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푸시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픈 날은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은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이 되리니.
러시아의 천재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Aleksandr Pushkin 1799~1837). 그가 남긴 많은 작품이 비참한 농노제하의 러시아 현실을 그리고 있지만, 세상을 향한 순수함과 열정이 시와 소설 속에 번뜩인다. 러시아 황제는 그런 그가 미워 시베리아로, 북극 아래 백해(白海)의 솔로베츠키 수도원으로 유배시킨다. 이후 푸시킨은 가난과 엄격한 검열에 시달린다.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정신의 강골’로 푸시킨은 문학을 놓지 않았다. 예컨대 농민 폭동의 주모자를 그린 소설 《대위의 딸》을 쓰며 귀족과 농노계급의 대립과 증오를 그리려 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암송해 본 시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해외시 중의 하나다. 어쩌면 ‘이발소 그림’처럼 특별할 것도 없는 나지막한 목소리의 시지만 잔잔한 울림이 오래간다. 힘들어하는 ‘지금’을 이겨내면 먼 날 그리움이 된다는 내용. 정말 그럴까. 푸시킨의 시처럼 가끔 인생을 압축시킨 듯한 시를 만날 때가 있다. 그런 시는 묵직하다
.
마흔. 삶은 두 번째 고개로 넘어갔다.
난 사랑했고 사색했고 싸웠다.
어딘가에 머물렀었고, 무언가를 보았으며,
가끔은 행복하기도 했었다.
분노는 나를 피해 갔고, 화살도 비켜 갔다.
총을 맞아 두 군데 작은 상처를 얻기도 했다.
날개에서 흩뿌려진 물방울처럼 재앙은 날아가 버렸고,
물처럼 재앙은 옆으로 비켜섰다.
난 첫 번째 고개를 점령했고, 두 번째 고개를 정복하련다,
어깨에 걸머진 내 짐이 무거울지라도.
산 너머엔 대체 뭐가 있는가? 산 아래엔 대체 뭐가 있는가?
내 관자놀이는 위에서부터 희끗해졌다.
마흔. 마지막 휴식처는 그 어딘가에 있을까?
내 궤도는 어디서 끊어지게 되려나?
마흔. 삶은 두 번째 고개로 넘어갔다.
그리고 이 잔은 다 비워지지 않았다.
-사모일로프(박선영 옮김)의 시 〈마흔. 삶은 두 번째 고개로 넘어갔다〉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