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한국 역사학계에서 발간한 '전라도 천년사'는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는데, 고대사 부분을 읽어보니 새로운 것은 거의 없고 20세기의 통설들을 모은 책이었다. 집필진은 새로운 연구결과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고 기존의 연구결과에서 해당 부분을 찾아 끼워 넣는 방식으로 책을 만들었다. 따라서 집필진이 한 일은 기존의 통설이 여러 개 일 때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의 판단이었다.
이 세상에 오타 없는 책은 없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하지만 고의로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책의 신뢰만 떨어진다. 참고로 팔만대장경은 지금까지 단 한자의 오타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더욱이 팔만대장경 전체가 한 사람의 필체인데, 만일 한 사람이 이를 다 쓰려면 3백년 걸린다고 한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전라도 천년사' 고대사 부분 한군데만 보고 가자. '전라도 천년사,' 제4권 고대, 161쪽이다.
고대사 연구자들 중에 서기 372년의 중국 왕조 연호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 그 이유는 백제사 최초의 중원왕조 책봉인 여구왕의 진동장군 책봉이 이 해인 372년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라도 천년사'는 372년(신공 52, 태화 4)라고 하여 372년이 중국 연호로 '태화 4년'이라고 하고 있다.
372년이 과연 '태화 4년'인지 아니면 무엇인지는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서기 372년은 동진의 (간문제) '함안 2년'이다. 삼국사기 연표에도 있다. 이로부터 3년 전인 369년이 동진의 '태화 4'년인데, 2년 후에 연호를 함안으로 바꿨다. 그래서 371년이 '함안 1년'이고, 372년이 '함안 2년'인 것은 고대사 연구자면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다.
그런데 372년이라고 쓰고 괄호 안에 '태화 4년'이라고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해석이야 여러가지가 나올 수 있지만 이런 객관적인 것은 틀리면 안 된다. 여러 명이 함께 교정을 보았을 것이고, 더욱이 이는 칠지도와 관련하여 매우 민감하고 중요한 사항이니 여러 번 확인했을 것이다. '전라도 천년사'가 전체 집필진은 공개하고 있으나, 어느 부분을 누가 썼는지는 공개하지 않고 있어, 이 부분을 누가 썼는지는 알 수 없다.
삼국사기 집필진이 진서의 372년 여구왕 책봉기록과, 386년의 여휘왕 책봉기록과, 416년의 전지왕 책봉기록을 다 보았으면서도, 여구왕과 여휘왕의 백제왕 책봉기록은 버리고 전지왕의 백제왕 책봉기록을 백제사 최초의 책봉기록으로 삼국사기에 실은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항상 논쟁이 벌어지기 때문에 모를래도 모를 수가 없는 연도다.
이렇게 다 아는 것을 저렇게 태연히 거짓으로 써놓은 것은 실수가 아니고 고의의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그 이유는 일반인은 이렇게 써 놓아도 모를 것이라는 자만감에서다. 자신이 칠지도를 이해하지 못하므로 억지로 말이 안 되는 것을 꿰어 맞추다보니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도 그 정도는 안다. 학계가 스스로의 격만 떨어뜨리고 있다.
그런데 더 심한 문제는 내가 본 2~4권의 고대사 부분에서만도 이와 유사한 명백한 오류가 한 두 군데가 아니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틀린 곳을 찾아서 줄을 긋다가, 나중에 보니 반대로 맞는 곳을 찾아서 줄을 긋고 있었다. 이 책이 앞으로 사학과의 한국 고대사 교재로 쓰일텐데 이를 보고 학생들은 무슨 생각을 할 지 걱정이다.
첫댓글 전라도 천년사 집필진들은 구제가 될수 없는 인사들인것 같습니다 저런 오류적 서술과 편향적인 사료 인용행태 같은 역사학에서 자격실추가 될만한 문제점들을 저지르고도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마녀사냥 유사역사학의 색깔공격이라고 적반하장으로 대응하는 것을 보면 전라도 천년사 집필진들은 역사학계에서 추방시켜야 될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