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없는 기층민들을 위한 그로테스크한 노래 중국의 현대 소설가 위화는 두 장편 <허삼관 매혈기>와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단편집 <내게는 이름이 없다>와 중편집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를 통해 국내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살아간다는 것>이 장이무 감독의 영화 <인생>의 원작이라고 말하면 새삼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위화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중국 사회의 이름없는 기층민들이다. <허삼관 매혈기>의 허삼관은 삶의 중요한 국면마다 피를 팔아서 대처해 온 무능력한 인간이다. <살아간다는 것>의 주인공 복귀 노인 역시 몰락 지주에서 농민으로 다시 태어나는 인물이다. 중단편의 주인공들 역시 사회·경제적 지위에 있어서는 대동소이하다. 위화는 이들의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안쓰러운 삶의 이모저모를 때로는 어둡고 심각하게, 때로는 그로테스크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려 보인다.
가령, 그의 초기 단편인 <18세에 집을 나서 먼 길을 가다>의 주인공은 세상 공부 삼아 나선 방랑길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흠씬 두들겨맞고 가방까지 빼앗긴다. <왜 음악이 없는 걸까>에는 제 친구와 놀아난 아내의 '몰래 카메라' 비디오를 보면서 이런 종류의 비디오에는 왜 음악이 없는 걸까, 궁금해하는 사내가 나온다. 또 <내게는 이름이 없다>의 주인공은 단 한 번 제 이름을 불러 준 동네 건달들에게 식구와도 같은 개를 식용으로 내 준다. 그런가 하면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에 실린 네 개의 중편을 특징짓는 것은 피와 폭력과 죽음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중국의 현대사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폭력과 억압의 경험을 환기시키려는 것 같다.
표면적으로 암울하고 무시무시한 상황을 다루고 있음에도 위화의 소설에서는 웃음과 여유가 떠나지 않는다. 좁게는 중국의 민중에 대한, 넓게는 인간 자체에 대한 궁극적인 믿음이 그런 여유를 가능케 했을 것이다. 형식적으로 위화의 소설은 중국의 전통적인 소설 양식과 서구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삼되, 남미의 마술적 리얼리즘, 미니멀리즘, 야담류의 무협소설 등 다양한 형식 실험을 가미하고 있다. 이는 대상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함께 아직 40대 초인 작가의 문학적 갱신을 위한 싸움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최재봉/ 한겨레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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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 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