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재밌는 이야기 1
대구는
풍수지리학 적으로
한반도를 호랑이에 비교했을
때
비슬산과 팔공산에 둘러싸여
움푹 들어간 아늑하고 따뜻한
자궁자리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훌륭한 인물들이 많
이
탄생 했었고
내란, 외환, 우환이 적었으며
6.25 때도 마지노선을 지켰
고
이 나라가 위태로울 때마다
국채보상운동이라든지 각종
학생운동,
IMF 때도 금 모으기 운동을
최초로 시작한 곳입니다.
또 미녀도 많은 도시죠.
물론, 한민족이 아플 때
마다 어루만져 주다 보니
옛날부터 약령도시가 발달하
였고
최근에는 세계적인 의료도시
로서
각광받고 있지요.
이러한 특성은 옛날옛적부터
이 지역이 산과 물이 맑아
사람이 살기 좋은 터였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대한민국 근대에는
부패한 여당과 맞서는
대단한 진보도시였기에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2.28 학생운동이 시작된 곳
입니다.
♡ 대구의 재밌는 이야기 2♡
대구 모노레일 3호선을 타다
보면 건들바위(대구입암) 역
이 있습니다.
건들바위라는 이름의 유래는
잘 알 수 없으나
예로부터 그 모양이 갓 쓴 노
인같다고 해서
삿갓바위라고도 뷸러 었습니
다.
200년 전에는 이 바위 앞으
로
맑고 깊은 신천이 흘러
많은 시인들이 이곳에서 낚시
를 하며
풍퓨를 즐겼던 경치 좋은 명
소의 하나였으며,
서거정 선생이 노래한
대구 10경 중
입암조어의 장소로도 잘 알려
져 있습니다.
조선 정조 때 시가지 일대의
하천 범란을 막기 위하여 제
방을 만들고 물줄기를 다른
곳으로 돌리면서
더이상 이곳으로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바위는 조선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근대에 이르기까지 무당이나
점쟁이들이 몰려와 치성을 드
렸는데, 특히 아기를 갖지 못하는 부
인들이 치성을 드리러 많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현재는 바위 앞으로 도로가
설치되어 당시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는데, 주변을
아름답게 꾸며 시민들에게 휴
식의 공간을 제공하고, 특히
물이 흐르던 옛 모습을 재현
해 두어 옛 정취를 조금이나
마 느낄 수 있도록 배려 하고
있습니다.
♡ 대구의 재밌는 이야기 3 ♡
청라언덕과
동무생각 대구 출신 작곡가
박태준 선생이
마산 창신중학교 교사 시절,
노산 이은상 선생과 교분을
쌓게 되었으며,
박태준 선생이 1911~1916
뇬까지
계성학교에 다녔던
자신의 집
(현 섬유회관 인근) 앞을 지
나던 한 여고생을 이지 못했
던 짝사랑이
작곡의 동기가 됐다는 것이
다.
동산은 그가 현재의 제일교회
옆
3.1운동 계단을 지나 등교하
던 길이었다.
그 여학생은 한 송이
흰 백합 같은 절세의 미인이
었지만
박태준 선생은 내성적인 성격
탓에
말 한마디 붙여보지 못했으
며,
그녀는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버렸다
고 한다.
이은상 선생이 이 사연을 듣
고
'노랫말을 써 줄 테니 곡을 붙
여보라'고
박태준 선생에게 권유함으로
탄생한 것이 '동무생각'이다.
'동무생각'에
등장하는 '청라언덕'은
푸를 청(靑), 담쟁이 라(蘿)
를 쓰고 있는데,
이 '청라'가 지금도 푸른 담쟁
이로 뒤덮은
동산병원 내 선교사 사택 일
대의
언덕을 말한다고 한다.
'동무생각'이 청년 박태준의
로맨스를 담고 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후 그 여고생이 당시의 신
명여자학교(현 신명고) 학생
이냐, 대구공립여자보통학교
(현 경북여고) 학생이야 하는
논란도 한동안 호사가들의 입
에 오르내리기도 하였으나
공교롭게도 경북여고 교화가
백합이었고, 경북여고 개교는
1926년인데 비해 신명여고
개교는 1907년으로 '동무생
각' 작곡 시기(1922년)보다
빠르기 때문에 신명여자학교
가 맞다는 것이다.
또한 당시 박태준 선생의 집
과
신명여자학교의 등굣길은 일
치한다는 점도
이런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
다.
또 '동무생각' 3절에 나오는
가사
'서리바람 부는 낙엽동산 속
꽃 진 연당에서... '의 연못은
동산에 물을 대주던 '선황당
못'이라는 것도 이번에 밝혀
졌다. 이 연못은 1923년 서
문시장 확장과 함께 메위졌
다.
♡ 대구의 재밌는 이야기 4 ♡
#서문시장
조선시대 3대 시장은
평양시장, 강경시장, 서문시
장입니다.
서문시장은 영남권 최대 전통
시장으로서
옛이름인 '대구시장'은
원래 대구 북문 밖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923년 일제에 의해
서
지금의 위치로 왔는데요.
본래 지금의 서문시장 자리에
는
'천황당'이라는 못이 있었습
니다.
비산동, 내당동에 있던
88개의 고분을 헐어서
그 흙으로 못을 매립하여
지금의 서문시장이 서게 된
것입니다.
이 천황당 못에는
처녀귀신의 전설이 전해 내려
옵니다.
옛날, 천왕당못에는 선남선녀
들이 즐겨 찾았고
봄 가을이면 근처의 여자들이
모여
놀이를 하곤 했었답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떤 처녀가
이곳의 남자에게 희롱을 당한
뒤
처녀는 비관하여 이 곳 '천황
당 못'에 빠져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 뒤 이 못은 매립되고 서문
시장이 들어 섰는데
그때 죽은 처녀귀신이
자신의 한서린 죽음을 기억하
기 위하여
서문시장에 자주 불을 일으킨
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시장의 상인들은
잦은 화재가 처녀귀신의
억울한 한 때문이라고 생각하
고
원혼을 달래주는 긋을
올려 주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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