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선택방식을 통한 시 창작 교육* - '주변의 소재로 그리기'를 중심으로 -
손진은
1. 문제의 제기
제7차 교육과정의 문학과목에서 그 이전의 과정과 두드러진 차이점을 보이는 것은 작품의 수용과 창작에 있다. 즉, 제6차 교육과정 문학과목의 주안점이 문학 작품의 이해와 감상에 있었다면 지난 2000년부터 적용되고 있는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문학 작품의 수용과 창작으로 비중이 옮겨가면서 창작이 문학 과목의 중요한 내용으로 설정되었다. 이는 창조성을 기반으로 하는 창작이 훈련에 의하여 향상될 수 있다는 믿음이 전제된 기획이라 판단된다.
시 창작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창조성의 요인은 상상력이다. 창조적인 표현과 비유는 상상력에서 연유한다. 이미지는 상상력의 작용에 의해서 생산되기 때문이다. 같은 사물이나 대상을 바라보고서도 사람들이 각각 다르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상상력 때문이다. 코울리지는 상상력을 수동적인 사물(the passive things)과 능동적인 정신(the active thoughts)을 결합하는 매개적 정신능력(the intermediate faculty)으로 정의하면서, 이를 인간의 직관적 인식능력과 관련된 일차적인 상상력과 대상에 대한 인식을 언어로 창조하는 이차적 상상력으로 나누고 이 중 이차적 상상력은 시인의 체험을 자각적으로 언어화하는 과정에 작용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여기서 일차적 상상력과 이차적 상상력의 차이는 그 대상에 대한 인식을 언어로 표현하느냐의 여부에 있다. 그러나 문학교육에서의 상상력은 시인인 주체가 대상을 인식하고 이를 언어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학 작품 창작에서의 상상력'과 실제 문학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작용하는 '문학 작품 수용에서의 상상력'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시 창작 교육의 장에서는 창작과 수용에 작용되는 두 가지 상상력을 통합, 신장시켜주는 모델이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본고에서도 창작교육의 과정에서 창작과 수용의 상상력을 통합하는 방향으로 논지를 전개하고자 한다.
본고에서는 창조적 상상력을 유발시키는 방법 중의 하나로 '주변의 소재로 그리기'라는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작품들을 창작교육에 활용하고자 한다. 우선 필자는 백석의 텍스트 중 [北新]을 선택하고, 여기서 사용된 창작 방식이 후대 시인들인 문태준, 기형도, 김영남의 텍스트에서 창작주체들의 경험과 수용방식에 따라 개성적으로 표출되고 있음을 밝히며, 수용자들에게 이 방법을 활용하여 창조적인 표현으로 텍스트를 생산시키기 위한 교수 학습방법과 평가 방식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그동안 문학 교육에 관한 논의들 중에서도 문학적 글쓰기 연구를 통해 일반적인 표현교육 내지는 창작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 표현방법을 구안해 낸 성과로는 이지호(1997), 최미숙(1997), 최인자(1997) 유영희(1999), 염은열(1999), 김혜영(2000) 등의 연구를 들 수 있다. 이들 논의는 문학작품의 표현방식을 귀납적으로 연구함으로써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과 표현 방법이 결합되어 있음을 밝힌 사례라할 수 있다. 그러나 각 작가나 작품을 통해 귀납적으로 추출해낸 표현 방식이 보편적인 표현방식으로 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즉 매개에 대한 연구가 보완되지 않는다면 작가마다 독특한 표현방식을 밝혀낸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창작교육에 관한 최근의 논의로서 주목되는 것은 정끝별의 것인데, 그의 일련의 연구는 패러디, 알레고리, 환상(판타지), 그로테스크 등 시학의 변화에 힘입어 부상하게 된 새로운 규범들이나 장치를 통하여 시 교육 방법을 개발하려는 목적으로 시도되었다. 정끝별의 논의는 새로운 시도로서 충분한 의의를 지니고 있지만, 새로운 문화 경향에 대한 이해와 그 문학적 적용에 무게가 놓여 있고, 상상력을 부추기고 창작욕구를 유발하는 그런 핵심화의 원리에는 아직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질 필요가 있다. 전자가 내재적인 관점이라면 후자는 외재적인 관점이라 할 수 있다.
본고는 전자처럼 내재적인 입장에 서 있지만 작가의 작품에서 도출된 표현방식이 보편적인 표현방식으로 화할 수 없었던 기존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이를 교육현장에서 적용 가능한 모델을 개발로 연결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아울러 본고는 이런 연계화의 방법을 통해 학습주체들에게 우리 시사의 전통을 함께 체험할 기회를 가지도록 함으로써 외재적인 관점이 가지고 있는 단점도 넘어서려 한다.
