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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Letter of Paul to the Romans, 로마서)
(요약) 사도 바울로가 스페인으로 가는 도중에 최초로 방문하고 싶어한 로마의 그리스도교 교회를 향해 쓴 편지.
로마서라고도 함.
바울로가 쓴 〈신약성서〉 문헌 가운데 가장 길고 교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책이다. AD 57년경 고린토에서 씌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초대 교회 이래 집중적으로 연구되어왔으며,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마르틴 루터 교리의 기초가 되었다.
바울로의 긴 논술은 편지라기보다는 논문에 가깝지만 그것만으로 그의 신학을 완전히 파악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 이 편지에는 성만찬·부활·종말론에 관한 언급이 없다. 바울로는 여기에서 하느님의 의(義)는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에서 언제나 명백하게 드러난다고 선언한다.
비록 사도 바울로가 유대 민족의 특별한 종교적 유산(계약, 율법, 족장들, 그리스도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의는 모세의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오는 것이 아니며, 이것은 유대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선언한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모든 인간의 의의 원천이 되는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의를 드러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로는 독자들에게 의롭다함[義認]을 얻었다 하여 그것이 죄를 지어도 좋다는 허가장은 아니라는 점을 환기시킨다. 이 편지는 또한 '선으로 악을 갚으라', '서로 돕고 사랑하라', '통치자들에게 복종하라'와 같은 몇몇 구체적인 권면의 말을 포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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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화 (justification , 義化)
하느님이 사람을 죄의 상태에서 은총(의로움)의 상태로 옮기는 행위, 죄의 상태에서 의의 상태로 옮겨감으로써 생기는 인간 상황의 변화, 특히 개신교에서 하느님이 회개하는 죄인들에게 의화의 지위를 주는 사면 행위 등을 말한다. 이 용어는 그리스어 디카이오시스(dikaiōsis:라틴어로는 justificatio)를 번역한 것으로서, 원래는 '(어떤 사람을) 의롭게 만들다'라는 뜻의 동사에서 유래한 전문적인 법률 용어였다.
의화는 바울로 시대 이래로 교회사와 신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녀왔다. 바울로는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리사이파가 갖고 있던 율법적인 신앙 배경을 비판하면서,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될 수 있는가를 묻는다. 그는 대답하기를, 행위로써도 의롭게 되지 못하고, 계명들(그 자체로는 선한 하느님의 율법)에 순종해서도 의롭게 되지 못한다고 한다.
사람은 하느님 앞에 의화로서가 아니라 죄인으로서, 철저히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선다고 한다. 죄인들을 의롭다고 하는 이는 하느님이다. 인간들의 법정에서는 오직 무죄한 사람만이 무죄 판결을 받는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죄인으로 서는 하느님의 법정에서는 불의한 사람들이 하느님의 자비로운 판결로 무죄로 선포된다. 이것은 자의적인 선언이 아니라, '우리 죄 때문에 죽으셨다가 우리를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기 위해서 다시 살아나신'(로마 4:25) 예수 그리스도를 근거하여 내리는 선언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죄인은 율법·죄·죽음에서 면제되고, 하느님과 관계가 회복되며,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평화와 생명을 누리며, 의롭다는 선언을 받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의롭게 되어간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사람은 하느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내리는 자비로운 심판을 받아들여야 하며 주님에 대해 완전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한마디로 신앙을 가져야 한다. 일단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이라도 예전처럼 유혹을 받을 수 있으므로 계속해서 하느님의 은총을 의지하고 살아야 한다. 믿음은 가만히 있는 것이어서는 안 되고, '사랑으로 행하는 믿음'(갈라 5:6)이어야 한다. 