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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글쓰기 남당 박창화 유고 30권
과거와 미래 추천 0 조회 95 26.05.05 11:14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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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6.05.05 14:32

    첫댓글 1999년에 박창화님의 아드님인 박인규님 댁에 직접 박창화 님의 책을 본 적이 있습니다. 박인규님이 직접 '화랑세기'와, 박창화 자신이 지은 '강역고' 2책만을 박창화님께서 소중히 여기셨다고 하셨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2책을 제외한 다른 책의 경우 박창화가 직접 썼다기 보다는 옮겨 적은 책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가장 소설에 가까운 책은 '을불대왕전', '어을우동기' 정도인데, 이 책을 보면 유학자인 박창화가 창작했다고 보기 어려운 내용이 너무 많습니다. 박창화가 전한 필사본에는 소설보다는 역사서 형태를 갖춘 책이 훨씬 많습니다. 다만 박창화가 일본 궁내성도서료에서 책을 보고 옮겨 적었다고 한다고 해도, 언제 누가 만든 책이냐는 문제가 문제가 됩니다. '추모경'은 위서라고 하겠지만(고려 초 칠대실록의 저자 황주량의 저서라고 했으나, 그가 쓴 책으로 보기는 무리이므로), 다른 책은 누가 지었는지도 적어놓지 않아서 언제 만들어졌는지 조차 알 수 없어 더 난감합니다. '고구려사략' 같은 책과 삼국사기를 비교 분석하는 연구가 진행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서지학적인 문제 즉 원본을 찾아보기 전까지는 박창화가 남긴 책 연구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됩니다.

  • 26.05.06 22:35

    남당 박창화 선생님의 아드님 김인규님이나 청송 김성겸님의 연락처를 알 수 있는 지요? 김성겸 선생님의 말씀처럼 남당 박창화 선생님은 성경을 창작할 작품으로 생각할 수 없듯이 우리나라 역사연구에 복사본생산등 등 대단한 사료정리 일을 하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연구를 하다보니, 표기법 등에 대해 궁금한 점은 많은 데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 26.05.14 08:06

    일단 과거와 미래님이 첫 번째 주장한 내용이 곧 이 글의 근거로 보여지는데, 이는 남당유고 자체를 읽어보지 않고 쓴 글 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구지왕기를 분석하면 그 즉위 초년이 188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근거로 제시한 일성이사금기의 내용 역시 다른 필사본에 의해 연도가 일치됩니다. 남당유고는 기본적으로 백제는 고이왕, 고구려는 태조왕, 신라는 내물이사금 이전의 기록은 믿을 수 없다는 고 이병도 박사의 말처럼 그 이전 기년의 기록에 대해 수정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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