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갈 이유 없었다"…어느 우울증 환자의 고백
"제 숨소리조차 듣기 싫은 느낌, 어떤지 아세요?"
사람 없는 조용한 카페를 찾아 달라던 서명인(23·가명) 씨는 이같이 말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서씨는 스무 살이 되던 2014년, 대학 입학과 동시에 시작된 우울증과 여전히 싸우고 있다. 병원 치료와 전문 상담을 통해 증상이 호전됐지만 아직까지 항우울제와 수면제를 복용하고 있다.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서씨는 대학 입시를 준비했던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삐걱거리는 심리상태를 느꼈다. 간절히 원했던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서씨는 억지로 시작한 대학 생활에서도 열등감과 박탈감에 휩싸인 하루를 보냈다. 마음처럼 되지 않는 학업과 대인관계가 가장 큰 이유였다. 서씨는 "무기력함에 빠져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매일 밤 했다"며 "나 자신도 싫고 가족, 친구들 다 싫었다. 지나가는 사람조차 보기 싫을 정도였다"며 그때를 떠올렸다.
서씨의 우울증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지만 곧바로 병원을 찾진 못했다. 혼자만의 시간이 길어진 탓에 사람과의 접촉을 꺼리게 됐고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피해망상에 시달리게 됐기 때문이다. 서씨는 "병원에 가는 게 너무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며 "우울증을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보다 병원에서조차 나를 탓할 것 같다는 생각이 더 컸었다"고 고백했다. 그런 서씨는 임시방편으로 인터넷 검색을 선택했다. 보건복지부에서 제시하고 있는 우울증 자가치료법을 포함해 인터넷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치료법들을 시도해봤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서씨는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추상적인 방법"이라며 "혼자 그 방법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확보한 우울증 자가치료법 20건을 취합해 본 결과 가장 많이 제시된 치료방법은 ▲스트레스 조절 ▲운동습관 ▲균형 잡힌 식습관 ▲긍정적인 생각 ▲취미 만들기 등 총 5가지다. 춘천시정신건강복지센터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우울증을 제대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총 3단계로 구성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급성기 치료(2~3개월), 지속기 치료(4~6개월), 유지기 치료(6~24개월)로 나뉘며 완치가 아닌, 증상이 없어진 상태를 목적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서씨가 인터넷으로 접했던 치료법은 이런 과정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고, 오히려 허탈감만 주는 계기가 됐다. 이에 대해 김다솔 전문 상담가는 "인터넷에서 남발하는 방법들은 '치료법'이라기 보다 '예방법'으로 부르는 게 맞다"며 "그 방법들로 상태가 호전된다 할지라도 재발을 막는 유지요법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효과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극도의 우울함을 혼자 앓아야 했던 서씨는 결국 병원 치료를 선택했다. 집 밖을 나올 수조차 없었던 서씨가 두려움을 딛고 치료를 결심하게 된 계기에 대해 털어놨다. 그는 "어느 날 내가 폭력적으로 변해 있다는 것을 느꼈다"며 "갑자기 주먹으로 온몸을 때리기도 하고, 그래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을 때는 물건까지 집어 던졌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도 벌컥 화를 내는 상황이 생겼다"며 "이대로 방치하면 정말 위험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우울증은 개인의 심리 변화로 인해 생기는 병이지만, 심할 경우 그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수 있다. 지난 10일과 13일, 우울증을 앓고 있는 엄마가 어린 자녀를 살해하고 자신도 자해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서울대 법의학교실 연구 결과, 자식을 살해한 부모의 66%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이처럼 우울증은 가족 해체로 이어질 수 있고 사회적 범죄의 발단이 될 위험이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제시한 통계자료를 보면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2012년 52만8000여명에서 지난해 57만8000여명으로 5년 새 약 5만명이 증가했다. 남녀노소, 때를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병이기 때문에 그 증가율이 눈에 띌 정도다. 김 상담가는 "우울증은 방치가 가장 큰 적"이라며 "혼자서 조절할 수 없는 병이기 때문에 병원에 찾아 상담과 치료를 받는 게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또 "우울증의 원인을 찾는 게 중요하다"며 "재발이 잦기 때문에 호전된 이후에도 처방받은 약을 모두 복용하고 유지요법에 힘써야 한다"고 했다.
서씨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치료를 해도 회복이 더딘 상태라 아직 몸은 힘들지만 머릿속은 처음보다 훨씬 깨끗해졌다"며 "불쑥 우울함이 찾아올 때마다 성숙하게 이겨내려고 노력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루빨리 행복해지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내비쳤다.
문지연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