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들 자기 침대를 주겠다고 난리를 피웠지만 산들마음과
반달이의 침대를 합친 크기가 공주에게 딱 맞는 걸 알고는
다들 두 말 않고 남은 침대들을 모아 자신들의 잠자리를
만들었습니다.
곤히 잠든 공주의 예쁜 모습을 보며 난장이들은 왠지
흐뭇했습니다.
물론 오늘은 좁은 잠자리에 옹기종기 붙어 자야했지만 말입니다.
대장 난장이 산들마음은 한참 오늘의 기쁨을 떠들다
잠들었습니다.
살림꾼 난장이 길님이는 모두의 잠자리를 챙긴 후
새근새근 잠들었고
노래하는 난장이 물소리도
재주 좋은 난장이 꽃이슬의 음냐음냐 잠꼬대에 맞춰
쿨쿨 잠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곯아떨어진 그리미 난장이 노을숲은
일 잘하는 난장이 산만해의 굵다란 다리가 배 위에
올려진 것도 모른 채 잠들었습니다.
이렇게 여섯 난장이들이 모두 잠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일곱 번째 난장이 반달이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백설공주의 입술이 닿은 뺨의 온기를 느끼며
자신이 한 마디라도 말을 할 수 있다면...에
그 언제보다도 더욱 간절함을 느끼며
반달이는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 안개꽃보다 그 꽃에 싸여있는
공주님이 더욱 아름다우신 걸요.'
라는 한 마디를...
하지만 자신은 말을 하지 못하는 난장이었습니다.
차가운 물속에 급하게 뛰어들었던 반달이는 그만 심한
독감에 걸려 해가 일곱 번을 뜨고 지도록
누워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래도 반달이는 마냥 기쁘기만 했습니다.
"고마워요.반달님."
하는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다시 한번
공주님의 따뜻한 입맞춤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반달이는
'아니에요.공주님의 간호를 받을 수 있어서
좋기만 한 걸요.'
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그 정도의 서글픔은 공주를 구했다는 기쁨과
자신에게 웃어 주는 공주님의 환한 미소에 가려 살며시
사라졌습니다.
반달이의 몸은 오랜 고난의 여정을 말해주듯 성한 곳이라곤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품 속에 싸인 눈물단지는 너무도 곱게곱게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눈물단지를 산들마음에게 전해주고 나서도 반달이는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요정의 눈물이 백설공주의 상처 입은 손가락에 뿌려지는 것을
보고서야 쓰러지는 반달이였습니다.
잠시 후 반달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한 기쁨과 말못할
수줍음으로 가득 찬 얼굴로 눈을 떴습니다.
"고마워요.반달님."
장미요정의 눈물로 깨어난 백설공주의 세 번째 입맞춤이
그의 이마에 와 닿았기 때문입니다.
저번보다 훨씬 아름다운
미소와 목소리도 함께 말입니다.
백설공주의 간호 속에서
온 몸의 상처를 치료하는 동안
반달이의 얼굴에서는 기쁨의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나...공주님을 좋아하나봐요.'
란 말을 할 수 없는 자신의 서글픔이
좀더 오래 가고 있음을 알았답니다.
반달이는 이게 꿈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공주님과 춤을 추고
있는 건 분명 자신이었습니다.
춤의 끝에 잠시 숨을 고르던 백설공주는 자신의 춤에 만족한 듯
기쁜 얼굴로 한껏 반달이에게 웃어주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아름다운 미소였습니다.
그리곤 반달이의 두근대는 가슴이 멈춰버릴 만큼
멋진 말을 해주었습니다.
"고마워요,반달님.난 반달님이랑 있을 때가 제일 좋아요."
라구요.
다들 이리저리 갈피를 잡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모두의 깊은 한숨속에 반달이가 조용히 일어섰습니다.
'내가,내가 다녀오겠어요.그 왕자를 내가 데려오겠어요!'
모두들 깜짝 놀랐습니다!
"뭐? 사람들이 사는 곳에 가겠다구?"
"얘가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안돼! 너를 절대 보낼 수 없다. 그곳에 가면 네가 어떤
일을 당하게 될 줄 몰라서 그러는 거니?"
"더구나 넌 말도 못하는데!"
반달이는 듣지 않았습니다.
"반달아!"
"반달아!"
여섯 난장이의 걱정스런 만류와
말도 안 된다는 듯 질책하는
목소리를 뒤로하고 반달이는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길님이가 반달이를 뒤쫓아 뛰어보았지만
반달이의 각오에 찬 발걸음을
따라 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반달이는 달렸습니다.
공주를 깊은 호수에서 구한 것도 반달이
자신이었고
그 험한 여행 끝에 장미요정의 눈물을 구해온 것도
자신이었습니다.
이번에도 공주를 구할 이는 바로
자신이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가 원한 것은 자신의 힘으로 깨어날
백설공주에게
보여 주고픈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람의 언덕을 지나 벌꽃의 호수를 건너
이곳 안개숲에 오신 당신을 나는,
반달이는 진실로 사랑합니다.'
라는 긴 제목을 가진 춤이었습니다.
이것은 춤이지만 또한 반달이의 몸짓언어였습니다.
이 춤을 만들기위해 반달이가 얼마나
고심했는지 모릅니다.
하루종일 광산에서 일한 지친 몸을 쉬게 하지 않고
몸짓언어를 생각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게 하기 위해 모두 잠든 밤늦게 일어나 혼자
힘으로 만들었습니다.
가는 손짓으로 바람을
벌꽃의 느낌의 세찬 팔놀림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온 마음으로
망설임도 많았습니다.
혹시나 공주님이 알아듣지 못하는 건 아닐까.
날 싫어하게 되지 않을까.