즉 사랑의 행위로 믿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리스도교 교부들은 의화 교리를 강조하지 않았으나, 도덕적인 자기 성화를 가르친 이단 분파인 펠라기우스주의자들과 논쟁을 벌인 아우구스티노의 사상에서는 중요한 신학 개념이 되었다. 이 교리는 중세말 마르틴 루터가 당시 유행하던 공적으로 의롭게 된다는 개념에 맞서 투쟁하는 가운데 크게 부각되었는데, 이 투쟁으로 바울로의 의화 교리가 순수하게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종교개혁자들은 의화를 핵심교리로 삼았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63)는 반개신교적 편향을 띤 견지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입장을 규정했으며, 다음 여러 세기 동안 로마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가 의화 교리를 서로 반대되는 입장에서 이해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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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터의 하느님의 의의 발견
1. 개요
바울로의 사상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루터는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하느님의 의'라는 개념은 그에게는 견딜 수 없이 무거운 짐이었다. 차분한 경건의 분위기에서 자란 루터는 하느님의 심판을 강하게 의식했다. 또한 비텐베르크 인문학부 교수로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연구하면서 발견했던 정의에 관한 그리스적인 개념을 강의했다. 몇몇 유명론자들이 그들의 저작에서 유스티티아(justitia:'의' 혹은 '정의') 개념을 활용하는 것을 본 루터는 하느님의 심판이란 주로 죄인을 특수한 행위로써 징벌하는 하느님의 엄혹성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느님의 의가 복음으로 계시된다는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1장 17절의 주장은 루터의 갈등을 가중시켰다. 그것은 최후의 벽이었다. 그리하여 루터는 하느님이 십계명을 통해 계시된 율법에 대한 외적인 복종을 넘어서서 마음의 순수성과 내적인 동기와 의도까지 요구하므로 은혜 그 자체는 요구이자 강제가 된다고 결론지었다. 이러한 하느님은 공포의 대상은 될 수 있어도 사랑의 대상은 될 수 없다.
그 하느님은 억지로 복종할 대상은 될 수 있어도 그가 그리스도교적 복종의 진수라고 느끼며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대상일 수는 없다.
2. 내면 갈등
루터는 율법을 지키는 데 실패했다고 의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위선자라는 생각에 휩싸였다.
결국 도덕신학자들이 '공개적인 신성모독'이라고 묘사하는 극한상태 직전에 이르게 되었다. 1545년 전집의 머리말로 쓴 유명한 자서전적 단편에서 루터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심경을 묘사했다.
"내가 수사로서 제아무리 나무랄 데 없이 살아간다 하더라도 나는 하느님의 면전에서 설레는 양심을 지닌 죄인이라고 느꼈고, 스스로 만족할 만큼 하느님을 기쁘시게 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나는 이 정의로운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록 공개적인 신성모독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큰 불평을 늘어놓으며 이 의로운 하느님을 미워했다.
나는 그분에게 성을 내었다. '비참한 죄인들이 원죄로 인해 영원히 버림을 받고 십계명의 율법을 통해 온갖 불행으로 억눌림을 당한다 해도 그것은 실제로 하느님의 마음에 차지 않는다. 그래서 그분은 슬픔에 슬픔을 더하며 복음을 통해서조차 자신의 진노를 드러낸다'고 말했던 것이다. 나는 매우 격앙된 불 같은 양심으로 화를 내었다. 그렇지만 나는 바울로가 진짜 의도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싶은 열렬한 마음으로 바울로의 문을 계속 세차게 두드렸다.
그것은 딜레마였다. 그러나 기도와 명상을 하면서 낱말들의 연관성을 검토하고 본문에 대해 깊이 생각했을 때 서광이 비쳤다. 마침내 나는 하느님의 의란 의로운 사람이 하느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사는 그 무엇이라고 이해하게 되었다. '하느님의 의는 믿음에서 나타난다'는 이 문장은 수동적으로 이해해야 하며,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기록된 바와 같이 은혜로운 하느님이 우리의 믿음을 통해 의롭게 한다는 뜻이다.
이 점을 깨닫자 나는 다시 태어나 천국으로 통하는 활짝 열린 문으로 들어선 느낌이었다."
이 내적인 갈등과 관련해서 학자들은 커다란 논쟁을 벌여왔다. 아무튼 루터에게는 그 자신이 나중에 묘사한 것과 똑같은 위기가 있었고, 이 위기는 루터가 이야기한 방식대로 해결된 것이 확실한 것 같다. 이 발견이 새로운 것이었느냐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었다. 사실상 분배적 정의에 대한 그리스적 개념과, 역사와 인간 경험의 영역에서 펼쳐지는 하느님의 구원활동으로 하느님의 의를 파악하는 성서의 교리 사이에는 심원한 차이가 있다.
