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핸 11월에 폭설이 낼리더니, 지금 3월 중순에 눈이다. 요동치고 있는것은 세상만이 아닌가보다. 참 난리도 아닌 난리를 나도 격고있으니 말이다. 집 수리가 그냥 단순히 도배장판은 아닐거라 짐작했지만, 쉽게 끝나지 않으려나보다. 내가 집을 비우고 잠잘곳을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10여년전엔 아이들이 어렸으니까 그 핑개로 아들집에서 몇주인가를 보냈다. 지금은 상황이 더 많이 달라지기도 했고, 그 불편을 다시 격고 싶지는 않으니 참 난감하다. 아니, 이집에서 잠잘곳 하나쯤은 마련할수 있지않을까 싶기도 해서 미리 걱정 안하련다. 밖에 눈이 내리고 있다. 춘삼월에 눈이라? 땅에 내린 눈은 곧 녹아지고, 전선줄에 내린 눈만 쌓이고 있다. 아직 겨울이 물러난게 아니었나. 그래서 그리 춥게 느껴졌나. 나만 추울까, 아님 다른 사람들도 추울까. 어제, 딸과 얘기중에 이런 고백을 했다. "나는 내가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집이나마 집이 있고, 옷도 쌓여있고, 통장에 돈도 들어있고.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나보다 더 가난해보이는 사람은 없어보인다. 그럼 내가 가난한게 맞는데, 나는 가난한게 아니거던? 도대체 누가 가난한거야?" 그랬다. 사실 내가 궁금하게 생각하는 문제다. 노인 빈곤 문제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셋중 하나가 극빈층이라고 했다. 공짜로 밥을 주는 곳은 어디나 길게 줄이 늘어서 있는것도 사실이다. 나는 아들 딸 덕분에 비교적 여유가 있는게 사실이다. 아니, 인색하고, 지지궁상인것도 사실이다. 어디 후원하라는 소리엔 귀닫고 산다. 입에 풀칠하는 정도로 소비를 할뿐이니 내가 제대로 삶을 살아간다고 할수도 없다. 이렇게 사는 사람이 나 뿐일까. 살아있는 사람의 삶이라고 할수는 있고?
눈이 온다. 어쩌면 마즈막 눈을 보고 있는 것일수도 있다. 다음 눈이 올때까지 살아있으리란 법은 없으니까. 아니, 앞으로도 열번넘게 겨울을 맞이할수 있고? 재앙이 멀리만 있는것은 아니다. 일상에서 벗어나는게 재앙이다. 무탈한 하루가 기적이고 감사인것도 알고있다. 많은 사람들이 좌 우로 갈려서 분쟁중이다. 사는게 힘들고 지처서 뭐가 옳은지도 분별할수 없는 세상을 꾸역꾸역 살아가는 민초들을 불쌍히 여겨주시옵길! 사실 선과 악이 불분명하다. 절대악도 절대 선도 없는것은 아닐까. 어제는 옳고 오늘은 틀리다는 말이 말장난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흘들리지 않았던가. 정의 와 불의는 상대적이니까 이해하기가 어렵다. 오늘하루도 맨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리며 하루를 버티고 있는 사람들에게 행운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행운은 늘 있어왔다. 다만 그것을 행운으로 여기지 않았을뿐이다. 내가 바라는것이 옳바른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더 그렇다. 깜량이 안되는 행운은 재앙인것도 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절대 실수가 없으시다는 것도. 그런대도 왜 내가 원하는 것들에 집착하는 것인지, 헌옷 하나도 버리지 못하는 내 집착이야말로 병인가. 주님 용서하여주시옵소서. 어리섞은 죄인이라 아는게 없어서 그렇습니다. 불쌍히 여겨주시면 좋겠습니다. 형통의 복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