定宗文明大王
金宗瑞外 28人
諱堯요 字義天이니 太祖第二子라 母는 神明王后劉氏이며 太祖六年癸未生이라 性好佛하고 多畏하며 信圖讖이라 在位四年이요 壽二十七이라
휘(諱)는 요(堯)요, 자(字)는 의천(義天)이니, 태조의 둘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신명왕후(神明王后) 유씨(劉氏)이며, 태조 6년 계미(923)에 태어났다. 천성이 불교를 좋아하고 두려움이 많았으며 도참(圖讖)을 믿었다. 왕위에 있은 지는 4년이요, 수(壽)는 27세였다.
丙午(元年 946秊)
<後晉 開運三年이요 契丹 會同九年이라>
○ 春正月에 王ㅣ 將謁顯陵하여 致齋之夕에 聞空中語한데 若曰 爾堯야 存恤細民은 人君之要務니라
○ 봄 정월에 왕이 현릉(顯陵)에 성묘를 하려고 저녁에 재계를 하고 있었는데, 공중에서, “너 요야, 백성을 불쌍히 여겨 구휼하는 일이 임금의 중요한 임무니라." 하는 말이 들렸다.
○ 是歲에 天鼔鳴하여 赦하다
○ 이해에 천둥이 치자 사면령을 내렸다.
○ 王이 備儀仗하고 奉佛舍利하여 步至十里所開國寺하여 安焉하다 又以穀七萬碩을 納諸大寺院하고 各置佛名經寶及廣學寶하여 以勸學法者하다
○ 왕이 의장을 갖추고 부처의 사리(舍利)를 받들어 10리나 떨어진 개국사(開國寺)까지 걸어가서 모셨다. 또 곡식 7만 석을 여러 큰 사원(寺院)에 바치고 각기 불명경보(佛名經寶)와 광학보(廣學寶)를 설치하여 불법을 배우는 사람에게 권장하였다.
* 불명경보(佛名經寶): 고려시대, 불법(佛法)을 가르치기 위하여 두었던 일종의 장학 재단(奬學財團)의 하나.
丁未(二年 947秊)
<後漢 高祖 稱天福十二年이요 遼世 宗天祿元年이라>
○ 春에 遣大匡朴守文하여 城德昌鎭하다 又築西京王城及鐵甕(咸南 永興)․博陵(平北 博川)․三陟․通德(平南 順川)等城하다
○ 봄에 대광(大匡) 박수문(朴守文)을 보내어 덕창진(德昌鎭)에 성을 쌓았다. 또 서경의 왕성(王城)과 철옹(鐵甕 함남 영흥(永興))ㆍ박릉(博陵 평북 박천(博川))ㆍ삼척(三陟)ㆍ통덕(通德 평남 순천(順川)) 등의 성을 쌓았다.
○ 秋遣大匡朴守卿하여 城德成鎭하다
○ 가을에 대광 박수경(朴守卿)을 보내어 덕성진(德成鎭)에 성을 쌓았다.
○ 置光軍司하다 先是에 崔彥撝子光胤이 以賓貢進士로 遊學入晉이라가 爲契丹所虜한데 以才見用하여 受官爵하다 奉使龜城한데 知契丹將侵我하고 爲書以報하다 於是에 命有司하여 選軍三十萬하고 號光軍하다
○ 광군사(光軍司)를 설치하였다. 이보다 앞서 최언위(崔彦撝)의 아들 광윤(光胤)이 빈공진사(賓貢進士)로 유학하여 후진에 들어가다가 거란에게 사로잡혔는데, 재주가 뛰어난 이유로 임용되어 관작을 받았다. 거란의 사신으로 귀성(龜城)에 왔는데, 거란이 장차 우리나라를 침략할 줄 알고 서신으로 보고하였다. 이에 유사에게 군사 30만 명을 뽑도록 명하여 광군(光軍)이라 하였다.
* 광군사(光軍司): 고려(高麗) 정종(定宗) 2년(947)에 거란의 침입(侵入)에 대비(對備)하기 위(爲)하여 조직(組織)한 농민(農民) 예비군(豫備軍). 30만의 군대(軍隊)를 광군사(光軍司)에 두었는데 거란에 붙잡혀 갔다가 돌아온 최광윤(崔光胤)이 임금에게 아뢰어 창설(創設)하였다.
* 빈공진사(賓貢進士): 외국에서 선비를 천거하여 중국에 보내 진사(進士)가 된 것을 빈공진사(賓貢進士)라 한다.
戊申(三年 948秊)
<後漢 隱帝 乾祐元年, 遼 天祿二年>
○ 秋九月에 東女眞蘇無蓋等이 來獻馬七百匹及方物하니 王이 御天德殿하여 受之에 忽雷雨러니 震押物人하고 又震殿西角이라 王이 大驚하니 近臣이 扶入重光殿한데 遂不豫하니 赦하다
○ 가을 9월에 동여진(東女眞)의 소무개(蘇無盖) 등이 와서 말 7백 필과 토산물을 바치니, 왕이 천덕전(天德殿)에 거둥하여 이것을 받는데, 갑자기 천둥이 치고 비가 오더니 물건 가지고 온 사람에게 벼락이 치고 또 전(殿) 서쪽 모퉁이에 벼락이 쳤다. 왕이 크게 놀라니 근신이 왕을 부축하여 중광전(重光殿)으로 들어갔는데 마침내 병환이 나자, 사면령을 내렸다.
