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에 대하여
밤 서리 나갔던 초가을이다 악동들 꼬챙이질 사이에 나도 모난 돌 잡아 알맹이 까는 찰나 ‘누구얏’ 소리로 모두 숨은 그림 되었다 무거운 발자국 처벅처벅 다가올 때 ‘혼자구나’ 덜덜 떨던 다섯 살이 맞을 듯하다 털북숭이 아저씨 눈물 닦아주더니 알밤 몇 개 넣어주던 반전도 있었고
열한 살, 말벌집 건드린 사태도 동무 탓일까, 겁쟁이 소년 ‘던지지 마’ 외치기 직전 돌멩이 우르르 날아갔으니 이미 쑤셔놓은 벌집 되었다 정수리까지 뒤집어쓴 나이롱 잠바 칭구들 우르르 도망치고 나만 울퉁불통 부어올랐다 통증보다 외로움이 더 힘들어 훌쩍거렸는데
야간 학교 키 작은 중딩 시절,
남산도서관 내리막 계단 따라 무교동 골목길까지 혼자였다 상급반 교실에서 다구리 맞고 피묻은 교복 털어낼 때 눈빛 맑은 벗 하나가 콧들 닦아주던 진한 우정 떠올리던 사연이다 원효로 하굣길 가로등 그림자 휘청이던 골목에서 ‘그래도 다시 한번’ 주먹 쥐던 결의도 있었고
추워요, 꼭 껴안아 주세요, 행복해요
『별들의 고향』 스무 살 고백이 밑바닥 토로의 끝판인 줄만 알았다 목로집 낮술에 취해 ‘경아가 불쌍해’ 훌쩍이던 장발족 멘탈이 진실인지 연출인지 아직도 헷갈리는데
87년 늦봄 기우는 젊음이다 안산 공단 위장취업 학출 여자 만나러 갔다가 무릎 꿇린 대학생 열댓 명 구둣발에 밟히는 아스팔트 스크린이 기필코 맞다 ‘때리지 마’ 군중들 맨 앞에서 주먹 쥐다가 최루탄 쾅 터지는 찰나 나 혼자 쓰러져 콧물 쏟아내던 외로운 스크린
‘쳐다만 봐도 배부르던’ 식솔의 포만감도 칼바람 한 방에 나목이 되기도 했다 미루나무 꼭대기로 애지중지 올린 까치집, 그 둥지 한 채를 위해 결핍의 평생 보내다가 등이 굽었다 그래도 참 열심히 산 게 맞긴 한데
마지막 거처를 요양병원으로 설정할까 갸웃대는 초로의 봄날이다 노모의 1509일 숫자판 치다가 셋째 이모의 2714 날줄 씨줄도 아찔하게 헤아린다 그 ‘혼자 사태’ 미리 두려워하지는 말아야 한다 쉽게 작별하거나 고난의 평행선으로 동행하는 것도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