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청 실가리 / 강형철
목이 잘린 채
축 늘어진 머리카락으로
빨랫줄에 걸려 있다 //
언제쯤에나
시린 세상 풀어헤치고
보글보글 거품 게워내며 끓어오를까
새벽 인력시장 꽁탕 치고 돌아앉은
다리 밑 식객들의
허기진 창자에 몸 풀까
무말랭이 / 안도현
외할머니가 살점을 납작납작하게 썰어 말리고 있다
내 입에 넣어 씹어 먹기 좋을 만큼 가지런해서 슬프다
가을볕이 살점 위에 감미료를 편편 뿌리고 있다
몸에 남은 물기를 꼭 짜버리고
이레 만에 외할머니는 꼬들꼬들해졌다 //
그해 가을 나는 외갓집 고방에서 귀뚜라미가 되어 글썽글썽 울었다
병어회와 깻잎 / 안도현
군산 째보선창 선술집에서 막걸리 한 주전자 시켰더니 병어회가 안주로 나왔다
그 꼬순 것을 깻잎에 싸서 먹으려는데 주모가 손사래치며 달려왔다
병어회 먹을 때는 꼭 깻잎을 뒤집어 싸 먹어야 한다고, 그래야 입 안이 까끌거리지 않는다고
민어회 / 안도현
집에서 멀리 나가 혼자 어둑하게 누워 있고 싶을 때가 있다
당신은 나를 찾아 눈에 불을 켜고 밤 등대처럼 울지 모르겠으나, 나는//
곧장 목포 유달산 밑으로 가서 영란횟집 계산대 앞에 민어 한 마리로
~누워 있겠다
벗겨 손질한 껍질 옆에다 소금 종지를 두고 내장을 냄비에 끓여
~미나리도 반드시 몇 가닥 얹겠다
혹여 전화하지 마라 올 테면 연분홍 살을 뜨는 칼처럼 오라 //
바다의 무릉도원에서 딴 복사꽃을 살의 갈피마다 켜켜이 끼워둘 것이니
때로 살다가 저며내고 발라내야 할 것들 때문에 뼈는 아리지 그래도
~오로지 뼈만이 폭풍 속에 화석을 새겨넣지
그러므로 당신은 울지 마라 소주병처럼 속을 다 비워낸 뒤에야
~바닷가 언덕에 서서 호이호이 울어라
통영 서호시장 시락국 / 안도현
새벽 서호시장 도라무통에 피는 불꽃이 왁자하였다
어둑어둑한 등으로 불을 쬐는 붉고 튼 손들이 왁자하였다
숭어를 숭숭 썰어 파는 도마의 비린내가 왁자하였다
국물이 끓어넘쳐도 모르는 시락국집 눈먼 솥이 왁자하였다
시락국을 훌훌 떠먹는 오목한 입들이 왁자하였다
시래기 / 도종환
저것은 맨 처음 어둔 땅을 뚫고 나온 잎들이다
아직 씨앗인 몸을 푸른 싹으로 바꾼 것도 저들이고
가장 바깥에 서서 흙먼지 폭우를 견디며
몸을 열 배 스무 배로 키운 것도 저들이다
더 깨끗하고 고운 잎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
가장 오래 세찬 바람 맞으며 하루하루 낡아간 것도
저들이고 마침내 사람들이 고갱이만을 택하고 난 뒤
제일 먼저 버림받은 것도 저들이다
그나마 오래오래 푸르른 날들을 지켜온 저들을
기억하는 손에 의해 거두어져 겨울을 나다가
사람들의 까다로운 입맛도 바닥나고 취향도 곤궁해졌을 때
잠시 옛날을 기억하게 할 짧은 허기를 메우기 위해
서리에 젖고 눈 맞아가며 견디고 있는 마지막 저 헌신
곶감 / 김용덕
지리산 산청 골짜기
껍질 벗고 살결 마주치는 바람에
몸 속 물기 다 빼주고
씨앗 몇 개 품었다
여물지 못한 꿈
그리움으로 쪼그라드는 시간
시린 시간들 모여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전래 동화 속 주인공 되는가
잘못 길들여진 햇살에 검버섯도 피우지만
뽀얀 분이 단맛으로 필 때까지
첫 알몸의 전설을 추억한다
청국장 / 이정록
영덕식당 아주머니가
청국장 백반을 이고 온다
신문지 한가운데 둥근 투가리에서
김이 폴폴 오르고, 그걸 맛보겠다고
하느님이 눈발이 되어 뛰어내린다
하느님도 무게가 제법인지
아주머니가 허리를 펴고 멈춰 선다
