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극에서 이방원이 1차왕자의 난 거사를 일으킨 내용들을 보면 사병들을 숨겨놓았다라거나 처가 민씨등에서 물적인적 도움을 주었다라던가 하는 식의 묘사가 전부이다 시피하는데 과연 고작 그정도 가지고 거사가 성공할수 있슬까요?
이방원이 거사를 일으킨것에 대해서는 이방원자신이 개인적으로 준비한 무력수단위주만으로 설명할수 없는 요인들을 설명해야 할것입니다.
그 중요배경을 언급한다면 정도전일파의 지지기반동요 및 구 고려유신세력들의 지지획득입니다.
이 두가지는 서로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습니다.
우선 정도전은 말기에 들어서 요동정벌준비로 인한 사병혁파회수등으로 왕자들 및 권문세가들로부터 많은 반발을 얻게됩니다.
그리고 여러 독단적인 정책을 남발함으로써 그에 반발하는 목소리들이 날로 늘어나게 되죠.
대표적으로 정도전과 조준간의 갈등을 들수 있습니다.
정도전은 태조로부터는 지지를 받지만 아마도 그 나머지 다른 관료세력들로부터는 대체적으로 비난을 받거나 심하면 적으로 돌려버린 형국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요동정벌추진 및 이방석을 세자로 옹립하는등 여러 무리수와 반발이 일어날만한 행보를 보임으로써 구 고려유신세력들은 물론 같은 개국세력인 조준과도 척을 지는 상황에 몰려버립니다.
이런 상황에서 분명 이방원은 정도전을 제거하는 거사를 행하는데 정도전의 비판하고 반대하는 세력들의 지지를 얻는것이 중요할수밖에 없습니다.
단지 가지고 있는 사병얼마정도가지고 거사가 성공할리는 넌센스이죠.
그렇기에 처가 민씨집안외에도 개국세력중에서 정도전과 척을 진 세력 및 구 고려유신세력들을 규합하는데 성공하였기에 거사 가능했다라고 보는 것이 합당할것입니다.
만일 정도전이 조준과도 척을 지지않고 요동정벌준비등 여러반발을 감당해야 하는 무리수를 벌이지 않았다면 이방원이 쉽게 거사를 생각할수 없게 됩니다.
첫댓글 이방원이 거사할수 있던 것에 그런 국내정치적 요인도 작용했지만 그러나 대외적으로 명나라라는 거대 요인이 이방원의 거사에 원동력을 제공해주었지요 이방원은 명에 사신으로 갔다오고 명나라 권력층들과 친분을 맺어 사대 국가내에서의 정치적 입지를 확실하게 다질수가 있었고 명나라 사신들이 조선에 방문할때마다 이방원의 집에 들을 정도이지요 정도전의 요동정벌계획으로 명과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해도 지배층내에 친명 세력들이 많아서
이방원의 쿠데타에 명의 존재가 큰 영향을 끼쳤다고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방원 세력이 편찬한 태조실록에서 이방원의 거사 고의성을 축소시키기 위해 준비된 사병 수와 무장상태를 축소 부각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방원의 친형제들인 방간 방의도 자기들 사병 가지고 동생에게 연합하여 그로 인해 거대 규모의 쿠데타군을 형성했던 것이지요 이방원의 매형 이저와 그의 부친 이거이도 사병을 거느리고 이방원에 내응했고
물론 사병만을 가지고 거사에 성공할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군사병권분야에 세력들을 포섭한것이 결정적인 힘입니다. 헌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군사병권분야에서도 정도전에 대한 지지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그틈을 이방원이 이용한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