는 것은 옛날에 조개껍질을 돈으로 사용할 때에 오패(五貝)가 붕(朋)이기 때문이다.
백저 배동환(白渚 裵東煥) 著, 김홍영·이미진 역, 학민출판사(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