본고는 시 텍스트의 창작 방법과 과정을 특정 이미지의 선택과 조직의 원리를 통해 확인하고 특정 시인의 창작원리에서 도출된 방식이 후대의 시인들에게 실현되고 있는 방식을 함께 고찰하며 이의 원리를 보다 정교하게 창작주체의 창작에 활용함으로써 '교실창작'에서는 물론, '문단창작'에도 적용시킬 수 있도록 구안되었다. 교육의 대상자들은 대학 국문학과(국어교육과) 내지 문예창작학과 1학년생들이며 고등학교 학생들에게도 적용시킬 수 있도록 수준을 조정하였다. 아울러 본고는 이미지의 선택과 조직의 원리가 각 단계와 이행과정에서 더욱 구체화되고 보다 정교하게 내재화되는 방법으로 논의를 진행한다.
이는 모델의 개발과 적용이라는 본고의 성격과 창작의 속성상 후대 창작주체들이 앞선 창작주체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새롭고 개성적인 요소들을 산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 이해 및 감상을 위한 적용의 실례
문학교육의 지향은 기본적으로 표현과 이해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문학교육의 지향은 이해의 측면에서 학습자가 텍스트를 어떻게 이해하고 감상하는지에 초점이 놓여져 왔다. 본고에서 텍스트의 생산, 즉 창작에 초점을 맞추려는 것도 이러한 경향을 극복하려는 데 기인한다. 본고에서 이러한 의도로 시도하려고 하는 것은 창작주체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 또는 '풍경' 내에 있는 주변 소재들로 이미지화하는 방식이다. 이 때 대상 혹은 풍경은 '지역' 혹은 '문화권'으로 확대될 수 있다.
이 방법은 일찍이 백석이 시도했고 후대의 창작주체들이 계승하고 있는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백석의 이런 창작경향은 그동안 소홀히 다루어 온 감이 있다. 이숭원은 이런 시적 경향을 포함한 백석 시의 특징을 '訥辯의 美學'이라는 말로 통칭하고 그의 시에 주로 사용된 비유법이 주로 직유이며, 이 때 직유는 세련된 비유가 아니라 일상어가 되어버린 관용적 표현이거나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느낌을 주는 것이며, 보조관념은 土俗的인 事物들이 대부분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중요한 지적임에도 초창기 연구라는 난점 때문인지 그는 백석의 은유와 직유를 시어 차원에서만 관찰했을 뿐 언술 차원으로 논의를 확장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백석 시의 비유 구조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권혁웅에 이르러서 이루어지는데, 그는 '은유적인 병렬'과 '제유적인 종합'으로 백석 텍스트의 구문을 읽어내면서 고향의 세부를 탐색하면서도 공동체의 특질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내린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이미지의 선택방식에 대한 고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창작의 측면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바로 창작주체에 의하여 어떻게 이미지가 선택, 구축, 배열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우선 한 편의 텍스트를 통해 그 특징을 검증해 보기로 한다.
거리에서는 모밀내가 낫다 부처를 위하는 정갈한 노친네의 내음새가튼 모밀내가 낫다
어쩐지 香山부처님이 가까웁다는 거린데 국수집에서 농짝가튼 도야지를 잡어걸고 국수에 치는 도야지고기는 돗바늘 가튼 털이 드문드문 백엿다 나는 이 털도 안뽑은 도야지 고기를 물구럼이 바라보며 또 털도 안뽑는 고기를 시껌언 맨모밀국수에 언저서 한입에 꿀꺽 삼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가슴에 뜨끈한것을 느끼며 小獸林王을 생각한다 廣開土大王을 생각한다 -[北新-西行詩抄 2]({朝鮮日報} 1939. 11. 9.)
백석의 시에서 사물들은 그 자체로 시적 대상이 되어 독특한 이미지를 형성한다. 많은 시에서 그는 주변의 소재들로 이미지를 구축하고 끝부분에 와서 대상이나 사건을 초점화하는 방식으로 텍스트를 창작한다. 이 시 역시 가장 백석다운 시적 표현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는 "돗바늘 가튼 털"을 비롯 "정갈한 노친네의 내음새가튼 모밀내", "농짝같은 도야지" 등의 직유를 통해 어떤 세련된 표현도 따라올 수 없는 강렬하고 신선한 이미지로 수용자를 압도한다.
돗바늘은 가마니 같이 투박하고 거친 사물이나 피륙을 꿰맬 때 사용하는 굵은 바늘인데, 백석은 그 바늘이 굵고 두껍고 거친 사물을 꿰뚫고 나오는 생명의 강인함을 (배를 뚫고 나온) 털로 묘사한다. '농짝/도야지'의 대비는 그 자체로 이미 정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재의 결합으로 효과를 배가시킨다. 네 다리가 묶인 채로 거꾸로 걸려 있는 돼지의 모습은 몸피는 굵고 다리는 짧은 농짝과 흡사한 유사성을 지닌다. 이런 이미지를 통해 수용자는 토실하게 살이 올라붙어 굵어진 몸집과, 짧은 다리를 가진 돼지의 모습을 어느 것보다도 선명하고 익살스럽게 떠올릴 수 있다.