여관 신축공사장 삼층으로 오르면
눈발 하느님은 국물도 없을 것이다
시멘트 범벅인 장화 하느님들이
단체손님을 받을 제일 큰방에서
신문지를 확 걷어치울 것이기 때문이다
삽 자루나 질통에 이마를 부딪힌 채
선배님들의 입 속으로 후룩후룩 넘어가는
청국장을 아름다이 바라볼 것이다
그들 가운데 젊은 운동화가
컵라면 빈 그릇에 남은 반찬을 쓸어 담아
소주 됫병 옆에 밀어놓는다
저걸 한 모금 들이켰으면 좋겠다고
눈발 하느님이 몸서리를 치자
크윽, 눈길도 없이 녹아버린다
대추 한 알 / 이정록
대추 한 알이 숙취의 이마를 때린다
때밀이에게 몸을 맡긴 게 그리도 잘못이냐
비틀거리는 헛발질로 대추나무를 찬다
오죽하면 젊은것이 남에게 몸을 맡겼겠냐 떫은 눈 치뜬다
성글다 해거리 중이다 대추 한 알도 아까웠겠다
때리는 마음이 더 아팠던 것일까 내 이마를 쥐어박은
대추알이 쪼글쪼글하다 로또복권에 노래방도우미에
나를 벌주려면 가지에 껴있는 돌덩이를 내려뜨렸을 것인데
병 문안이나 조문 가는 다급한 벌레라도 있었던 걸일까
그래서 바닥을 딛기 전에 충격을 덜어놓은 게 아닐까
아니면 내 이마를 祭器삼아 진설이라도 하려했던 것일까
해거리 중인 나무는 하늘이 그득하다 다음 해
가을까지 건너뛰려니 나이테도 짱짱하리라
반생 내내 해거리 중인 내 머리통이 시도 때도 없이
아픈 이유를 알겠다 세상 고통의 작은 정류소가 되어라
주름 많은 대추 한 알이 마개 풀린 술통의
이마를 쳤다 가을하늘이 깊고 팽팽했다
감귤 / 채호기
가지에 달린 노란 감귤
동그랗게 뭔가를 포옹하고 있는
오돌도돌한 감귤 껍질
누군가 껍질을 까면
시고 달착지근한 말랑말랑한 것
실핏줄이 도드라져 보이는 작은 심장
먹을 수 없어서 망설입니다
살아서 두근거리는 연약한 것
동그랗게 뭔가를 포옹하고 있는 것들
가지에 달린 노란 감귤
황태 / 박기동
이번 생이 다할 때까지
얼마나 더
내 몸을 비워야 할까
내 고향은 늘 푸른 동해
그리워 마지못해
내설악 얼음물에도
다시 몸을 담근다
그리워 마지못해
내설악 칼바람에도
다시 내 몸을 늘인다
이번 생을 마칠 때까지
얼마나 더 //
내 몸을 비워야 할까
상추쌈 / 홍성란
일 놓은 서울셋방 예순아홉 아버지는
산골 초막에서 황혼을 보내셨죠
이레 해 가난한 텃밭 푸성귀를 기르셨죠 //
펌프가 있는 마당가 고추 부추도 심고
바쁜 딸 오면 어머니와 열무김치도 담그고
상추도 어린 고추도 한 바구니씩 따 주셨죠 //
"이것 좀 먹어봐" 평상에 둘러 앉아
강된장에 고기 한 점 밥 한술에 풋고추 한 입
두 볼이 미어지도록 상추쌈을 싸주셨죠 //
달보드레 감치는 아버지 그 상추쌈은
이제 어디 가도 먹을 수 없지만요
마지막 상추 따던 웃음소리 환히 남아 있어요
상추쌈 / 유득공
밥숟갈 크기는 입 벌릴 만큼 상추 잎 크기는 손 안에 맞춰
쌈장에다 생선회도 곁들여 얹고 부추에다 하얀 파도 섞어 싼 쌈이
오므린 모양새는 꽃봉오리요 주름 잡힌 모양은 피지 않은 연꽃 //
손에 쥐여 있을 때는 주머니더니 입에 넣고 먹으려니 북 모양일세
사근사근 맛있게도 씹히는 소리 침에 젖어 위 속에서 잘도 삭겠네
북두칠성 / 송수권
이게, 얼마만이냐
다리와 다리가 만나는 슬픈 가족사(家族史)의 밤
암으로 죽어가면서 암인 줄도 모르면서
마른 복국이 먹고 싶다는 아버지 부름 따라
옛집에 오니 밤개는 컹컹 짖어
약속이나 한 듯이 또 흰 눈은 퍼부어
우리 부자 복국 끓여먹고
통시길에 나와보니
옛날의 국자 같은 북두칠성이 또렷했다
구주탄광, 아이모리형무소, 휴전선이 떠오르고
도란도란 밤 깊어 무심히 아버지 다리에
내 다리 얹었다
70년 황야를 걸어온 다리
삭정이 다 된 다리
어금니 악물고 등 돌려 흐느꼈다