* 압물(押物): 외국(外國)에 사신(使臣)이 갈 때 수행(遂行)하던 관원(官員). 조공(朝貢)하는 물건(物件)과 교역(交易)하는 물건(物件) 등(等)을 관리(管理)하던 책임자(責任者)임.
* 불예(不豫): ①임금이나 왕비(王妃)가 편치 않거나 죽음. ②기쁘지 않음.
○ 始行後漢年號하다
○ 비로소 후한(後漢)의 연호를 시행하였다.
己酉(四年 949秊)
<後漢 乾祐二年, 遼 天椽 三年>
○ 春正月에 大匡王式廉이 卒하다 式廉은 太祖從弟也라 以勤恪으로 久鎭西京한데 及定王規之亂에 賜匡國翊贊功臣號하고 加大丞이라 卒에 諡威靜하고 贈太師하고 後에 配享王廟하다
○ 봄 정월에 대광 왕식렴(王式廉)이 졸하였다. 식렴은 태조의 종제(從弟)이다. 부지런하고 신중하게 오랫동안 서경을 지켰는데 왕규(王規)의 난을 평정하자, 광국익찬공신(匡國翊贊功臣)의 칭호를 내려주고 대승(大丞)으로 올렸다. 그가 졸하자, 위정(威靜)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태사(太師)를 증직하고, 후에 왕의 廟에 배향되었다.
○ 三月丙辰에 王이 疾篤하니 召母弟昭하여 內禪하고 移御帝釋院하여 薨하다 上諡曰文明하고 廟號定宗하며 葬安陵(京畿道 開城)하다
○ 3월 병진에 왕의 병환이 위독하자, 동모제(同母弟) 소(昭)를 불러 선양(禪讓)하고, 제석원(帝釋院)으로 옮겨 가서 훙하였다. 문명(文明)이라는 시호를 올리고, 묘호(廟號)를 정종(定宗)이라 하며, 안릉(安陵 경기 개성(開城))에 장사지냈다.
初以圖讖하여 將移都西京하여 發丁夫하고 命侍中權直하여 營宮闕하니 勞役不息이라 又抽開京民戶하여 以實之하니 群情不服하여 怨讟胥興이라 及薨에 役夫ㅣ 聞而喜躍하다
예전에 도참(圖讖)을 믿어서 서경으로 도읍을 옮기고자 장정을 징발하고 시중(侍中) 권직(權直)에게 명하여 궁궐을 경영하게 하니, 노역이 끊이지 않았다. 또 개경의 민가를 뽑아 서경에 채우니, 사람들이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아 원망이 일어났다. 왕이 훙하니, 역부들이 듣고 뛸듯이 기뻐하였다.
李齊賢 贊曰 定宗이 以人君之尊으로 步至十里浮屠之宮하여 以藏舍利하고 又以七萬碩穀을 一日而分賜諸僧한데 一遭天譴에 喪心生疾하니 所謂君子는 求福不回者를 亦嘗聞其說耶아 疾旣大漸에 能以宗社를 付之親弟하여 不使如王規者ㅣ 覬覦於其間하니 是可嘉也已라
이제현이 찬하기를, “정종이 존귀한 왕의 신분으로 10리나 떨어진 사원까지 걸어가서 부처의 사리를 봉안하고, 또 7만 석의 곡식을 하루 만에 여러 중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한 번 하늘의 견책을 받자 정신을 잃고 병환이 났으니, 이른바 '군자는 간사한 짓으로 복을 구하지 않는다.'는 옛글을 일찍이 들은 적이 없었던가. 그러나 병이 이미 위독해지자, 종묘사직을 친아우에게 맡겨서 왕규 같은 자에게 그 사이를 엿보지 못하게 하였으니, 이 일은 칭찬할 만하다." 하였다.
*구복불회(求福不回): 福을 구하는 데 道理에 어긋난 짓을 하지 아니함. <出典 詩經>
* 기유(覬覦): 분수(分數)에 넘치게 야심(野心)을 품고 기회(機會)를 노림.
○ 秋八月에 命大匡朴守卿等하여 攷定國初有功役者하여 賜米有差하고 以爲例食하다
○ 가을 8월에 대광(大匡) 박수경(朴守卿) 등에게 명하여, 나라를 안정시키는 초기에 공로가 있는 사람을 가려서 차등 있게 쌀을 내려주게 하고, 이를 예식(例食)으로 삼았다.
* 예식(例食): 나라에서 정례(定例)에 따라 주는 곡식.
○ 命元甫式會와 元尹信康等하여 定州縣歲貢之額하다<高麗史節要>
○ 원보(元甫) 식회(式會)와 원윤(元尹) 신강(信康) 등에게 명하여 주ㆍ현의 세공(歲貢)의 액수를 정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