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독도서관(正讀圖書館)은 1977년 1월 4일 개관한 서울시립도서관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5길 48 (화동 2)에 위치했던 경기고등학교 건물을 1977년 1월 4일 인수해 개관하였으며, 52만여 권의 장서와 1,200여 종의 연속간행물, 15,500여 점의 시청각자료, 12,800여 점 이상의 교육사료를 보유하고 있다. 관내에는 구 경기고등학교의 역사를 간략히 소개한 게시판이 설치되어 있다.
휴관일은 매월 1,3째 수요일과 일요일을 제외한 법정공휴일, 그리고 도서관이 정하는 임시 휴관일이다.
서울교육박물관도 이자리에 있다.
정독도서관은
안국동 율곡로3길(옛 감고당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사거리 오른쪽 언덕에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 고개 주변에 붉은 흙이 많아 고개 이름을 홍현(紅峴)이라 불렀으며 궁중의 화초를 키우던 장원서가 있었다고 전한다.
겸재 정선이
인왕제색도를 그리기 위해 인왕산을 바라봤던 자리가 바로 종로구 화동에 자리 잡고 있는 정독도서관의 정원이다. 근대 조선 개화파였던
김옥균,
서재필,
박제순의 집터이기도 하였다. 1900년부터 1976년까지는 경기고등학교가 위치하던 자리였다.
정문으로 들어간 뒤 오른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종친부의
경근당과 옥첩당 건물이 있었다. 원래 소격동 165번지 구
기무사 부지 내에 있던 것을 1981년에 현 위치로 옮겼다가,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과 함께 원 위치로 이전하였다.
도서관의 본관 입구 서쪽에는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연못을 조성하였으며, 연못 주변에는 초정이 있다. 계절마다 변화하는 꽃과 나무 등 경관이 아름다워
북촌 일대의 관광객이 오기도 한다. 봄에는 내부 도로를 따라 심어진 벚나무가 꽃을 피운다.
화기도감터
화기도감은 조선시대에 총포를 제작할 목적으로 설치한 관청이다.
병조에 예속된 임시관청이다. 1614년(광해군 6)
임진왜란 때 왜병의 조총에 대항하는 화기를 만들기 위해 설치한 조총청(
鳥銃廳)을 개편한 것으로, 도제조 1명, 제조(정2품 이상) 5명, 도청(
都廳) 1명, 좌우낭청 각 2명을 두었다. 이때에 도제조는
기자헌(
奇自獻), 제조는 유근(柳
根) ·
박승종(
朴承宗) ·이상의(李
尙毅) ·
이수일(李
守一) ·이경량(李
慶梁) 등이 임명되었다.
불랑기(
佛狼機) ·현자총(
玄字銃) ·백자총(
百字銃) ·
삼안총(
三眼銃) ·소승자장가(
小勝字粧家) ·쾌창(
快鎗) 등을 제작하고, 만든 무기는
비변사(
備邊司)의 지휘를 받아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의
치영(
緇營), 각 도의 병사아문(
兵事衙門) 등 각 진영에 배치하였다. 당시 청나라가 강성해지자 이에 대비하여 총포를 제작하기 위해 설치했는데, 대략 1년간 존속하면서 기능하다가 더 이상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중등교육 발상지가 바로 이자리다.
화동 구 경기고교
정문 옆에
서울교육박물관이 인접하여 위치해 있다. 내부에 한국의 교육제도 및 과정, 내용, 기관, 활동 등에 관한 유물과 사진자료를 시대별로 전시, 운영하고 있다.
정독도서관의 건물은
경기고등학교의 것을 이용한 것으로, 1938년 스팀난방방식을 도입한 당시 최고급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학교 건물로 건립되었다.
한국 전쟁 때 미군 통신부대에서 사용하였으며, 1956년 고등학교로 반환되었고, 1975년 고등학교가
강남구 삼성동으로 이전한 뒤 1977년 이후 현재까지 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건축 당시 스팀난방시설을 갖춘 최신식 학교건축으로서, 보존 가치가 뛰어나다고 판단되어 건물 중 오래된 4개 동(사료관동, 도서관 1·2동, 휴게실동)이
등록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다.[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