루터는 이 점과 관련하여 바울로의 용어를 깊이 파고 들어갔다. 이에 대한 루터의 기억이 과연 정확하고 완전한가에 대한 논란이 종종 벌어지기는 하지만, 현대 가톨릭 역사가 요제프 로르츠의 판단, 즉 이 발견은 비록 새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루터에게는 새로웠다'는 것은 경청할 만하다.
3. 은혜로서의 구원
만일 루터가 이 이야기를 기록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새로운 신학적 틀에서 으뜸가는 중요성을 갖는 의인(義認) 개념에 루터가 부여한 새로운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이와 비슷한 추측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루터가 생각하는 복음으로서의 구원은 일차적으로 은혜 곧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견지에서 생각되어야 한다는 것, 하느님의 자유로운 죄사함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났다는 것, 양심은 죄사함을 받고 깨끗해질 때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것, 죄의 멍에에서 벗어난 영혼은 즐겁게 자발적이고 창조적으로 하느님께 복종하면서 하느님을 섬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성서를 번역하면서 루터는 "사람은 율법을 지키는 것과는 관계없이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로마 3:28)라는 구절에서 '믿음'이라는 낱말 다음에 '오직'(sola fide)이라는 낱말을 덧붙였다.
독일어로 본래 뜻을 충분히 전하려면 그 낱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직'이라는 낱말은 루터 이후 종교개혁자들이 계속 써왔다. 이 말은 구원이 인간의 업적 혹은 인간의 공로에 대한 보상에 의존하는 것처럼 견강부회하는 사설(邪說)로부터 이 중요한 교리를 지켜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4. 루터의 의인 경험에 대한 평가
루터는 다른 용어(예를 들어 '참회'[poenitential]의 개념)와 연관지어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의인 경험을 따로 떼어 놓고 고찰해서는 안 된다.
또한 루터의 이 경험은 밀라노의 정원에서 하느님을 신비하게 경험한 성 아우구스티누스나, 런던의 올더스게이트 거리에서 회심을 체험한 18세기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에게 일어난 것과 같은 결정적인 인격적 경험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없다. 이 일이 언제 일어났는가를 놓고 학자들 간에는 많은 논쟁이 있어왔다. 루터의 초기 강의록들이 간행되면서 학자들은 젊은 교수였던 루터에게 첫번째 결실이라고 할 수 있는 의인 경험에 대해 상세히 검토할 수 있게 되었다.
루터가 단일한 본문에서 3~4가지 수준의 의미를 찾는 경우가 많은 중세의 다각적인 알레고리 방법을 사용했고 단일한 역사적 의미에 관심을 집중했으며, 의인 신학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다는 사실로 미루어볼 때 깨달음은 〈로마인들에게 쓴 편지〉에 대한 강의 직전에(1515~16) 그에게 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깨달음 자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따라 결론은 달라진다. 만일 의인이 선물이며 능동적으로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라면(루터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영과 문자에 관하여 De spiritu et littera〉를 참조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의 틀에서 거의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셈이며, 루터의 의인 경험은 1515~16년에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구원을 이루는 믿음과 하느님의 말씀의 관계에 대한 보다 성숙한 발견이었다고 한다면 이 일이 일어난 시점은 1518~19년으로 잡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후대의 시점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루터의 사상이 1517년에 시작된 교회투쟁의 절박한 압력에 의해 어떤 자극을 받았고 어떻게 재설정되었는가를 강조한다.
루터의 의인 경험이 언제 있었느냐는 연대에 대한 논의로부터 학자들은 1509~21년 루터의 사상적 발전이 얼마나 중요한가와 이 기간중 그의 신학 용어들과 신학의 범주들이 끊임없이 발전했다는 사실을 밝혀내게 되었다.
확실히 루터의 방대한 〈시편 강의록〉(1516~17)·〈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강의록〉(1515~16)·〈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강의록〉(1516~17)·〈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 강의록〉(1517~18)은 루터 사상이 끊임없이 풍부해지고 성숙해졌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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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M찬양 [강중현] 믿음으로 살리라 Produced by 이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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