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의 글이라 올립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3년.
77세 시아버지가 처음으로 내게 돈을 빌려 달라 하셨다.
그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남편이 떠난 뒤로 3년 동안,
나는 내가 제일 힘든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혼자 버티는 하루하루가 너무 벅차서,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그런데 어제,
77세 시아버지가 내 집 앞에서 조용히 앉아 계신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그동안 내가 얼마나 큰 착각 속에 있었는지 깨달았다.
퇴근이 늦어 집에 돌아오는데,
멀리서부터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있는 왜소한 노인의 뒷모습이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시아버지였다.
시아버지 댁에서 우리 집까지는 약 10km.
연세가 많아 운전도 못 하시고,
버스 노선도 잘 모르신다.
그 길을,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정말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오신 거였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무슨 일 있냐고, 몸은 괜찮으신지 급히 여쭸다.
시아버지는 고개를 들며
백발이 유난히 눈에 띄었고,
눈빛은 불안하고 조심스러웠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처음엔
“아무 일 없다. 그냥 얼굴 좀 보러 왔다”고만 하셨다.
그러다 오래 침묵한 끝에,
마치 큰 죄라도 짓는 사람처럼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혹시… 300만 원만 빌려줄 수 있겠니…”
마침 저녁 시간이어서
일단 밥부터 먹자고 하며 근처 식당으로 모셨다.
식사 후 바로 드리겠다고 했다.
그때 시아버지는 벽을 짚고 천천히 일어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집에서 대충 먹어도 된다. 나는 아무거나 괜찮다.
300만 원이면 된다.
네가 힘들면… 조금만 줘도 된다.”
평생 고집 세고,
남에게 손 벌리는 걸 가장 싫어하던 분이
돈 300만 원 앞에서
이렇게까지 몸을 낮추는 모습을 보자
가슴이 너무 아파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300만 원은 부족해요. 600만 원 드릴게요.”
그러자 시아버지는 손사래를 치며
끝까지 고개를 저으셨다.
“아니다. 300만 원이면 충분하다.
다음 달에 집에서 키우는 돼지 팔면 바로 갚겠다.”
그 말에 나는 거의 울먹이며 말했다.
“아버지, 갚는 얘기 하지 마세요.
남편은 없어졌지만
저는 여전히 아버지 딸이고, 가족이에요.
집에 일이 있으면 ‘빌린다’는 말 쓰지 말고 그냥 말씀하세요.”
하지만 시아버지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들은 이제 없다.
나는 선을 지켜야 한다.
정말 막다른 길이 아니면
이런 말 꺼내지도 않는다.”
계속 여쭤본 끝에
드디어 이유를 말씀하셨다.
며칠 전부터
어머니가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차서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았는데,
당장 쓸 돈이 없어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미안함과 자책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남편이 떠난 뒤 3년 동안,
나는 내 슬픔만 붙들고 살았다.
아픈 기억이 떠오를까 봐
의식적으로 시부모님과 거리를 뒀다.
명절에 얼굴만 비추고
늘 서둘러 돌아왔다.
그 사이,
두 분은
아들을 잃은 고통을
말 한마디 없이 견디며
조용히 늙어가고 있었다.
식당에서 시아버지는
오랜만에 드시는 듯
말없이 밥을 급히 드셨다.
마른 손,
늘어진 얼굴,
작아진 어깨를 바라보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 순간 분명히 알았다.
남편이 떠난 후,
이 세상에서
두 분이 의지할 사람은
나 하나뿐이라는 걸.
식사를 마친 뒤
나는 600만 원을 그대로 드렸다.
주름지고 굳은 손으로
돈을 받으시는 모습을 보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
앞으로는 무슨 일이든 바로 전화 주세요.
이렇게 혼자 오지 마세요.
이 돈은 두 분이 쓰세요.
부족하면 언제든 말씀하시고요.
제가 모셔다 병원도 같이 갈게요.”
차로 모셔다 드리는 길에
문득 남편이 생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람은 늙으면 다 이렇게 된다.
우리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고개 숙여야 할 날이 올 거다.”
그땐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너무도 분명히 안다.
어른들이 작아지는 건
그들이 무능해져서가 아니다.
우리가
덜 찾아뵙고,
덜 물어보고,
덜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떠나면
집은 조용해진다.
하지만
가족까지 흩어져서는 안 된다.
남편은 없지만
그의 부모는 여전히 내 가족이다.
돈은 다시 벌 수 있다.
시간은 흘러간다.
하지만
효도와 동행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나는 남편을 대신해
이제라도
두 분의 노후를 지킬 것이다.
다시는
그분들이
외롭고,
미안해하며,
혼자 버티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