백석 시의 깊이에는 이렇듯 수용자들에게 미학적인 즐거움을 제공하여 유희의 세계로 인도하는 부분이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이는 또한 집안의 가축과 기물, 무생명과 생명의 경계를 무화시키는 역할도 하고 있다. "정갈한 노친네의 내음새가튼 모밀내"도 마찬가지다. 후각의 동일성을 통해 수용자는 작품 [국수]에서 나타나듯 식물(모밀)과 어진 인간(정갈한 노친네)을 하나로 결합, 인간미 있는 삶의 체취를 환기해 내려는 창작주체의 의도를 읽어낼 수 있다. 물론 이 시는 1, 2연의 은유적 병렬을 3연의 제유적 종합으로 이끌어내어 의도된 전체 의미로 대상을 초점화하고 있지만 수용자의 입장에서 눈여겨 볼 가장 중요한 창작원리는 이미지의 선택과 조직의 원리에 있다.
즉 백석은 고향으로 표상되는 농촌공동체의 공간에서 발견할 수 있는 토속적인 사물을 자신만의 독특한 기준에 따라 비유의 소재로 선택함으로써 강렬한 호소력과 범상치 않은 깊이를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백석의 시는 수용자에게 순박하고 평화로운 전통세계와 유년에 대한 그리움을 실감 있게 조응해낸다. 아래의 평가는 이같은 모더니스트로서의 백석 시의 특질을 적실하게 짚어내고 있다.
이 같은 뜻에서 白石은 1930년대의 드문 스타일리스트라고 말할 수 있다. 고요하고 平明한 추억의 세계를 결코 범속한 것으로 버려두지 않으려고 하는, 이 강인한 고집스러움이 白石詩가 확보한 現代詩史의 뚜렷한 위치가 아닐까.
백석 시의 거의 전편을 흐르는, 작품의 수용자를 공감 속으로 깊이 있게 공명시키는 이런 감동은 긴 산문체 호흡의 도입과 병렬을 포함하는 서술자질 등의 다른 요인들도 많이 작용하지만 이 글에서는 주로 주변의 소재를 이미지로 선택, 배열하는 방식으로 한정하여 논지를 전개한다. 이러한 백석 시의 방법론을 적용시켜 창작한 다음의 텍스트를 통해 이 창작법이 어떻게 후대 창작주체들에게 활용되고 있으며 또 실제창작에서 수용될 수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처음에는 까만 개미가 기어가다 골똘한 생각에 멈춰 있는 줄 알았을 것이다
등멱을 하러 엎드린 봉산댁 젖꼭지가 가을끝물 서리맞은 고욤처럼 말랐다 댓돌에 보리이삭을 치며 보리타작을 하며 겉보리처럼 입이 걸던 여자 해 다 진 술판에서 한잔 걸치고 숯처럼 까매져서 돌아가던 여자 담장 너머로 나를 키워온 여자 잔뜩 허리를 구부린 봉산댁이 아슬하다 - 문태준,[개미]({수런거리는 뒤란}, 창작과비평사, 2001.)
기어다가 멈춘 개미와 '등멱을 하러 엎드린 봉산댁'을 비롯, '젖꼭지/서리맞은 고욤', '겉보리/건 입', '숯/까만 얼굴'의 비유는 문명 이전의 농촌공동체에서 볼 수 있는 사물과 생명의 세목에서 선택된 것이다. 모든 비유가 주변의 소재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백석 시의 이미지 선택방식과 같은 맥락을 띠고 있는 이 텍스트는 다른 수용자의 눈에도 백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읽히고 있다.
저 30년대의 뛰어난 시인 백석을 오늘날 다시 만난 듯하다. 까만 젖꼭지와 개미의 대비가 기발하고 재미있다. 이 젊은 시인은 이런 해학적이면서도 텁텁한 막걸리 같은 풍경을 곧잘 그려낸다. 문명 이전의 샤머니즘적인 세계도 시인의 눈에 자주 포착된다.
