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에서 실습을 하며 제일 크게 느낀 서글픔이라 하면 이들에겐 두런두런 얘기나눌 상대가 없다는 것. 그래서 작은 침대에 눕거나 그자리에서 밥먹고 재미도 없는 TV를 보고 저녁이면 잠드는 것이 남은 생의 전부라는 게 너무도 짠한 것이다. 요양보호사가 워낙 바쁘게 오가고 있어 그런 사람에게 바깥바람 쐬고 싶으니 휠체어에 앉혀 강당으로 데려다달라는 말을 꺼내지도 못한다고 오늘 친해진 재연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정말 그 방 담당자인 요양보호사는 할머니를 거칠게 잡아당겨 휠체어에 앉히고는 나보고 모시고 가라며 등떠밀다시피 우릴 내보냈다. 참으로 가관이구나.. 할머니는 누구에게 아쉬운 소리도 하기 싫고 짐되기 싫어 누가 선뜻 모시고 나가지 않으면 몇날 며칠 방안에만 계실 분이었다. 재연할머니를 모시고 나와서는 나는 한시간 넘게 할머니랑 얘길 나누었다. 할머니가 아실 유행가도 부르고 서로 살아온 얘기도 나누며 할머니는 한껏 웃으셨다. 할머니는 치매치고는 경증이라 인지가 좋으셔서 대화하기엔 전혀 무리가 없었다.
이번주에 계속 올거니까 제가 어머니 담당해서 모시고나와 산책하고 말벗 해드릴게요..괜찮으세요?
재연할머니는 독실한 불교신자이신데 오늘 이렇게 좋은 선생님을 만나 바깥으로도 나오고 얘기도 나눠서 너무 감사하다고 부처님이 좋은 사람 보내주셨다고 나는 딸이 또 생겼네! 하며 좋아하셨다. 내 엄마같으신 분들.. 그래서 어르신보다 어머니가 먼저 튀어나오니 자연스레 딸이라고 불러주셨다.
누군가와 자분자분 얘기나누며 코스모스길을 걸으면 좋겠다는 그 할머니의 소원이 이뤄지려면 앞으로 몇 달은 더 지나야 할텐데. 자식들도 자주 오지는 않는 것 같고 하기사 나역시 아빠를 요양원에 맡기고는 코로나때문에 면회도 막혔던 날들이었다.
결국 우리의 훗날 모습이려니. 너무 오래 살아서 안될 일이라는 그분들께 그래도 더 사셔야 한다는 말도, 이젠 가셔도 된다는 말도 그어느쪽도 못할 말이어서 듣고만 있었다. 그저 내 할 일 열심히 해가며 우리 엄마나 잘 모셔야지.. 쓸쓸하게 가신 아빠에게 미안해서라도 엄마 가실때만큼은 내가 꼭 지켜드려 외롭지않게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