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색 코르덴바지와 山소주 (외 1편)
공 계 열
영하의 신 새벽
텅 빈 횡단보도 앞에서
목 매달은 가로등이 붉은 눈물 흘리고
밤색 코르덴바지가 붉은 눈물 뒤집어쓴 채 서성이고
밤색 코르덴바지가 끌고 온 발자국 갈지之자마다
밤새워 마신 山소주가 어지럽게 흔들리네 山소주가 밤색 코르덴바
지 식도를 지나 늑골에 추억으로 山 하나 이룬 밤 칼끝처럼 돋아나
는 첫사랑 찾아 山 속을 헤매다 별이 된 그녀의 눈빛 청솔가지 사이
로 너무 멀어 아물아물한 눈시울에 뻐꾸기소리 귓속으로 가득 차오
르면 밤새워 고향의 접힌 山길 펼쳐 찾느라 붉고 차진 山흙에 미끄
러져 밤색 코르덴바지 山흙으로 칠갑을 했네
지금은 색깔도 희미한 코르덴바지가 있고
가로등이 붉은 눈물 코르덴바지에 다 쏟아 붓고
수런거리며 다시 깨어나는 길 위에
새벽 인력시장으로 걸어가는 여윈 코르덴바지 가랑이
놓아버린 山길이 코르덴바지에 감겨 박명薄明에 출렁입니다
영진리 블루
11월의 영진리는
음악처럼 파란 바람을 흘리고 있었다
지난 그리움의 정체正體인 양 아늑한 집터 하나
푸른 선율에 흔들리며 대나무가 서 있었다
흔들리는 대나무를 이윽히 바라보자
가지에서 밀려온 허공의 한기寒氣가 나를 감싼다
그저 꼿꼿한 댓잎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깊은 블루의 바다였다니
멀리 보이는 바다가 출렁이다 내 두 눈에 녹아 블루로 잠긴다
하늘의 구름을 힘껏 차 올렸더니 블루로 가득 찬 하늘이 내려와
블루의 바다와 기-ㄴ금을 그었다
그곳에 블루의 빛나는 꿈들이 쏟아진다
환상적인 블루는
매력적인 블루는
꿈꾸는 블루는
카페 <보헤미안>에 앉아 우리들이 뱉어내는 모음과 자음들이
깊이를 알 수 없는 짙은 코발트블루에 쏟아져
격세隔世의 기-ㄴ 금속으로 사라진다
수많은 단어들이 가득히 자맥질하는 바다
빗금 치며 석양을 향해 앉아있는 물떼새의 방향에선
흰 이빨을 세우며 몰려와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풍성한 블루의 화음으로 퍼지면서 겹쳐진다
나는 영진리 바다 어디쯤 잠기고 있는 것일까
파란 바람이 분다
파란 냄새가 난다
파란 댓잎 한 잎 내 가슴에 블루로 꼿꼿하게 서있었다
공계열 : 2004년 [시인정신] 등단.
시집 살구 씨 속엔 살구나무가 있다 외 2권.
제6회 시인정신작가상, 제6회 강원 펜 문학 번역 작품상, 제10회 노천명문학상 대상 수상.
시인정신 2017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