그러나 이 텍스트는 화자 '나'의 개입으로 인해 백석의 텍스트와는 뚜렷하게 변별되는 세계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이 텍스트는 소년시절부터 담장 너머로 봉산댁의 알몸을 지켜보며 자라온 '창작주체'인 나의 성장사로 읽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텍스트는 문명과는 동떨어진 공간 속에 놓여진 소년의 은밀한 엿보기의 양태를 간직한다. 또래집단의 이성으로부터가 아니라 이웃집 나이 많은 '여자'를 통해 성을 깨달아가는 소년의 성장과정으로 시를 이끌어감으로써 이 창작주체는 백석의 영향을 주체적으로 소화하고 독자적인 개성과 미학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이 텍스트는 앞서의 언급처럼 개미, 봉산댁, 끝물, 서리, 고욤, 댓돌, 보리이삭, 겉보리, 술판, 숯 등 고향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세목에서 이미지를 선택하고 있고, 그 이미지가 결합되어 나타나는 비유체계 역시 앞 부분의 병렬과 끝부분의 종합 방식, 즉 이미지의 구축과 대상의 초점화 방식에서 백석 텍스트의 창작방식을 원용하고 있다. 여기서 특히 두드러지는 부분은 허리를 구부린 봉산댁의 모습과 기어가다 골똘한 생각에 멈춘 개미의 유비이다. 봉산댁의 검은 피부와 가는 허리, 젖꼭지, 땅에 짚은 두 팔과 다리의 모습에서 기어가다 멈춘 개미의 모습을 읽은 창작주체의 눈에서 수용자는 매우 희극적이면서도 해학적인 양가성과 함께 현장적 생동감 또한 느낄 수 있다.
이는 백석의 '농짝가튼 도야지'라는 비유의 근저에 깔린 발상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으며, '개발코', '안장코', '질병코'의 비유로 연결된 '녕감'들이 투박한 북관말을 떠들어대며 저녁해 속에 사라지는 나타나는 [夕陽]의 생동감과도 그 뿌리를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수용자는 이야기적 요소가 가미된 이 텍스트에서 화자인 '나'뿐만 아니라, 나의 눈에 비친 봉산댁이라는 인물의 입체성을 또한 살필 수 있는데, 그녀는 투박하고 거칠지만("겉보리처럼 입이 걸던 여자"), 외롭고 고단한("해 다진 술판에서 한잔 걸치고 숯처럼 새까매져서 돌아가던 여자") 삶을 살아가는, 고향공간에서 흔히 만날 수 있었던 인물로 드러난다. 봉산댁 역시 백석의 [여우난곬族]등에서 드러나는 가난과 슬픔으로 얼룩져 평탄치 못한 삶을 영위하는 인물들과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
그러나 교실에서는 이러한 부분까지 수용자들에게 창작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할 수 있고 또한 일관된 하나의 원리를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소기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이미지의 선택 및 조직 방식 쪽으로 논의를 집중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단순하다면 단순한 방식을 통해서도 창의적 표현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방법을 활용한 장점은 (창작과정을 통해 밝혀지겠지만) 시가 선명하게 되고 초점도 뚜렷하게 되고, 또 할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풀려져 나올 수 있다는 데 있다. 대부분의 경우 이런 원리를 잘 모르고 거창한 소재와 이야기를 끌어오려 하면서 시의 초점이 흐려지고 난해해진다. 다음 장에서는 이를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찰해 보기로 한다.
3. 창의적 표현을 위한 교수 학습방법과 평가
이 장에서는 '주변의 소재로 그리기'라는 시 창작방법을 원용하되 개인의 경험과 문학적 감수성으로 새로운 차원으로 변용시킨 두 편의 텍스트를 통해 이미지의 선택과 조직, 표현방법이 시 창작교육 상황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가를 검토하고 창작주체들의 작품이 생산되는 과정도 검토해보기로 한다. 시 창작교육은 학습자를 비롯한 여러 교육의 변인에 따라 교육 내용이나 수준이 결정되기 때문에 여러 국면을 검토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본고는 대학교 문예창작학과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수업을 토대로 한 것이며 낮은 단계에서도 적용될 수 있도록 조정되었다.
3-1 교수 학습방법
창작 지도는 동기유발과 지도과정 및 지도 내용이 중요하다. 이런 과정을 수행하기 위해 유의해할 것은 내용이나 주제 중심의 수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수업은 작품을 감상하는 데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창작주체의 텍스트 생산방식을 통한 감상과 실제의 창작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창작을 위한 텍스트의 온전한 해석을 위해서는 그 같은 관례적인 해석과 감상의 방법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기형도의 한 편의 텍스트를 예로 들어 논의를 진행해 보도록 한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 기형도, [엄마 걱정]({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사, 1989.)
위 텍스트는 제7차 교육과정 {중학교 국어} 1-1, '문학과 사회' 단원 '생각 넓히기' 란에 학생작품 [아버지가 오실 때]와 함께 실려 있는데, 그 아래에는 "생활하면서 겪은 일이나 느낀 점을 소재로 삼아 시를 한 편 써 보자."는 지문을 제시하고 있다. 단원의 성격과 관련시켜 볼 수는 있겠지만, 내용만 제시하고 시를 창작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운율과 이미지까지 같이 고려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 텍스트의 교육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아래 수용자의 태도 역시 편향적인 면이 발견된다.
