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전성시대
최 장 순
jschoi0426@hanmail.net
“나를 뭐라고 부를 거예요?”
k는 어색한 듯 막 짝이 된 여성출연자에게 물었다.
“오빠~”
거침없는 그녀의 대답에 k의 입고리가 한껏 올라갔다. 으쓱해지는 그의 어깨를 보는 순간, 나또한 묘한 전율을 느꼈다. 그것을 시작으로 전 남성출연자들의 호칭은 자연스럽게 오빠가 되었다. 아저씨로 불릴 법한 50대 언저리 출연자들을 일시에 젊은이로 바꾸어버린 비음 섞인 오빠라는 호칭은 나를 부추기고, 급기야 함께 TV를 보고 있던 아내를 채근하기에 이르렀다.
“여보, 오빠라 한번 불러볼래요?”
“싫어요, 오빤 무슨...”
“왜? 밥그릇으로 따지면 내가 4천 그릇도 넘게 더 먹었는데?”
아내는 별스럽다는 듯 나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이미 굳을 대로 굳은 ‘여보’와 ‘당신’사이에 ‘오빠’가 끼어들 틈은 없어 보였다.
왜 여자들은 애인을 오빠라 부르길 좋아하는 것일까?
남녀 성 차이의 이분법이 흐려지고 그 영역 분리가 급격히 해체되는 요즘, 남성을 의지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는 것은 분명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친 오빠처럼 보호해주고 감싸주는 존재로 생각한다는 의미에 아빠처럼 믿는다는 암시까지, 사랑받는 귀여운 존재이면서 동시에 가냘픈 존재가 되어 남성의 보호본능을 발휘하게 하는 오빠다. 아이까지 딸린 부인이 남편을 오빠라 부르는 것도 그런 의도에서 나온 것이리라. 심리적 안정감을 높여주는 오빠, 여기에 애교 섞은 어리광까까지 곁들이면 사랑스런 느낌마저 드니 이 ‘오빠’에 무너지지 않을 남자가 어디 있을까 싶다.
그렇다면 남자들은 왜 그토록 오빠에 열광하는가.
한 여자가 자기를 오빠처럼 따른다니, 그런 신뢰가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응석도 받아주고 아량을 베푸는 진짜 오라버니라도 된 기분은 당장 무언가를 해줘야할 책임감마저 들게 할 것이다. 아무리 약한 남자라도 한 여자의 보호자가 되고 싶어 질것이 틀림없다. 그러니 요즘 한창 잘나가는 걸그룹 멤버 중 누군가 코맹맹이 소리로 “오~빠~” 라고 부르면, “미쳤어? 내가 왜 너 오빠야?” 정색을 하며 거부감을 드러낼 남자는 없을 것이다.
“언젠가 산 같은 남자와 다시 오고 싶어, 오빠.”
지리산 둘레길을 함께 걷던 여성 출연자가 말했다.
“그래? 내가 산이야, 지리산.”
k가 화답했다.
“오빠가 산이에요?”
그녀는 지리산처럼 든든한 남자라도 만난 듯 표정이 환해졌다.
모든 존재에는 호칭이 따른다. 어떻게 부르고 불리어 지느냐에 따라 느낌은 사뭇 달라진다. 이름이 자신뿐 아니라 존재의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라면, 호칭은 관계에 무게를 두는 것이어서 부르기 쉽고 정감이 오간다면 그것으로 족할 뿐 굳이 다른 색깔을 덧입힐 필요는 없다. 그러나 오빠는 나보다 한 살이라도 많은 친한 남자에게 대한 호칭이면서 동시에 그 이상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제 혈육의 관계이상으로 사회성 짙은 호칭으로 자리매김 된 오빠. 그것은 이성적인 경직성보다 자상함, 부드러움, 거기에 성적매력까지 강조되는 감성적인 시대상의 반영이다.
자신보다 나이 많은 상대를 ‘누나’라 부르며 성적 수세를 즐기는 남자들도 있다. 사실, 따지자면 오빠보다 누나가 원조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에서는 신부가 신랑보다 나이가 많은 것이 흠이 아니었다. 평균 수명이 짧아 조혼을 하던 풍습에서 비롯된 10대 후반의 여자와 10대 초반의 남자가 결혼하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었다. 그것은 빨리 핏줄을 잇고 싶은 욕구에, 일손을 늘이는 수단이었거나 입하나 덜려는 당시의 사회상이 반영된 결과였을 것이다. 첫날밤 신방을 엿보던 장난도 성적 상식이 부족한 어린신랑을 염려해서였다.
이렇듯 ‘누나’는 잠재된 모성애를 발휘해 뭔가를 해줘야할 의무감 같은 것을 느끼게 하고, 남자에게는 포근한 사랑을 받고 싶은 심리가 깔려있다. 하지만 누나는 연애할 때의 감정일 뿐, 결혼을 하고나면 달라진다. 여자 쪽에서 보면 남자보다 연상이란 사실이 드러나니 좋을 리 없고, 남자 역시 가부장적 권위를 격하시키는 호칭이 싫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나라는 호칭은 결혼과 동시에 폐기처분되고 만다. 그러나 오빠는 상당한 기간 지속된다. 결혼해서도 연애감정을 이어가려는 속내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굳이 비교우위를 따진다면 ‘누나’가 ‘오빠’의 대세를 당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오빠가 넘쳐나는 시대다. 근친의 오빠, 친구의 오빠, 사랑하는 오빠, 남편이라는 오빠, 가수들의 콘서트장에서 괴성으로 불러대는 오빠까지, 오빠 전성시대다. 그래서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남매를 낳은 부부가 남편을 오빠라 부르고, 딸애가 지 오빠를 오빠라 부를 때 관계가 뒤죽박죽이라고 그렇다. 그러나 지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애기를 낳는 순간부터 오빠는 자연스레 ‘아빠’에게 밀려나고 말테니까.
동요처럼,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는 오빠만 있는 게 아니다. ‘오빠 한번 믿어봐’란 말을 자신 있게 믿을 수 있는 오빠가 많으면 얼마나 좋을까. 딸을 둔 부모는 다정한 오빠라는 호칭 속에 숨은 검은 늑대가 두려울 뿐이다.
한국산문 2015 12월호
첫댓글 오빠의 전성시대. 그래요. 요즘은 어쩐 일인지 어디가나 호칭 붙이기가 좀 뭤하다 싶으면 오빠로 불러지더라고요. 참 곤란할 때도 있답니다. 자녀가 자라 이미 대학생이 됐는데도 남편을 오빠라 부르니. 도대채 촌수가 어떻게 되는것인지. 아이들도 지 아버지를 아빠라 부르고 아내도 지 남편을 아빠라 부르니. 그렇다면 촌수가 ... 하하하
예, 이태선 선생님~~ 주변이 온통 '오빠'가 넘처나지요?
그래도 부정적인면 보다는 긍정의 눈으로 보면 나쁘지 않은것 같습니다.
이 역시 한 시대의 풍조이겠지요?
오빠보다는 오라버니가 익숙한 친척이 많습니다. 때로 어리광도 부리고 큰 산이 되는 오빠들이 그립네요. 고은글 머물다 갑니다~
오라버니~~ 이보다 더 정겨운 말이 있을까요? 믿음직한 오라버니가 갈수록 보기 드물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