봄날 -주꾸미회 /송수권
앵두꽃이 피었다 일러라 살구꽃이 피었다 일러라
또 복사꽃도 피었다 일러라
할머니 마루 끝에 나앉아 무연히 앞산을 보신다
등이 간지러운지 자꾸만 등을 긁으신다
올해는 철이 일들었나 보다라고 말하는 사이
그 앞산에도 진달래꽃 분홍 불이 붙었다 //
앞대 개포가에선 또 나즉한 뱃고동이 운다
집집마다 부뚜막엔선 왱병*이 울고 야야, 주꾸미
배가 들었구나, 할머니 쩝쩝 입맛을 다신다
빙초산 맛이 입에 들척지근하고 새콤한 것이
달기가 햇뻐꾸기 소리 같다 //
아버지 주꾸미 한 뭇을 사오셨다 어머니 고추장
된장을 버무려 또 부뚜막의 왱병을 기울이신다
주꾸미 대가리 씹을 때마다 톡톡 알이 터지면서
아삭아삭 씹히는 맛, 아버지 하신 말씀
니 할매는 이 맛을 두고 어찌 갔을거나 //
환장한 환장한 봄날이었다
집집마다 부뚜막에선 왱병이 오도방정을 떨고
앞대 개포가에선
또 나즉한 뱃고동이 울었다
*왱병 : 가전 비법으로 전해 오는 식초병
주꾸미 / 한승원
세상에서 제일 미련한 것은 주꾸미들이다
소라껍질에 끈 달아 제 놈 잡으려고
바다 밑에 놓아두면 자기들
알 낳으면서 살라고 그런 줄 알고
태평스럽게 들어가 있다
어부가 껍질을 들어올려도 도망치지 않는다
파도가 말했다
주꾸미보다 더 민망스런 족속들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만든 소라고둥 껍질 속에 들어앉은 채 누군가에게
자기들을 하늘나라로 극락으로 데려다 달라고 빈다
주꾸미 / 함민복
뱃전에 서서 뿌려 두었던
빈 소라 껍질 매단 줄을 당긴다 //
먹이로 속이는 낚시가 아닌
길을 가로막는 그물이 아닌
알 깔 집으로 유인한 //
주꾸미들 줄줄이 딸려 올라온다
머리 쪽으로 말아 올린 다리들 흡반에
납작한 돌 조개껍질 나무말뚝 껍질로
대문 닫아 건 채
물밑 바닥이 뻘이라 아직 대문 못해 건 놈은
올라오다 떨어지기도 하며 //
뭐야, 또 두 마리!
먼저 든 놈 대문 완벽하여
문이 벽이 되어
겹대문
겹죽음일세 //
뱃전에 서서 빈 소라 껍질 매단 줄을 당기면
배가 흔들리고
길에 매달린 집들이 흔들린다
청국장 / 권오범
아메리칸 블랙포스트로
생쥐볼가심 하고
점심은 자장면 아니면 수제비 냉면
가루붙이로 연명하는 혼잣손 //
그러다 노을이 잔인하게 들떼리면
알코올 수혈해 달래야 하는 삶
공복이 발걸음 재촉하던 달동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
소꿉장난같이 꿈을 키우던 부엌
19공탄 깔고 앉아 자지러지던 뚝배기
겸상 가운데 돗자리 꽃방석에 앉혀놓고
총각김치 경쾌하게 깨물던 단칸방 //
그것이 행복이었던 것을
난기류에 밀려 변방 에돌다
빌딩 숲에 정박한 빛바랜 부평초
자글자글 진동하던 그 냄새가 마냥 그립다
삼계탕 / 권오범
수컷구실 한번 하지 못하도록
몽달귀로 낙인찍힌 것도 억울한데
턱없이 에누리당한 천명
얼굴마저 저당 잡힐 줄이야 //
머나먼 저승길 허기질세라
대추 밤 찹쌀 미리 얻어먹고
지옥 물에 목욕재개 하고나니
골수마저 녹아내려 흐물흐물해진 몸 //
인삼 하나 끌어안고
볼썽사납게 다리 꼬고 누워
누드 쇼는 하지만
버젓한 한류스타이기에 여한은 없다 //
젓가락으로 잔인하게 꼬집어도 좋으니
뼈 마디마디 깔끔하게 해탈시켜주길
우리 목숨 좌지우지 하는
저승사자인 인간들이여
국수 / 강대실
고향 찾아 갈 때는
관방제 초입 포장 친 집에 들러
국수 한 대접 하고 간다
처마 밑 비집고 들어서
틈서리 목로에 자리 잡고 앉으면
국수 한 그릇 꼬옥 먹고 잡더라만
그냥 왔다 시며
허리춤에 묻어 온 박하사탕
몰려 든 자식들에게 물리시던 어머니