어린 시절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있어 본 적이 있습니까? 엄마는 시장에 '열무 삽십 단'을 팔러 나가 언제 올지 모르는 빈 공간에서 말입니다. …… 빨리 돌아와 주었으면 하는 '나'의 마음이 어느덧 바깥으로 귀를 기울이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루 종일 말라비틀어질 것 같은 배추잎 같은 엄마의 피곤한 발소리는 들려오지 않습니다. 해는 저물어가고 '내'가 있는 빈 방에는 정적마저 감돕니다. …… 나는 그만 무서워집니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조그마하고 누추한 빈 방에 팽개쳐진 '나'는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해봅니다. 혼자 침을 묻혀가며 엄마가 올 때까지 지루함과 무서움을 이기기 위해 '나'는 일부러 천천히 숙제를 합니다. 놀이할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는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혼자 빈 방에 엎드려
훌쩍거립니다.
이러한 '내' 마음을 아는지 금간 창 틈을 때리며 비가 옵니다. 나는 유년 속으로 들어가 있는 아이입니다. 그러나 2연에 들어서면, 어느덧 훌쩍 성장해 어른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유년의 그 순간, 그 빈 방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홀로 내팽개쳐진 유폐된 공간에서 보내었던 그 유년의 추억을 생각하면 더욱 눈물이 납니다. 어머니가 부재(不在)한 그 공간 말입니다.
확실히 이 시는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주체의 고통스러운 회감으로 읽힌다. 즉 자아의 일부로 들어와 앉아 있는 그 시절(의 '뜨거운' 경험)을 통해 자기 정체성(Identity)을 확인하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는 이미지 형상화와 같은 디테일을 통해 얻어지는 거시적인 차원의 것이라 할 때 이 시의 창작과정을 추적하는 데는 일관된 이미지의 조합으로 읽어내는 구성력에 대한 학습이 필요하다. 이 때 수용자에게 필요한 것이 맥락 속에서의 시 읽기이다. 위의 감상이 빠트리고 있다고 판단되는 부분을 이미지 선택과 조직 부분을 중심으로 서술해 보자.
이 텍스트 역시 앞의 텍스트들과 같이 창작주체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 혹은 풍경 내에 있는 주변 소재들-'열무 삼십 단', '찬밥', '배추잎', '윗목'-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고, 마지막(2연)으로 경험을 종합하는 서술의 초점화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다만 독창적인 부분은 창작주체가 방안에서 숙제를 하면서도 열무를 이고 시장에 간 엄마가 언제 돌아오실까 하는 생각에만 사로잡힌 어린이의 심리에 맞춰서 이미지를 구축하고 배열하는 데 있다. 어린이에게는 현실세계(눈앞)에서 어떤 모습을 보거나 듣는 순간 그것은 자신이 고민하는 것들로 대치된다. 열무가 다 팔려 빨리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나'의 머리 속의 강박은 몰두하는 그 기호(열무)를 연상시키는 감각 이미지들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유사성(선택)이나 인접성(배열)의 혼란을 야기한다. 이 때 '열무 삽십 단'은 "해는 시든지 오래", "배추잎같은 발소리"(열무→배추, 발의 모양과 배추잎의 생김새의 유추 및 피곤의 이미지.) 같은 계열체의 표현을 이끌어낸다. "찬밥처럼 방에 담겨" 역시 밥통과 방의 유사성과 인접성의 혼란에서 기인한 것이다.
해가 지다(a') +열무가 시들다(a") →해가 시들다(A)
와 같은 창조적 사고를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작업은 구체적인 단계에서 사고 능력 향상이라는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또 이미지 구축 단계에서 이미지 선택은 창작주체에게 경향성을 드러내게 해 주기도 하는데, 이 시에서 드러나는 식물성 이미지-열무, 배추잎, 찬밥-는 공간에 홀로 던져진 어린 아이의 수동성, 순수성, 나약성을 드러내는 간과할 수 없는 특징을 형성한다. 이런 형상화 능력은 이미지 조직을 통한 의미구성 교육에서 효과적으로 강화될 수 있다.
이미지는 형태를 만들어내고 정돈을 하며 관계를 맺는 것이다. 또 이미지와 관련을 맺는 다른 이미지와 이미지간의 체계적 연결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경우 새롭고 참신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는지, 그것이 다른 부분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창작주체가 생활하고 있는 세계와 관련하여 새로운 의미를 형성하고 있는지 등이 검토되어야 한다. 이미지의 구상과 구축 단계에서 일어나는, 일관성 확보를 위한 전략을 따라가면 훨씬 더 깊이 있는 수업을 실행할 수 있다.
