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날씨같은 마음이 일상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쾌청하고 맑은 날을 경험해보지 못한 것 같은. 그러면서도 살고있으니 참 대단한것 아닌가. 맞다. 대단하고 장하다. 토닥토닥, 이렇게 위로를 보내고 하루를 시작해보자. 3일 하고도 반을 집에 콕 박혀 보내는 중이다. 교횔 다녀온 몇시간을 빼고도 그렇다. 이게 살아있는 사람의 일상인지는 모르겠다. 숨을 쉬고 있으니 살아있는 것은 맞는데, 살아있음은 이런게 아닐것 같다. 이미 노인이어서 그런것도 아니다. 그리 생겨먹어서 일게다. 어려서도 나대는 편은 아니었다. 순한 아이, 생각이 없는 아이, 개성이라고는 없는 아이? 또 어떤 표현이 있을까. 할아버지 울타리 안은 온실이었다. 시설이 완비된 넉서리한 온실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비 바람을 막기에는 충분했다. 거기서 나왔을때, 나는 세상과 마주할 아무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던 같다. 갑작스러운 찬바람과 진눈깨비와 ,,,싸워볼 생각같은것은 아예 없었지 않았을까. 감히 맞서다니, 그냥 움추리고 숨어서 견디려 했을수도 있다, 내동댕이 처진 서러움에 어찌할바를 모르고 입을 앙당물었을 내가 보이는 듯 하다. 어머니가 계시는 동안은 연화리가 돌아갈수 있는 집이라는 생각을 하고 살았던 것 같다. 정 못살것 같으면 돌아갈 집은 있다는 생각은 그래도 내게 위안이 되어 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내 아이들에게 돌아갈 집이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미안해진다. 세상은 참 버겁고 힘들다. 누구라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거기, 언제고 돌아갈 집이 있다는게 얼마나 큰 위로인가. 그런 위로가 내 아이들에게 없다는게 아쉽고 미안하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신앙을 갖기를 원했다. 어렵고 힘들때, 막다른 길에 내몰리거나 할때, 손을 내밀 누군가가 있고 없음은 얼마나 차이가 큰지를 알기 때문이다. 기도할 대상이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인지를 알고있어서다. 우린 다 연약한 존재이다. 기댈 어께가 있으면 좋고, 부빌 언덕이 있으면 다시 일어나기가 용이하다. 부둥켜안고 울어도 좋고, 춤을 춰도 좋다. 그런존재가 반듯이 필요하다는게 내 생각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줄수있는게 뭐가 있겠는가. 가난을 물려주는 시작점이 되는것 말고는 없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게하고 싶어서 나름 애를 썼는데,,, 아니, 본이 되지는 못했나보다. 나는, 스스로가 참 헐거운 신앙생활을 해왔으니 본이 되고말고도 없었나보다. 은호가 교회가는게 싫다며 꽁무니를 빼고있어서 난감하다. 어떻게 돌이킬수는 없을까. 손에손을 잡고서 갈때는 별 저항 없었는데,,,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숙제인가. 애들을 이끌고 교횔 갔던것도 내 허영심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면도 분명 있긴 했다. 내가 양손에 아이들 손을 잡고 오가는 것을 부려운 눈으로 보는 것을 분명 의식하곤 했으니까. 누군 자식들이 결혼도 안하고 자빠저 있는데, 그것도 둘씩이나 손주들 손을 잡고 어께 힘주고 의기양양 오가는 모습이 왜 안부렵겠는가. 아니, 나는 그게 전부였다. 다른 무엇도 없었으니까. 아이들이 내 활력의 원천이 되어주고 있다는게 꼭 밉살스러운 일이 될까. 가저본거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초라한 인생속에서 다 늦게 찾아온 이 아름다운 이름의 천사들이 내게 희망이 되어주고 있는데,,, 주님, 부디 불쌍히 여겨주시고 제게 은혜를 배풀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제 아이들이 주님의 품안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제 믿음을 먼저 굳게 새워주시고 유종의 미를 거둘수 있게하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멘, 아멘. 오늘하루도 형통하길 원하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