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 읽고 싶은 시(글): 박관서 시인의 ‘선로변에서’‘기차를 기다리며’◈
선로변에서/ 박관서
눈을, 다시 뜰 때 있다. 나른한 한낮을 골라 전철기 청소를 하러 가다가 양팔 곱게 벌린 철로와 철로 사이를 칸칸이 잇고 있는 침목 위로 똠방똠방 건너가는데, 한 뼘이나 될까. 샛노란 눈빛 달랑달랑 내밀고 있는 개불알꽃을 만나 서로 어르며 안부를 나누다가, 문득 등골이 서늘해 돌아보니 천둥 같은 기적이 덮쳐와 목덜미를 낚아채 선로 밖으로 동댕이친다.
와르르르르 지나온 길 지나갈 길 모두 무너져 내린다. 잠긴 눈으로 본다. 환하다. 일거에 삼십년을 비우고 다시, 눈 뜰 때 있다. 선로변이다.
기차를 기다리며/ 박관서
멀리 불빛을 보네
외딴 전철기 막사에 앉아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네
풀벌레 울음 가슴을 치네
에이 몹쓸 것, 뜯어내어
풀어주네 수풀 밭으로
낮에는 소주를 마셨네
작업복에 담겨 평생을
철길 아래 침목으로 누워
기차를 기다리는 동료들
슬슬 꼬드겨 한 컵 가득
소주를 마셨네 모처럼
수은 불빛으로 타올랐네
흐린 낯빛으로 낮게 깔린
기름 먹은 하늘을 불러 모아
스파이크 대못으로 쾅 쾅
두드려 박았네 한 치의
틈도 없이 서로를 결박하였네
그제야 삼천오백만 육십 킬로를
달려온 밤 기차가 지나갔네
천둥처럼 소문처럼 깜박
깜박 별들이 솟아올랐네
* 박관서 시인은 호남선 목포역 등에서 철도공무원으로 청춘을 보냈다. 흰 이를 드러내며 웃을 때면 철없는 어린아이 같아서 좋았다.
내가 전주로 온 후로는 보지 못했으니 이젠 기억조차 가물하다.
역무원이 천직이어서인지 그의 시에 등장하는 기차는 눈물겨워서 배고픈 동생 얼굴을 보는 것 같다. (이슬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