주변 소재로 이미지를 구축하고 대상을 초점화하고 있는 또 다른 작품을 수업에 적용시켜 보기로 한다. 이 작품은 앞선 작품들과 같은 방식을 쓰고 있되 소재를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이 작고 구체적이다. 이런 류의 텍스트는 시 창작을 공부하는 학습자들에게는 훨씬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수업효과도 당연히 커진다.
겨울이 다른 곳보다 일찍 도착하는 바닷가 그 마을에 가면 정동진이라는 억새꽃같은 간이역이 있다. 계절마다 쓸쓸한 꽃들과 벤치를 내려놓고 가끔 두 칸 열차 가득 조개껍질이 되어버린 몸들을 싣고 떠나는 역. 여기에는 혼자 뒹굴기에 좋은 모래사장이 있고, 해안선을 잡아넣고 끓이는 라면집과 파도를 의자에 앉혀놓고 잔을 주고받기 좋은 소주집이 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외로운 방들 위에 영롱한 불빛을 다는 아름다운 천정도 볼 수 있다.
강릉에서 20분, 7번 국도를 따라가면 바닷바람에 철로쪽으로 휘어진 소나무 한 그루와 푸른 깃발로 열차를 세우는 驛舍, 같은 그녀를 만날 수 있다. - 김영남, [정동진역]({정동진역}, 민음사, 1998)
이 시를 쓰게 된 배경을 창작주체는 이렇게 밝히고 있는데, 이 진술을 통해 우리는 창작주체가 이미지를 어떻게 구상하고 구축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필자는 정동진역 풍경을 그리는 데 모두 정동진역 근처에 있는 소재들로 생각하고 행동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소재들은 실제로 정동진역에 다 있던 것들입니다. 억새꽃, 벤치, 모래사장, 라면집, 소주집, 소나무 등등……. 그래서 열차가 들어오는 역이니까 겨울이 오는 것도 "겨울이…도착…"으로 했고, 라면집도 "해안선을 잡아넣고 끓이는 라면집"이고, 소주집도 "파도를 의자에 앉혀놓고/잔을 주고받기 좋은 소주집"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실제로 라면집을 묘사해야겠는데 구불구불한 소재를 찾으니까 산 능선, 도로, 해안선 등이 보이더라고요. 그런데 그 중에서 가장 주변 소재에 어울리는 게 바로 해안선이었어요. 소주집도 묘사해야겠는데 배, 수평선, 갈매기, 파도 등이 보이더라고요. 이 중에서 파도가 가장 운치 있는 소재로 생각되었어요. 이렇게 주변소재로 둘러대었더니 읽는 사람마다 반하더군요.
이런 시의 창작은 직접 경험 현장 방문을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며, 여행 안내 책자나 사진을 통해서도 충분히 활용하여 봄직한 방법이다. 창작주체는 정동진역의 풍경을 그리는 데 비유의 보조관념이 되는 이미지들을 모두 정동진역 주변에 있는 것으로 선택함으로써 보다 선명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 때 구상된 이미지는 당연히 선택과 배제의 과정을 통해 구축된다. 예를 들어 "해안선을 잡아넣고 끓이는 라면집"이라는 표현에서 '해안선'은 구불구불한 속성을 가진 대상들-산 능선, 해안 도로, 해안선 등의 계열에서 선택, 배열된 것이다. 창작주체는 구상단계에서 삼양라면(a')과 산능선(a"), 해안 도로(a"'), 해안선(a) 등 몇 개의 이미지를 추출한 뒤 조정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 단계에서 제일 먼저 제외된 것이 a'이다. 누구나 아는 평범한 것으로는 시적 즐거움과 감동을 줄 수 없다. 다음단계에서 고려된 a", a"'와 a 가운데서는 어느 것을 선택하더라도 신선함은 유지하지만 라면의 모습과 가장 닮아 있는 a가 선택되게 된 것이다. "파도를 의자에 앉혀놓고/잔을 주고 받기 좋은 소주집"도, '친구→배, 수평선, 갈매기, 파도→파도'의 이미지 구상단계를 거친 것이다. 다음으로는 일관된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는가 하는 검증단계에 들어서는데, 이 때 이미지 계열체를 사용하여 전체 이미지의 흐름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기형도 시에서 적용되었던 것처럼("해는 시든지 오래"), 이 시에서도 "겨울이 다른 곳보다 일찍 도착하는", "계절마다 쓸쓸한 꽃들과 벤치를 내려놓고"(열차 이미지, 강조 필자), "혼자 뒹굴기에 좋은 모래사장", "외로운 방들 위에 영롱한 불빛을 다는/천정"(좁고 고즈넉한 이미지) 등 전체 문맥이 조정된다. 창작주체가 이미지의 구상과 구축단계(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생산 방식과 배열하는 방식), 검증 단계(일관된 이미지로 통일하는 문제 등)를 거치면서 미학적으로 새로움을 가진 시로 환골탈태할 수 있는 것이다.