흔흔한 미소 뒤에 갈앉힌
허기진 그 모습
원추리 새순처럼 솟아
국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배고픔 대신 채우고 간다
꽃밥 / 엄재국
꽃을 피워 밥을 합니다
아궁이에 불 지피는 할머니
마른 나무 목단, 작약이 핍니다
부지깽이에 할머니 눈 속에 홍매화 복사꽃 피었다 집니다
어느 마른 몸들이 밀어내는 힘이 저리도 뜨거울까요
만개한 꽃잎에 밥이 끓습니다
밥물이 넘쳐 또 이팝꽃 핍니다
안개꽃 자욱한 세상, 밥이 꽃을 피웁니다
멸치 / 김기택
굳어지기 전까지 저 딱딱한 것들은 물결이었다
파도와 해일이 쉬고 있는 바닷속
지느러미의 물결 사이에 끼어
유유히 흘러다니던 무수한 갈래의 길이었다
그물이 물결 속에서 멸치들을 떼어냈던 것이다
햇빛의 꼿꼿한 직선들 틈에 끼이자마자
부드러운 물결은 팔딱거리다 길을 잃었을 것이다
바람과 햇볕이 달라붙어 물기를 빨아들이는 동안
바다의 무늬는 뼈다귀처럼 남아
멸치의 등과 지느러미 위에서 딱딱하게 굳어갔던 것이다
모래더미처럼 길거리에 쌓이고
건어물집의 푸석한 공기에 풀리다가
기름에 튀겨지고 접시에 담겨졌던 것이다
지금 젓가락 끝에 깍두기처럼 딱딱하게 잡히는 이 멸치에는//
두껍고 뻣뻣한 공기를 뚫고 흘러가는
바다가 있다 그 바다에는 아직도
지느러미가 있고 지느러미를 흔드는 물결이 있다
이 작은 물결이
지금도 멸치의 몸통을 뒤틀고 있는 이 작은 무늬가
파도를 만들고 해일을 부르고
고깃배를 부수고 그물을 찢었던 것이다
성자(聖者)멸치 / 김윤희
어찌 녹슨 두 쪽 젓가락으로
식탁 위 멸치들을 하대하리
저 군산 대야도 앞바다에서
뱃전으로 올라오자마자 바로 끓는
무쇠 가마 속으로 던져져
열반한 세멸 동자들 //
투명한 몸속 화석 된 흑점 하나씩
부적처럼 그러안고 그까짓 마지막 관문 통과쯤은
자신만만하다
대체로 오므리고 죽어 누워
나의 미천한 집행 기다리고 있다 //
아무것도 모르고 처음 출가하던 저 바닷속
암자 용궁 그리 돌려보내 줄 유일한
길은 나의 속 등불 없는 깊은 터널 그 속으로
다시 한 번 밀어 넣어 잘근잘근 꼭꼭
짚어가며 모욕하는 일 //
다만 나로선 꼭 성불하라 빌어주는 그것만이
그중 축복이라 우기는 비겁, 그밖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 없다는 사실
나는 성자 멸치 우대하는 다만 한 가지
방법밖에 아는 게 없다
황포묵 / 송수권
오목대에서 나는 쥐눈콩이
전주 비빔밥을 만들었다지
그 비빔밥에 오늘은 황포묵이 먹고 싶다
변산반도 지척으로 눈도 퍼붓는데
계화장 지나 부안 김제 지나 전주 남문시장 밖
어느 허술한 집 상머리에 둘러앉아
그 비빔밥에 황포묵을 들고 싶다
따순 짐 나는 순대국도 한 그릇
치자물을 띄우면 황포묵, 그냥 두루치기면 녹두 청포묵
황포묵 청포묵 그 구수하고 텁수룩하고 못난 잔치 음식들
오늘은 변산반도 지척으로 눈이 쌓이는데
계화장터 지나, 부안장 지나 말목장터
그때 동학군 떨거지들 흰 옷에 털벙거지 한잔 술 곁들고
낯선 사람들끼리 쥐코 밥상머리 둘러앉아
함께 들었듯
그 구수한 황포묵을 들고 싶다
홍탁 / 송수권
지금은 목포 삼합을 남도 삼합이라고 부른다 //
두엄 속에 삭힌 홍어와 해묵은 배추김치
그리고 돼지고기 편육 //
여기에 탁배기 한 잔을 곁들면
홍탁 //
이른 봄 무논에 물넘듯
어, 칼칼한 황새 목에 술 들어가네 //
아그들아, 술 체엔 약도 없단다
거, 조심들 하거라 잉! //
지금은 목포 삼합을 남도 삽합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