공주님의 따뜻한 눈빛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꼭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자기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춤의 끝엔 공주의 이마 위에 자신의 입맞춤을
살며시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 조그만 표현으로 말 못하는 자신의 수줍은 사랑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반달이는 달렸습니다.
반달이의 대답은 진실한 못짓처럼 보이긴 했지만
정말로 진실하지는 않았습니다.
왕자에게 마음 속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반달이는 불안했습니다.
안개숲이 가까워질수록.
'내가 과연 공주님께 말할 수 있을까?
나 같은 것의 고백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왕자님이 공주님께 입맞춤을 한다.
이제 공주님이 깨어나실 수 있어.
그런데 내 마음이 왜 이러지.
왕자님이 입맞춤을 해야 공주님이 깨어나시는데,
그러기 위해서 내가 왕자님을 데려왔는데,
왜 이러지.왜 이러지!
반달이는 왕자의 입맞춤에 왠지 모를 질투심을 느꼈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왕자님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만약 내가 왕자님이라면...
부질없기만 한 생각이었지만 머리 속엔
그 생각만이 돌고 있습니다.
'공주님...'
두근 한 발짝
"나의 기사 반달님.고마워요."
두근 두 발짝
"정말 고마워요."
공주의 다정한 입맞춤이 또 다시 반달이의 이마에 닿아왔습니다.
그래요.
이 순간이라면 반달이는
그 동안의 모든 고통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지금의 이 황홀감이라면
자신의 마음을 고백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 누가 옆에서 지켜본다고 해도 아무 상관없었습니다.
반달이는 두근거리는 마음과 눈으로
공주를 바라보았습니다.
'바람의 언덕을 지나 벌꽃의 호수를 건너
이곳 안개숲에 오신 당신을 나는 반달이는
진실로 사랑합니다!'
라는 긴 제목을 가진 춤, 수줍은 고백을 시작하려했습니다.
이 몸짓 한 번을 희망 삼아 모든 고난을 지나 온 반달이
그토록 하고픈 고백이었습니다.
기나긴 여행 끝에 이제서야 그 몸짓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때
"저와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왕자님의 조용하고 부드러운,
그러나 떨리는 한 마디,
반달이의 몸이 굳어버리기에 충분한 한 마디였습니다.
반달이는 억지로 몸을 움직였습니다.
춤을 추기가 이렇게 싫은 적이 없었습니다.
왕자를 찾아 매일 힘들게 출 때도 이렇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원하고 있었기에 추어야만 했습니다.
모두가 반달이를 지켜보았습니다.
백설공주님도 왕자님도.
반달이는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의 언덕을 지나 벌꽃의 호수를 건너
이곳 안개숲에 오신 백설공주님을...'
모두의 시선 속에 그토록 보여주고 싶었던
자신의 고백을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왕자님을 안개숲 식구 모두는...'
그리고 반달이의 마음.
'진실로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춤의 끝과 함께 반달이의 눈에 눈물
한 방울이 반짝였습니다.
모두들 아름다운 춤이야 라고
감탄의 탄성을 내는 사이에서
반달이는 털썩 주저앉아 큰 울음을 터트려 버렸습니다.
모두들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울먹이는 사이사이로 반달이가 말했습니다.
'기뻐서...기뻐서 그래요.
백설공주님이 깨어나신 게 기뻐서 그러는 거예요.
공주님이 왕자님을 만나셔서 그게 너무 기뻐서 그러는 거예요.
나, 원래 잘 우는 난장이인 거 아시잖아요!'
끝내 반달이는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말았습니다.
햇살이 방 안 가득 비춰 손을 대면 따스함이 느껴지는
그런 화사한 날.
난장이들의 집 안엔 반달이와
반달이를 간호하기 위해
일을 나가지 않은 길님이만이 있었습니다.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반달이가 눈을 뜬 건
길님이가 피곤함에 잠시 졸고 있을 때였습니다.
자리에 누워 있던 반달이가
힘겹게 눈을 떴습니다.
팔을 간질이며 스쳐 가는 따스한 햇살이
참 좋았나봅니다.
햇살을 매만지며 한참이나 방 안을 둘러보던 반달이가
길님이를 깨웠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길님이 아저씨.'
"으음, 그래, 반달이 일어났어?"
'아저씨, 나 죽으려나봐요.'
"그.그게 무슨 소리야? 반달이 네가 죽긴 왜 죽어?"
'아저씨'
"자.자.그러지 말고 어서 이거나 먹어 보거라.
네가 좋아하는 버섯스프다."
'아저씨.제가 죽거든 절 안개꽃밭에 묻어주시겠어요?'
"안개꽃밭?"
'절 바보 난장이.못난 난장이라고 비웃어도 좋아요.
그냥 절 꼭 공주님이 계시던 그 안개꽃밭에 묻어주세요.'
"그럼, 너, 너 그랬던 거야? 공주님을 사랑했던 거야?"
'...예.'
너무도 힘든 대답이었습니다.
긴긴 쓰라림과 고통의 끝에 다다라
이제야 겨우 이뤄진 고백이었습니다.
'공주님께는 나...
그냥 멀리 여행 떠났다고 해주세요.
공주님께 친하던 사람의 죽음이란 건
너무 아픈 일 일거예요.'
"바,반달아..."
'아시겠죠.안개...꽃밭이예요...'
긴 한숨을 내쉰 반달이는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곤
다시 눈을 감았습니다.
"바...반달아! 반달아...!"
어느 햇살 따스했던 날 오후,
반달이는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잠이 들었습니다.
-이 책에서 사용한 '난장이'의 올바른 맞춤법은 '난쟁이'입니다.
저자의 의도에 따라 '난장이'라고 표기 하였음을 밝힙니다.-
첫댓글 너무 좋아요...
아마 공주도 반달님을 사랑했을거야...