3-2 창작 및 평가
주변의 소재로 이미지 만들기 방식은 당대의 문화적 조건과 함께 자신의 스타일로 수용하기만 하면 그 소재 속에 표출된 이미지들이 다른 공간 속에서 다른 의미의 창출로 개성적인 형태를 띨 수 있으며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이제는 수용자들에게 그 방식을 활용하여 직접 창작하게 함으로써 이 방식의 묘미를 체득하도록 한다. 이 때 초보자들인 창작주체들에게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관건은 쓸 거리로 어떤 환경이나 자료를 제공하느냐에 있다.
자신이 현재 보고 있는 주변의 사물(혹은 공간)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창작주체의 입장을 고려하여야 한다. 창작주체는 창작을 행하는 주체이기 때문에 창작교육이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창작과정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창작주체 자신에 대한 이해도 선행되어야 한다. 필자는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이 형광등, 침대, 커튼, 그림 등이 있는 방에 갇혀 한 여자를 그리워하면서 책상에 골똘히 앉아 있는 모습을 그려 보라.", "[엄마 걱정]에서 드러나듯 어린 시절의 자신이 그 공간 속에 들어 있는 집을 주변 소재를 활용, 실감 있게 그려 보라"는 구체적인 창작환경을 제시하였다. 아래는 첫 번째 환경에 응답하여 그린 텍스트이다.
그는 책상과 함께 한 여자를 침대처럼 그리워한다 그의 얼굴은 형광등처럼 창백하지만 마음을 커튼처럼 열어젖히고 밤늦도록 간절함을 족자처럼 그녀를 향해 내걸고 있다 - 황재윤, [사춘기]
이런 작품은 주어진 조건 속에서 주변 소재를 있는 그대로 활용하여 몇 개의 이미지를 추출한 뒤 구체적인 시 창작 틀에 맞게 그것을 조직하고 재구성하는 훈련을 과정을 거쳐서 생산된다. [사춘기]는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주변 소재를 활용한 이미지 만들기라는 소기의 교육성과를 거둔 예라 할 수 있다. 위의 텍스트에서 책상, 침대, 형광등, 커튼, 족자 등은 창작주체의 창조적 사고의 발현과정을 통해 전혀 새로운 이미지로 거듭나고 있다.
이 텍스트는 아직 비유되는 사물에 따라 동사가 달라지는 등 일군의 이미지를 선택하고 그러한 선택 속에서 일정한 경향성이 형성되는 이미지의 통일성에까지 다다르지는 못했지만 선명한 이미지 제시를 통해 나름의 미학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반복된 학습을 통해 영역(공간) 체험의 사실성, 구체적인 묘사, 서사자질 능력이 향상되면서 일정 수준의 텍스트를 산출할 수 있게 된다.
이 때 창작주체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이미지 구상 훈련을 해 나가야 한다. 매너리즘에 빠져 있지 않다는 점에서 창작주체는 전문작가보다 더 참신한 이미지를 구상할 수도 있다. 후속작업으로 "집으로 가는 길의 모습을 그 주변의 소재들을 통해 참신하게 표현하라."는 제목을 주고 그 표현과정을 함께 점검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창작주체의 개성에 맞는 방법론을 터득하는 가운데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창작 행위가 이루어질 수 있다. 다음은 이 방식의 대상 텍스트로 활용한 시들에 대한 꼼꼼한 고찰과 이미지 구상훈련을 시행한 후에 생산된 텍스트로 읽힌다.
아침해가 다른 곳보다 일찍 돋는 마을 지문이 박힌 어머니의 옥토와 할아버지의 씨오쟁이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그 마을에 가면 만삭의 아낙처럼 배부른 집들 신라인의 진신사리를 모셔놓고 둥그스레한 어깨 서로의 키를 낮추며 울타리도 없이 이웃해 살고 있다
문패와 자물쇠가 없는 마을 항아리 깊숙이 타임캡술을 내장 시키고 가끔 설화들 뛰쳐나와 어둠 쌓인 마을을 돌며 둘러앉은 화롯가에 두런두런 밤새 이야기를 지폈다 밤새들 부는 피리 소리를 들여앉히고 빗살무늬 옹배기에 달빛 물든 차를 우렸다 싸락눈 내리는 골목길에도 더운 김이 저녁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할머니 반짇고리 손때 묻은 말씀들 호젓이 남아 돋을새김 하는 마을 여기서는 미움이나 원망, 절망까지도 향기로운 꽃씨가 되고 있다 할아버지 씨오쟁이 속 씨앗들 봉긋봉긋 천 년 잠을 깨어나는 어머니의 기름진 땅 - 김일용, [古墳群 마을]
이 텍스트는 창작주체 나름의 의도가 개입되어 있는 차용과 변용으로 조직된다. 구체적으로는 대상 텍스트들 중 주로 [정동진역]을 모방하면서 독자적인 미학으로 승화시킨 경우라 할 수 있다. [정동진역]과 이 텍스트는 시의 구조, 전개방식, 표현법에 있어서 유사하다. 특히 '∼이(가) 다른 곳보다 일찍 ∼는 장소'/ '그 마을에 가면 ∼하는 ∼가 있다'/'∼가 ∼하는 곳(장소)'라는 시 형식과 리듬전개의 방식은 흡사하다. 그러나 패러디적인 글쓰기가 '고분군 마을'이라는 특정의 공간에 맞는 소재의 이미지들로 구축되고 배열되었다는 점에서 이 텍스트는 선행 텍스트와 변별성을 가진다.
