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거사는 중국 당나라 때 사람이다. 아버지가 태수를 지내 어려서부터 부귀를 맛보았다. 그는 재산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어느 날 불법의 한 맛을 보고는 사람이 달라졌다. 방거사는 평생 모은 재산을 모두 동정호에 버리고 교외에 오두막을 짓고 살았다. 부인과 아들 딸 등 온 가족이 함께 수행하며 오손도손 살았으니, 세상은 모두 방거사를 도인 집안이라고 칭송하였다. 특히 딸 영조는 깨달음이 깊어 선지가 투철하였다고 한다.
방거사는 조리를 만들어 생계를 삼았다. 하루는 방거사가 딸과 함께 조리를 팔러 시장에 가는 길이었다. 방거사가 다리를 내려가다가 그만 넘어졌다. 그러자 영조는 아버지를 부축하기는 커녕 옆에 같이 넘어졌다. 방거사가 딸 영조에게 까닭을 묻자, 영조가 대답했다. "아버지가 넘어진 것을 보고 일으켜 드리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와 같이 선문염송에서 전하는 화두이다.
방거사가 조리를 팔러가는 길에 다리를 내려가다가 넘어졌다.
그러자 방거사의 딸 영조가 옆에서 같이 넘어졌다.
방거사가 돌아보며 물었다.
"너 무엇을 하느냐?"
"아버지가 넘어진 것을 보고 일으켜 드리려는 것입니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어 다행이구나."
- 선문염송 제8권 316. 끽박(喫撲: 방거사 넘어지다)
옛 사람들은 둘은 하나에서 생겼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하나는 어디서 생기는가?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으며,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이 자리는 하나인가, 둘인가? 만법이 텅 빈 것을 본 수행자가 술 마시고 음풍영월하거나 검은 굴속을 탐닉하는 것은 마음속에 아직 하나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많은 유혹이 있다. 돈, 학력, 명예, 재산, 이념, 집단 등에 집착하면 이가 곧 분별을 낳고, 아상을 낳는다. 탐욕과 분노의 길이 어찌 세속에만 있을까.
부처님 당시 인도의 바라문들은 자신의 종교적 지위를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제사를 지내주고, 주문을 만들어 팔아 재산을 모았다. 바라문에게 땅을 보시하면 복을 많이 받는다고 부추기며, 호의호식하며 살았다. 바라문 교리에는 사람에게는 영혼(아트만)이 있어 대대로 윤회하는 믿음이 있었다. 바라문들은 다음 생의 두려움을 팔아 재산을 모은 것이다.
부처님은 참다운 수행자나 성인이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몸속에 내가 있다는 견해(유신견 有身見), 이런 저런 금기나 주문에 집착하는 견해(계금취견 戒禁取見), 다음 생에 대한 의심 등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신통이나 기복을 구하면서 동시에 내가 없는 무아의 도리를 닦을 수는 없다.
중국에서 선이 처음 일어날 때, 선수행자들은 일체 방편을 거부하였다. 그들은 재를 지내지도 염불을 하지도 않았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의 도리로 사는 수행자들은 이를 이상히 여긴 다른 절의 모함을 받아 관청에 끌려가 장살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수월스님은 일본제국이 우리나라를 강압적으로 지배했을 때 살았다. 스님은 경허선사의 가르침을 받은 뒤 만주로 건너 갔다. 만주에 있는 작은 절의 머슴중이 되어 일하면서 일제의 학정으로 만주로 피난해오는 가난한 우리 동포들을 도왔다. 스님은 밤새 주먹밥과 짚신을 만들어 동포들이 힘겹게 넘어오는 고개마루 나무가지에 걸어놓았다.
청담스님(1902~1971)은 수월스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만주로 스님을 찾았다. 1년 동안 수월스님을 모시고 정진하던 청담스님이 마침내 스승을 하직하는 날이 되었다. 주먹밥과 짚신을 받아들고 수월스님에게 마지막 절을 올렸다. 그러자 수월스님은 갑자기 청담에게 곳간에 가서 괭이를 가져오라고 시켰다. 괭이를 가져오자 수월스님은 바로 눈앞에 보이는 돌멩이를 가리키면서 이렇게 물었다.
“저게 무엇인가?”
“돌멩이입니다.”
청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수월스님은 괭이를 빼앗아 들더니 돌멩이를 홱 쳐내 버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들판으로 나갔다. 청담스님은 수월스님에게서 받은 이 공안을 일생 동안 화두로 삼아 공부했다고 한다.
금강경에서 부처님은 일체 중생에게 준다는 관념이 없이 주어야 하며,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나아가 주는 물건도 없이 보시하라고 법문했다.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등 대승불교의 육바라밀은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지만, 그 근본은 이처럼 일체가 비어있는 도리에서 나온다. 무주상 보시는 하나를 들되 털끝처럼 가벼우며, 둘을 펼치되 허공에 방석을 깔고 앉는 도리이다.
하나가 마음에 남아 있으면, 무주상보시는 사라진다. 보시가 하나에 물들면, 명예나 도덕적 자기과시, 나아가 종교간의 경쟁 등 아상의 길을 걷게 된다. 봉사의 규모나 세상의 칭송은 높아질지 몰라도 자기를 내려놓는 수행은 어느 틈에 사라진다.
선문염송에는 이 화두에 대해 묘지 곽(妙智廓) 선사의 게송을 이렇게 소개했다.
방공이 쓰러지자 딸이 근심 나누니
원수가 아니면 모이지를 않는다.
갑자기 곁의 사람 눈치를 챈 뒤엔
온 집안 모르는 결에 부끄러움에 싸였네,
龐公倒地女分憂(방공도지여분우)
不是寃家不聚頭(불시원가불취두)
驚被傍人偸眼見(경피방인투안견)
渾家不覺暗包羞(혼가불각암포수)
묘지 곽 선사는 방거사의 끽박 화두를 보고는 아버지와 딸이 서로 원수라고 말했다. 선가에서는 스승과 제자가 삼생의 원수라야 법을 전할 수 있다고 했다. 세상을 위해 보시행을 하고 중생을 위해 법을 펴는 일은 도덕적으로 떳떳하고 자부심 있는 일이지만, 이 한 도리에서 본다면, 묘지선사가 말한 것 처럼, 참으로 부끄러운 마음으로 해야 할 일이다. 무릇 보시를 하고 법을 설하는 사람은 스스로 그 속에서 자신의 굴을 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노자는 멈출 줄 알아야 위태롭지 않다(知止不殆)고 했다.
아버지를 위해 넘어진 영조는 기실 중생을 위해 어두운 굴 속으로 들어가는 보살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생을 위해 넘어진 딸 영조의 곡진한 마음을 전한다.
방거사의 조리는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는데,
영조는 소리쳐 사람을 부르는 구나.
누가 알랴! 영조가 넘어진 곳에는 풀이 자라지 않는 것을.
(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