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날이 밝았고, 반쯤은 깨어있었으니 꿈은 아니지 싶긴하다. 그런데도, 화들짝 놀라 깨었으니 꿈이 맞나. 작은 어머니로 생각되는 분의 전화였는데, 위급한 뉴앙스였다. 알았다고, 곧 병원으로 가겠다고, 그러면서 깼는데, 병원이름도 묻지않았어도 상황을 이미 이해하고 있는듯 했다. 깨고서 다시 생각해보니, 나를 병원으로 부를만한 위급한 대상이 누굴까 싶었다. 특히나 작은어머니 전화는 생소한것 아닌가. 가실분들은 이미 다 가셨고, 내가 달려갈 대상은 없다. 친족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80이 다된 내가 뛰고 달리고 할 여지는 이미 없다는 말이다. 황급하다고 해봐야 내가 할수있는 일도 없게된, 뒷방노인이다. 약소한 금일봉이 전부다. 좀 넉넉하게 봉투를 채울수 없다는 것도 내가 마음이 무거운 이유다. 이런때 두둑한 금일봉을 내밀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다. 내가 하고싶은 못한일이 그것 아닌가 싶다. tv를 틀면 나오는게 '성금' '후원금' 얘기다. 아무리 지나처도 모자란다는 얘기지만 솔직히 지나치다 싶게 많이 나온다. 그렇게 많이 나오는데도 꿈적도 안하는게 나란 인간이다. 내가 낸 단돈 만원이 고스란히 전달될수 없다는 얘기가 마음을 굳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이해는 한다. 온갖 경비가 발생하고, 그 경비를 재외한 나머니 전부라니 "전부"의 개념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이해는 하면서도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온갖 경비"가 자원봉사여야 한다는, 혹은 그러길 바라는 억지 아닌 억지가 있어온 것이다. 나는, 많은 사회봉사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들이 액면그대로 "봉사"로 알았다. 그런 직업군에서 일하는 직장이란 것을 몰랐다. 내가 맹한것인지, 착각인지는 누가 알겠는가. 그 프레임을 이용하여 누군가는 많은 이익을 챙기고 국회의원까지 되었다. 이런 사회면 "봉사"란 허울을 벗어내야 하는것 아닌가. 아니, 다들 알고있는 사실을 나만 몰랐다면 뭐 물정 어두운 내탓이다.
오늘은 금요 시니어 예배가 열리는 날이다. 다들 그만그만한 나이의 노인들이다. 그러니 움추릴 필요까지는 없다. 온세상이 노인들 투성인데, 나 한사람 보태나 빼나 달라질것도 없다. 밥 먹고 수다도 필요하고, 또 뭐더라. 신앙심 같은것은 어떨까. 믿음없는 자 같이되지 말고 믿음을 갖으라란다. 내 믿음은 얼마끔일까. 새끼 다슬기 등껍질에 담길만끔은 될까. 부끄럽고 초라한 내 행색만끔이나 보잘것 없음에도 사랑하신다고 한다. 행복하길 바라신단다. 그 은혜에 감사하면서도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 못하고 늘 맴을 돈다. 다른 무엇을 찾아 눈을 휘번덕이고 있다. 그래서 더욱 행복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불쌍한 인생이다. 그럼에도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기다려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예수 이름을 부르는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