이 텍스트를 새롭게 하는 요인은 이미지를 구축하고 시적 문맥에 맞게 조직, 재구성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아침해, 지문, 할아버지의 씨오쟁이, 만삭의 아낙, 배부른 집들, 진신사리, 둥그스레한 어깨'(1연) '항아리, 화롯가, 옹배기'(2연), '반짇고리, 꽃씨, 씨오쟁이 속 씨앗들'(3연) 등 무수히 드러나는 둥근 이미지는 하나의 질서를 형성한다. 이렇듯 유사한 이미지를 통해 유사한 의미망을 구축하는 기법과, 끝 부분에서 "봉긋봉긋 천 년 잠을 깨어나는/어머니의 둥근 땅"이라는 구절을 삽입, 대상을 하나로 초점화하는 방식에서도 선행 텍스트를 나름으로 수용하고 재창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1, 2연에 나타나는 선행 텍스트와의 지나친 유사성, 둥근 계열 소재의 과도 노출, 그것을 하나로 잇는 동사의 연계([엄마 걱정]의 '시들다', [정동진역]의 '도착하다'와 같은) 부족 등은 아직 구상과 이미지 조직 훈련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古墳群 마을]은 이미지가 적절한 주변의 소재를 통해 짜여지며 시를 한 폭의 동양화처럼 그려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시 창작 교육 수업의 실제를 통해서 표현의 측면에서 이 시 창작방식이 효율적이며 실제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4. 맺음말
본고는 먼저 주변 사물에서 이미지를 선택, 구축하는 방식을 시 창작에 활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졌다. 본고는 수용활동과 창작활동의 통합을 통하여 창작교육의 전체상이 구현될 수 있음에 착안하여 수용과 창작과정에 이미지의 선택 및 실현양상을 같이 적용했다. 여기서 주변 사물은 특정한 작은 공간에서 출발하여 넓은 공간, 같은 문화권 등으로 확산될 수 있는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밝혔다.
본고는 주변 사물이나 소재에서 이미지를 선택하는 대표적인 경우로 백석의 텍스트를 우선 추출하고 이 방식이 후대 시인들의 텍스트에서도 활용되고 있음을 작품을 통해 확인하였는 바, 그 활용양상은 각 창작주체들의 경험과 수용방식에 따라 일정한 차별성을 가지고 있음도 밝혔다. 다음 단계로 필자는 학습자들에게 이 방법을 어떻게 수용시키고 또 활용하여 창조적인 표현으로 산출할 것인가에 대한 교수 학습방법과 평가 방식을 도출하였다. 그 결과 여기서 시도한 시 창작 교육이 지닐 수 있는 효과를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겠다.
1. 수용의 측면에서 보면 시적 형상화와 이미지의 질서에 일관성을 유지함으로써 미적 완결성을 크게 돋보이게 하는 할 수 있고, 2. 실제 창작의 측면에서는 1)창작자의 예술적 표현을 촉진시킬 수 있고, 2)상상력을 자극하고, 인지·정의적 사고 능력을 신장시킴은 물론, 3)사고를 명료화시킬 수 있으며, 4)자신의 주변의 사물로 묘사하는 과정을 통해 자아의 정체성을 탐색하게 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특히 창작 주체의 개별 경험과 개성에 따라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을 실현시킴으로써 지금까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시적 구조의 모방이나 패러디 혹은 변형을 통한 창작교육의 단계에서 더 나아가 창조적 글쓰기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게 할 수도 있다고 본다.
논의 과정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논문은 선행 텍스트에 대한 후행 텍스트의 영향관계를 밝히는 것이 주 목적이 아니라, 특정한 비유의 선택을 통한 시 창작 방법을 제시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었음을 밝힌다. 여기서 제시한 시 창작교육이 현장에 제대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다소의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과정의 탐색을 통해서 상호텍스트성에 대한 연구와 이미지 계열체의 일반화 문제 등도 진척될 여지가 충분하다고 본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의 연구를 기약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