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당연필
난쟁이 대가족이다. 쉰다섯 식구가 좁다란 방에 가득하다. 병아리 부리 같은 입들을 뾰족하게 내밀었다. 지금이라도 오르르 달려 나와 산수 숙제를 콕콕 쪼아 풀어낼 기세다. 막내딸의 서랍을 엿보다 만난 친구들이다.
막내딸이 학업을 마치고 직장을 따라 대전에서 살고 있다. 성혼하여 출가할 때까지는 곁에 두려고 했는데 여의치 않게 되었다. 아이가 떠난 후 빈 방이 흡사 큰딸 시집보내고 난 뒤처럼 휑하다. 빈 방과 책상과 컴퓨터가 내 차지가 되는 옹골진 일이 그 휑한 마음 한 쪽을 채워준다.
새내기 수필가에게 호젓한 작업실이 생긴 것이다. 남편의 눈치 보며 밥상을 책상 삼아 안방과 거실을 넘나들던 나에게 이런 호사가 있을까. 책상 앞에 앉아본다. 참 아늑하다. 감칠맛 나는 글들이 송아리 째 쏟아질 것 같다.
책상 위를 대충 정리하고 서랍을 차례로 열어본다. 한 칸이라도 비어 있으면 거기까지 사용할 요량이다. 막내의 성격만큼이나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다. 손 안에 잡히는 단어장부터 알록달록한 종이학까지. 아이의 손때 묻은 소품들이, 떠나간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빈 칸은 없다. 아쉽다. 맨 아래 서랍에서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이 있다. 넓적한 철필통이다. 제법 묵직하다. 꼭 닫힌 뚜껑을 열었다.
‘와.~’ 고만고만한 몽당연필이 필통 가득하다. 도토리 키 재기 하듯 가지런히 누워 있다. 쉰다섯 자루. 1개 대대가 더 되는 병정이다. 흡사 갓 입대한 신병들 같다. 머리를 단정하게 깎고 차렷 자세다. 막내의 보물이다.
아이는 볼펜 껍질을 끼워가며 손가락이 아프도록 썼을 것이다. 연필의 몽톡한 머리 부분에는 아이의 이름이 또글또글하게 새겨져 있다. 고사리 손으로 연필마다 이름을 새기며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얼마나 진지한 표정을 지었을까. 새겨진 이름 석 자 속에서 보조개 쏙 파인 막내 얼굴이 보인다. 상글거리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하나씩 만져보고, 냄새도 맡아본다. 풋풋한 막내 향이 은은하다.
‘일손 놓고, 요 귀여운 놈들 좀 봐라.’ 한 컷 찍어서 막내에게 카톡 한 줄 곁들여 보낸다. ‘카톡! 카톡!’ 입이 귀에 까지 걸린 이모티콘이 대전에서 수원까지 단숨에 날아온다. 아이의 말간 웃음소리처럼 내 귀에 담긴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되던 60년대에 초등학교에 다녔던 세대는 연필 한 자루의 소중함을 잘 안다. 지금처럼 매끈한 공책에 잘 나가는 연필도 아니다. 종이는 거칠고 연필심도 약했다. 연필은 깎을 때부터 툭툭 부러졌고, 까끌한 공책은 침 묻혀 쓰는 연필 끝에서 죽죽 찢어졌다. 그중에서도 문화연필, 동아연필은 심이 좀 짱짱해서 인기가 좋았다.
중학교 입학시험 보러 가는 날이었다. 큰집 언니가 무명치마 속 고쟁이 주머니에서 허옇게 닳아진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주었다. 좋은 연필 사서 시험 잘 보라며. 그 때 샀던 동아연필 한 다스는 지금도 마음속에 오롯이 남아 필통 속을 차르르 굴러다닌다.
연필에 대한 나의 애틋함은 딸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도 이어졌다. 아이들은 일일이 깎을 필요가 없는 샤프 연필을 쓰려고 했다. 샤프는 잘 부러져서 집중력을 감한다며 연필을 강권했다. 요즘은 품질 좋은 연필이 얼마나 많은가. 몇 다스씩 사서 깎아 딸들의 필통에 넉넉히 담아주곤 했다. 아이들의 필통이 가득하면 안 먹어도 배가 불렀다. 마침내 아이들의 연필 사랑하는 마음이 나보다 더했다. 막내의 그런 마음이 학창시절에 쓰던 몽당연필을 직장인이 된 지금까지 보관하게 된 것 같다.
꼬막손으로 쥘 수 없이 작아진 연필을 다 써버린 볼펜 껍질에 끼워 쓰던 몽당연필. 마루교실 대청소라도 하는 날이면 마루 틈에 끼인 몽당연필을 서로 주우려고 왁자하게 엎드러지던 친구들. 그들도 지금은 할미가 되고 할배가 되었으리라. 고사리 손에 연필을 쥐고 깍두기공책에 한글을 또박또박 채워가는 손자녀들을 보고 있을까. 지금 나처럼….
지금은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필기구들이 문구 코너에 넘쳐난다. 그러나 신세대들은 더디다는 이유로 손으로 쓰는 것을 싫어한다. 얼마 전에 신문 지상에서 보았다. 아이들이 글씨 쓰는 습관을 가지면 정서가 안정되고 생각하는 힘이 커진다고 한다. 디지털 생활이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영상 매체에 밀려나는 질 좋은 필기구들이 인스턴트식품 때문에 남아도는 쌀 같다.
전화 한 통화, 문자 메시지 한 줄 보다는, 보내는 이의 체취가 잔잔하게 배어나는 연필로 쓴 손 편지 한 통을 회복할 수는 없을까. 연필에 대한 애틋함이 얇아지다 못해 사라지고 있는 요즘에 궁상스런 초로(初老)의 헛꿈일까.
첫댓글 따님이 엄마의 성품을 그대로 이어받았네요.
살아오신 삶의 알뜰함과 따사로움이 글마다 넘쳐 흘러요.
그런데
글 올리실 때 제목 옆에 이름 안 다셔도 됩니다.
본인의 작품 올리면 이름은 다 뜨게 되어 있어요.
남의 작품 올릴 때 작가의 이름을 제목 옆에 달거든요...ㅎㅎㅎ
네~ 선생님 알겠습니다.
저는 오래전 부터 컴퓨터 자판기로 글을 쓰는 습관이 되어버려서, 편리한 점도 있지만 불편한 점도 있어요.
몽당연필. 이름만으로 추억이 떠오르면서 정겨워집니다.
네 전순복 선생님 다 장단점이 있겠지요 저는 지금도 아날로그를 고집하며 살고 있어요 그래서 매사 느리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느낌이 들지요ㅡ저는 글 쓰기를 연필이나 볼펜으로 해요
그래서 지금도 필통엔 잘 깎은 연필이 서너 자루 자리하고 있네요 신세대에게 푸대접 받는 연필을 나라도 대접해주고파서요 ㅎ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